예수는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낙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상황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나사로의 주검이나 무덤만 볼 뿐이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집중하면 영적인 것을 볼 수 없으며, 땅에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하늘의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마음에 의혹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장례식장에 위문하러 왔던 사람들은 예수가 나사로의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에 의혹을 품었습니다.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36)라는 말은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 둔 예수의 사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에 대해 의혹을 가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않고 포기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마르다는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더 이상 무덤 앞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서 좌절하고, 절망에 빠지는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2.예수는 나사로를 살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그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앞에서 생명의 사역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면 모든 것이 끝이 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 앞에서 죽은 자를 살려 내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를 죽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는 것은 대적을 향한 선전포고입니다.
예수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에 대한 분명한 교훈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문자적인 율법을 지키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죽음을 이기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길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임으로 믿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믿음의 사람이 되면 다가오는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게 하실 때 그 수많은 별들처럼 자기의 후손의 번성하게 될 것을 믿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순종하는 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무덤의 돌을 옮겨 놓는 일은 단지 힘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일은 그 말씀대로 순종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으로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담대함이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은 오직 제자들의 담대함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알고 나아가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친 예수처럼 지금도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눌려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처럼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