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5:9-19

 

  회복된 예루살렘에 이방인들이 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알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세상에 잘 알려야 합니다.

 

1.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19)

   하나님은 그의 권세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땅과 그 위의 사람을 창조하셨고, 하늘을 펴고 하늘의 군대에게 명령합니다.(12) 하나님은 천사에게 명령하여 일을 합니다.(1:26) 사람은 재주와 노력으로 우상을 만들어 세우지만, 우상은 아무 권세도 없습니다. 오직 천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진정한 권세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운 목자를 통한 구속사역을 알려주셨습니다.(13) 고레스를 일으켜 그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성전 건물 하나가 아니라,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정한 곳의 회복을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을 보여주는 것이고, 고레스는 성전회복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합니다.(1:2)

 

  하나님은 야곱에게 혼돈 중에서 찾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0) 이방인들이 회복 된 예루살렘으로 옵니다.(8:21-22)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숨어있는 하나님이라고 하지만(15) 하나님은 감춰진 곳과 캄캄한 데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하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체포를 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권세를 말씀하셨습니다.(26:53) 그러나 예수는 자신에게 있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합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강도의 소굴이 된 그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일으킨다고 하셨습니다.(2:19) 부활을 통한 성전회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된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것은 사람들과 함께하시려는 그의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1:23)

 

  예수는 하나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는 빌립에게 자기를 본 자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으며, 그의 말과 일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9)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통하여 알려주신 하나님입니다.

 

3.알려진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우리도 하나님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권세를 알려야 합니다. 흔히 인간의 권세를 강조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며, 그 권세를 알려야 합니다. 다윗 왕은 그를 다스리는 주가 있음을 고백합니다.(110:1) 하나님의 권세를 알리려면 예수처럼 자기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 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집니다. 성도들이 성전입니다.(고전3:16) 성전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더러워진 성전은 하나님이 멸하십니다. 모퉁잇돌이신 예수 위에 우리 성전을 세우고(2:2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 가운데서 하나님이 알려주는 의와 정직을 알아야 합니다. 혼돈은 사람이 믿는 신에 대해 갈멜산 바알제사장처럼 헤매는 삶입니다. 생명의 빛이 들어와야 혼돈, 공허, 흑암이 없어집니다. 자기 생명을 사람에게 빛으로 비추신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1:4) 생명이신 예수를 영접할 때 그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말씀과 사자들 그리고 아들을 통하여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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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5:1-8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고레스라는 한 목자를 세워서 구원과 공의를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원과 공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를 이루는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고레스를 세워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승리하는 고레스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고레스 앞에서 열국이 항복하고, 왕들은 허리를 풀 것이라고 하셨으며(1), 하나님은 고레스보다 앞서서 나아가셔서 그가 승리하게 합니다.(2) 세상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하지만 그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고 골리앗에게 나아갔습니다.(삼상17:47)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특별한 칭호를 주십니다.(4) 고레스를 세우는 목적은 이스라엘 때문입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내 목자”(44:28)라는 칭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칭호를 주신다는 것은 영광인 동시에,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름으로 오는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하늘과 땅에 구원과 공의를 이루십니다.(8)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환경을 다스립니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신이 특정한 한 부분을 관장한다고 믿고 섬기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해서 구원과 공의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구원과 공의가 함께 있게 합니다.(46:13)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를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진정한 승리자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자체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요일3:8)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이루신 것은 십자가였습니다.(2:15) 고레스는 세상의 특정한 나라를 이기는 자가 되지만, 예수는 그 모든 권세 자체를 무력화시켜 버립니다. 예수의 승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까지 깨뜨립니다.

 

예수는 구원자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낳을 마리아에게 그 이름을 예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1:21) 그 이름의 의미는 구원자입니다. 예수는 구원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목자의 역할을 하지만 예수는 생명을 주는 선한목자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구원합니다.(10:27-28)

 

예수의 사역은 구원과 공의를 완성하는 사역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서 사람의 구원과 하나님의 공의를 동시에 이루셨습니다. 구원과 공의를 이루는 것은 은혜와 진리입니다.(1:17) 진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공의이며, 은혜를 주시는 것은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구원과 공의를 온전하게 이룰 자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목자 같이 구원과 공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는 자가 되게 합니다.(8:37) 우리에게 있는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위험 칼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이기는 자가 되었습니다.(고후2:14)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기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버가모교회에게 이기는 자에게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2:17) 이름을 주신 하나님과 이름을 받은 사람은 깊은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는 그 이름을 알고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이룰 사명을 가졌습니다. 의와 구원을 이루는 것은 하늘로부터 난 지혜를 가지고 화평을 이루는 삶을 통해서 완성됩니다.(3:17-18) 예수의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사랑만이 영혼구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를 바르게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기름 부으심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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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4:21-28

 

하나님은 우상의 허무함을 보여주신 후에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통해서 뜻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이 낮은 신분의 사람인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명을 강조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1.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을 지으셨습니다.(21) 종을 세우시는 하나님은 종을 통하여 이루실 일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종들이 허물과 죄가 있을지라도 그들을 구속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창조하고 구속하신 이유는 그들을 그의 종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열방 속에 있는 하나님의 종입니다.(41:8)

 

하나님은 그의 종의 말을 세워주며,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합니다.(26) 하나님은 실로의 제사장 엘리가 무너진 후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셨고, 그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삼상3:19)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의 입이 권세 있는 입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말한 엘리야의 선포도 다 이루셨습니다.(5:17)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종을 세우고 그 뜻이 이루어짐을 기뻐합니다.(28) 고레스는 하나님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목자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서 성전과 예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성전과 제단, 제사장, 예배의 회복이 창조주 하나님의 기쁨이고 소원입니다.(43:21)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목자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종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땅, 자기 백성 중에 오셨고,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6:12-13) 뿐만 아니라 핍박자 사울 같은 사람도 부르셨습니다.(9: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들은 예수의 택하심과 부르심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예수는 그가 세우신 사도들의 사역 속에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할 때 그것을 자신이 행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4:13) 우리의 기도의 성취에는 행하시는 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지 않으시면 우리의 어떤 계획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종이 세워짐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는 70명 제자들에게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으며, 예수도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10:20-21) 예수의 기쁨은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기쁨을 제자들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17:13)

 

3.우리는 예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졌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사실을 편지마다 고백했습니다.(1:1) 사도 베드로 역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벧후1:1)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속하신 이유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종이 되게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이루시는 주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사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말할 때는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서 담대하게 기근을 선포했습니다.(왕상17:1)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면 확신의 선포가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세상의 거짓 된 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함을 이루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철저하게 주인을 섬기고 주인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17:10)

 

하나님은 그의 구속함을 받은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은혜와 권능을 드러내는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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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4: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여수룬이란 의미는 그들이 의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직 불의하지만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은 가장 큰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자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복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르셨습니다.(2) 여수룬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애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의의 백성으로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의로움을 나타내야 할 사람입니다.(43:26) 하나님은 사람이 완전한 의롭지 못하지만 그들을 은혜로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하나님은 여수룬에게 복을 주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미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경험을 했었습니다.(8: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시냇가의 버들 같게 하여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1:3)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심으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 속하려고 합니다.(5) 이스라엘이 복을 받고 살면 그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생깁니다. 에스더의의 영향으로 페르시아의 본토 백성이 유다인이 되려고 했습니다.(8:17) 여리고의 라합처럼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깨닫고 이스라엘 안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의인으로 만들려고 오셨습니다.(5:32) 예수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람을 의롭게 만드십니다. 사람이 진정한 여수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5:9)

 

예수는 의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합니다.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는 그에게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 맺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15:5)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광야, 사막 같은 환경도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 힘 있는 삶을 살게 되고, 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는 사도들을 통해서 민족들을 하나님께 속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모든 민족이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28:19) 사도들의 사역으로 하나님을 모르던 자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룻이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이방인이 하나님께 많이 돌아옵니다.(2:47)

 

3.하나님께 복을 받은 의의 백성으로서 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창조, 선택, 도움, 용서, 공급 같은 것입니다. 다른 신에게 이런 복이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나를 지으시고 택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 두 가지를 가까이할 수는 없습니다.(4:8)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함께 해야 합니다.

 

모든 상황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의 특징은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 앞에서의 모세나 아합 왕과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 있는 엘리야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예수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14:31) 공급하시는 주의 은혜를 신뢰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 다른 영혼들이 주께 돌아올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존귀한 아버지란 의미의 아브람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란 의미의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모든 민족이 우리를 통해 의의 복을 누릴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스가랴는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가 소망을 품은 자라고 했습니다.(9:12) 하나님의 일을 소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수룬이라고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차버렸지만,(32:15)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드러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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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22-28

 

사람은 타인에게 있는 죄와 허물은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죄는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시고, 그들의 의는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를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가 아니라 의를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괴로워합니다.(24)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하나님을 괴롭게 여겼습니다.(22)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지쳤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만 갖추다가 지친 것입니다.(1:11)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께 괴로움을 주었습니다.(24) 찬양이 없는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은 괴로워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위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도말합니다.(25) 하나님은 제물로 그들을 수고롭게, 또 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23) 하나님이 정한 제물은 부담이 아닙니다.(1:14)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예배의 실패가 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위하여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으며, 히스기야는 이것을 알았습니다.(38: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의를 기억하려고 합니다.(26)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가 아니라 의를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의는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의 길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의를 드러내기를 기다립니다.(30:18) 하나님은 우리 예배에서 의를 찾으십니다.

 

2.예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하실만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을 시작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셨습니다.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에 등장하신 아들을 기뻐하셨습니다.(3:17) 하나님을 모든 면에서 기쁘시게 할 자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8:29)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 그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까지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합니다.(9:14)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죄의 도말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말씀으로 사람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15:3)

 

예수는 부활로서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로움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부활로서 죄의 권세를 이긴 것이 의로움입니다.(4:25)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안에 있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기억합니다.(고후5:21)

 

3.하나님께 의를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배의 진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면서 피곤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1:6) 그들의 제물은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다.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삶, 혼의 지정의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께 좋은 기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2:20)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의로운 삶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가장 많이 기억하신 인물입니다. 열왕기에서 다윗의 길이 강조되었고, 신약시대에도 다윗의 이름은 강조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13:22) 다윗이 왕이지만 그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고백한 것이 그의 의로움이 됩니다.(110:1)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죄는 기억하지 않으시려고 하고,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의로움을 기억하시려고 합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의로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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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4-21

 

이스라엘의 창조자, 구속자, 왕이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도록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신 새 일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새 일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하나님은 갈대아 사람들이 도망하게 합니다.(14) 세상에서 강한 세력이라도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시면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일은 고레스라는 특출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의 보내신 자를 통해서 일합니다.(6:8)

 

창조자 하나님은(15) 광야에 물과 사막에 강을 내어 그의 백성이 길을 가게 합니다.(20) 구속의 역사도 창조적 사역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요단강 물도 멈추게 했듯이 하나님은 바다에 길을 내고, 물 가운데 지름길을 냅니다.(16) 하나님의 새 일은 사람들을 온전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시는 일입니다.(11:19-20)

 

왕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을 지으셨습니다.(2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서 찬양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만방에 선포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은 세상을 향한 선포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벧전2:9)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율법주의 신앙을 깨뜨리고 복음을 새롭게 전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 제자가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예수는 자신이 혼인집 신랑이라고 하셨으며, 새 포도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9:17) 율법주의자들에게 예수는 복음을 온전하게 전하기 위하여 기존의 신앙형식을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는 길을 여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기 죄인,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길을 차단시킨 것입니다.(15:1-2) 예수는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을 찾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 길을 여신 것이 새 일입니다.

 

예수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합니다. 예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에 대해 시험을 당했습니다.(4:3)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방인 백부장의 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찬송이 나오게 하셨습니다.(27:54) 사탄은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하게 하지만 예수는 구원을 받는 자들이 찬송하게 합니다.

 

3.하나님이 하신 새 일을 아는 자로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창조주, 구속자, (14-15)이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이는 우리는 존재도, 소망도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했습니다.(33:2) 그리고 그 일은 징벌을 받는 유다를 회복시키는 일입니다.(33:6) 구원과 통치의 새 일을 이루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에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광야와 사막과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도움과 공급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섬기는 자는 두려움 없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하는 곳에서 제단을 쌓으려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믿었습니다.(22:8)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사도들은 그들의 사역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하나님이 하셨던 새 일을 찬양하는 선포였습니다.(2:22) 고난 중에서도 속에 소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도 할 수 있습니다.(벧전3:15)

 

하나님의 새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이런 삶을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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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3:8-13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많은 열방들이 섬기는 신들은 거짓된 신이고,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란 사실은 그의 백성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그 자리에서 이끌어냅니다.(8)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이스라엘은 이런 체험이 없는 우상숭배자들는 달리 증거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불평과 원망이었지만 주변 민족들에게는 증거가 되었습니다.(2: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역을 통해서 더 하나님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10) 증인의 증언은 자신에게도 더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증언을 하면서 더욱 든든히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보내신 70명의 제자들은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0:20)

 

하나님은 그의 증인을 통하여 자신만이 구원자임을 선포합니다.(11) 열방 민족들이 섬기는 거짓 신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구원자라는 사실이 증거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녹과 노아를 통하여 심판과 구원을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증인을 훈련시키고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를 선택하여 부르고 그들을 훈련시켜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갈릴리 어부들, 세리, 열심당원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명과 비전을 주셨습니다.(5:10) 그리고 예수는 그의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24:47)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증언할 내용들을 체험하게 하시고, 그 입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다른 사람에게 들려질 때 그것이 증언이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16:16) 예수를 깊이 깨달아 아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이 땅에 세워지는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16:18)

 

예수는 제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고, 또 제자들이 증인이 됩니다.(15:26) 예수와 함께 있어서 예수의 모든 것을 듣고 본 사람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사도들이 모여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세울 때 함께 다니던 사람중에서 세웠습니다.(1:22) 사도는 예수 부활의 증인입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리에서 이끌려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사역자를 이끄십니다.(4:1) 사도 바울도 자기가 원하는 사역의 방향이 있었지만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했습니다.(16:6-7) 성령이 이끄시는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야 합니다.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증언하는 사역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의 성전건축 계획을 허락하시지 않은 하나님이 그의 집을 세워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삼하7:27)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하려고 할 때 더욱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바르게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맘몬숭배, 향락주의, 거짓의 영, 음란의 영이 가득한 이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란 사실을 드러내는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로 구속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드러낼 증인으로 쓰임을 받는 이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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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을 존귀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속(救贖)하여 그들이 두려움 없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알고, 풍성하게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구속함의 시작은 용서와 용납입니다. “지금이란 단어는 문법적으로 그러나 지금이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귀하게 하심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42:18-25) 하나님은 그러나 지금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속하십니다. 용서와 용납으로 구속합니다.(106:43-44)

 

구속의 방법은 일방적 사랑이 있는 대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속하려고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습니다.(3)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까지 내어주는 구원의 원리가 됩니다. 속량물이란 속죄금, 몸값입니다. 속죄금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21:30) 대속은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결과는 구속받은 자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1,5) 하나님은 구속하신 자를 물과 불에서 건지시고(2), 그 백성을 사로잡은 자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5-6) 하나님의 구속을 입는 사람은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1:9) 하나님은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늘 동행하며 보호하십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용서로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군병들이 용서받기를 구했습니다.(23:34) 구속이란 용서에서 시작됩니다. 예수의 사역은 죄인들을 향한 끝없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죄를 덮어주고, 채무를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구속은 누군가 대신 속량을 하고 값을 치러주는 일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20:28) 남을 위한 대속은 완전한 자기희생입니다. 나오미의 집안을 대속하는 보아스에게는 인간적 유익은 없습니다. 예수의 대속의 효력은 온 세상에 미칩니다.(요일2:2)

 

예수는 제자들이 두려움이 없도록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의 보냄을 받는 제자들은 많은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으로 선포하셨고(16:33),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자로서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 받은 자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요일4:17)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는 힘입니다. (요일4:18)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이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긴 삶을 살게 됩니다.

 

대속의 제물과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속물이 되신 예수의 그 대속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듯이(1:4) 제물 되신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삽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고 강조했습니다.(6:11)

 

하나님이 오게 하신 곳에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동서남북, 땅 끝에서 불러 모읍니다.(5-6)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2:6-7)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예배합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초청을 거절하면 안 됩니다.(14:18)

 

하나님의 구속을 입은 자는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는 두려움이 없이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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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18-25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 전체가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존귀하게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 존귀함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백성들을 존귀하게 하려고 하셨지만(21) 이스라엘은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무감각이 존귀함을 잃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못 듣는 자, 맹인(18)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보이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20)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주인 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했습니다.(1:3)

 

대적에 대한 무능함이 존귀를 잃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가진 것을 도둑맞고, 탈취 당하고, 굴속에 잡힙니다.(22) 이들이 노략당할 때 구원자가 없습니다. 약속의 땅, 성전 같은 이스라엘의 보물을 바벨론에 다 빼앗깁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이렇게 다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습니다.(28:30-31)

 

상황판단을 못하는 무지함이 존귀를 잃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25)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넷째 대접을 쏟는 재앙에도 사람들은 회개할 줄 모릅니다.(16:9) 멸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방법(21)으로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사람을 존귀하게 만드는 근본은 하나님의 의로움입니다. 의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성령은 죄, ,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16:10) 예수는 마지막 유월절에서 제자들을 친구라고 하여 그들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15:15)

 

기쁨으로하나님은 피조물 중에서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는 제자를 택하여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이때에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10:21)

 

교훈을 크게 하며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20:1-2) 이스라엘에게 계명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5:17)

 

3.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존귀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보여주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존귀한 하나님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교회가 성령의 도움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2:7) 우리의 눈이 열려지기를 구해야 합니다.(119:18, 1:18)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내게 있는 영적보물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마리아에게는 말씀을 듣는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10:42) 빌라델비아 교회는 면류관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3:11)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간직하는 사람이 존귀한 삶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때 곧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죄를 뉘우칠 줄 알았습니다.(51:1-3)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를 읽고, 돌이키는 사람은 존귀함을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내게 주신 영적보물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또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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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10-17

하나님은 그의 새 일을 열정으로 하십니다. 새 일을 하실 때 전사같이 분발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은 땅 끝의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상을 찬양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합니다. 분발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분발하십니다.

분발하여 사역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서 찬양을 받으십니다.(10)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입니다. 광야 성읍(11)은 이름 없는 사람, 게달은 아라비아 에 있는 이스마엘 후손(25:13), 셀라 주민은 에서의 후손입니다.(16:1) 언약과는 멀고, 약속을 받지 못했고, 선택되지 못했던 자들도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한 때에 일을 시작하고, 분발하여 사역합니다.(14) 하나님은 계획 속에서 길이 참으십니다.(2:4) 에녹에게 멸망을 예고하신 하나님은 근 천년을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분명히 일어나 그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사같이 나가고 전사같이 분발하고(13), 해산하는 여인같이 힘을 씁니다.(14)

하나님은 분발하여 세상에 대한 심판(15)과 구원(16)을 이루셨습니다. 분발하시는 하나님은 대적을 심판하고, 백성들은 은혜의 땅으로 인도합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수치를 당하지만(17),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은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인물들이 여러 일을 하지만 구원과 심판을 완전히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2.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이 분발하신 그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일에 분발하시는 예수도 아버지처럼 땅 끝의 민족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열심을 완성하셨습니다.(59:17) 예수는 땅 끝, 모든 민족에게 가서 하나님의 일을 증거 하는 증인 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24:47-48)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 제자들을 세워서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맞춰서 열심히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의 초기에 성전을 청결하게 하면서 열심을 드러내셨고,(2:17) 마지막 사역인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에도 피땀 흘리는 열정을 드러내셨습니다.(22:44) 예수는 그의 사역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도록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는 일에 분발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심판의 권세를 받아서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십자가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사탄을 멸하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19:30)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부활로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침으로 심판을 완성하셨습니다.(고전15:24-26)

3.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우리도 분발하여 사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분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찬양하는 자가 되고, 찬송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찬송하는 자로 선택, 예정하셨습니다.(1:6) 예수의 은혜로 우리는 찬송이 되었습니다.(1:12)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풀무불과 사자 굴에서 건짐을 받아 세상의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3:28)

대적과 싸우는 영적전쟁에 분발해야 합니다. 예수의 구원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을 만드신 것입니다.(2:14) 구원은 결론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영들과 싸우게 하셨습니다.(6:12)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었고, 가나안 정복,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 그 결론이었습니다.

구원의 사역에 분발해야 합니다. 모압의 우상숭배축제 후에 미디안 여인과 동침하는 시므리를 찔러 죽인 비느하스의 열정은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의 속죄를 위한 열정이었습니다.(25:12-13) 사명의 길을 끝까지 달리는 사도 바울처럼(딤후4:7) 우리도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의 속죄가 이루어지는 일에 분발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 분발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열방들이 찬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사역에 분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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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5-9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새 일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시려는 새 일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그 구원의 일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이 일이 꿈꾸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126:1-2)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새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이 언약이 되고, 빛이 되게 하는 새 일을 하십니다.(5-7) 하나님의 종은 그의 백성에게는 언약이 되고, 이방에 대해서는 빛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었습니다.(19:5-6) 그리고 하나님은 흑암에 처한 모든 이방에게 빛이 되는 하나님의 종을 보내 주셨습니다.(9:1)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우상에게 주지 않습니다.(8) 하나님은 여호와즉 스스로 있는 분입니다.(3:14) 여호와는 이미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에게 그들이 참 신인 것을 증명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아들도 주시는 하나님은 그의 영광은 누구에게도 주지 않습니다.(115:1)

전에 예언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은 새 일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9)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미래를 위하여 새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려는 새 일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일이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는 구원의 일입니다.(43:19)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백성에게 언약이 되었습니다. 언약이 된다는 것은 둘 사이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죄인과 하나님 사이가 언약관계가 됩니다.(2:18) 예수는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나누면서 그 잔이 그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22:20) 예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이 됩니다.

예수는 이방에 대해 빛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그를 보내면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사역의 목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에게 이끄는 것입니다.(12:32)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이끄는 일을 제자들을 통해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두루 다니라고 하셨습니다.(16:15)

예수는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자리에서 가르쳐 주신 새 일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13:19)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19:28)

3.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열방들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을 증거하고 전수했습니다.(24:7) 우리가 타인에게 언약이 되려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의 말씀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눈 먼 자의 눈을 밝히고,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앉은 자들을 나오게 해야 합니다.(7) 바울은 에베소 성도의 눈이 밝아지기를 원했습니다.(1:18)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소망과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말씀과 삶으로 빛이 되어야 합니다.(5:16)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새 일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는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시면서 그가 그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9:15) 사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것입니다. 세상에 우리를 보내시는 주님의 기대감을 알고,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새 일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을 통하여 새 일을 이룹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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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1-4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고, 모든 민족을 정의로 통치하는 과정에서 한 종을 세우십니다. 이사야 42:1-9; 49:1-7; 50:4-9; 52:13-53:12는 이 여호와의 종에 대한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1.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세워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종을 붙드시고, 기뻐합니다.(1) 사람이 되신 예수께서 목수의 아들로서의 시간을 끝내고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그가 자기의 기뻐하는 자라는 사실을 음성으로 사람들이 듣게 하셨습니다.(3:16-17) 하나님은 그에게 기쁨이 되는 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어 일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영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종과 함께하신다는 것이며, 또 그 종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그에게 임한 영에 의해서 활동하게 됩니다.(61:1)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종과 함께하며, 또 그를 이끌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이 이방에 정의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뜻은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서 시행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아모스는 정의를 세울 것을 강조했습니다.(5:15)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는 여호와의 영으로 사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이 땅에 임하신 예수의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입니다.(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의 한 단면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 안에 있는 영으로 사역하신 것입니다.(12:28)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는 사람을 사랑함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에게는 사랑의 개념은 없습니다. 예수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습니다.(3) 예수는 안식일에 사람의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김으로 일하셨습니다.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12:20)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정의를 시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시행할 때 쇠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정의를 세웠습니다.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4:4-5)

3.우리는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로 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종을 세워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자기백성을 위하여 종을 세우시고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사람에게서 찬송을 받기 위함입니다.(1:5-6)

여호와의 종으로서 수고하신 예수의 수고를 알고,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종은 자기의 수고를 만족히 여깁니다.(53:11)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를 향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원한 것은 사랑입니다.(21:15) 이 사랑이 있어야 예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종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종을 통해 이방에 정의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정의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신 예수는 간음한 여자를 돌려보내고, ‘세상의 빛을 말했습니다(8:11-12).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온 세상에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종으로서 사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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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1:21-29

사람들은 나름대로 가진 신관을 기초로 해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신의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우상들에게 자기를 증명해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참 된 신이란 사실을 증명하시는 분입니다.

1.하나님은 우상들에게 그들이 신이란 사실을 증명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왕으로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을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습니다.(41:8) 우상숭배자는 그들이 신과 우상을 선택하지, 신이 사람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상은 아무 일도 못합니다.(41:7)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왕이 되시는 분입니다.(삼상8:7)

하나님은 우상에게 증거를 보이라고 하셨습니다(21) 우상은 자기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성을 사람이 깨닫게 했습니다.(1:19-20) 자기가 신이란 것을 증명하려면 미래의 일과 이전 일을 다 알게 해야 하는데(22) 우상은 이 일을 못합니다. 과거나 미래의 모든 일을 말씀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에게 복이나 재난을 내려 보라고 합니다.(23) 하나님은 복과 화를 다 내리시지만, 우상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생명과 사망을 그 앞에 두시는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30:19) 사람들은 그것을 줄 수 없는 우상에게 생명과 복을 구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 됩니다.(24)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자를 선택하며, 그들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왕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보내셨습니다. 또 만왕의 왕으로서 그의 택하신 자가 이김을 누리게 합니다.(17:14) 예수가 왕이 된 사람은 그의 선택과 언약과 통치 하에서 함께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일과 말을 보여주고 들려주셨습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12:49) 예수는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가르쳤으며, 그 말의 분명함을 증명하려고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사람의 복과 화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예수는 말씀을 듣는 제자들에게 복이 있도다”(5:3)라고 하셨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화 있을진저라고 하셨습니다.(23:13) 말씀을 사모하며 듣는 자가 복을 받으며, 외식으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자는 화를 당하게 됩니다.

3.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를 택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해야 합니다. 세상의 헛되고 거짓된 것에 눌리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궁핍, 질병,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상을 찾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바사 제국에서,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자기 하나님만 신뢰하며, 기도했습니다.(6:23)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고 섬겼습니다.

세상을 주관하고 미래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살아야 합니다. 노아는 세상의 멸망을 말씀하신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6:22) 우리에게 약속 된 말씀은 예수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입니다.(1:11)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우상에게서는 복음이 없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27) 하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선택했고, 이것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10:42)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계 역사를 주관하고, 처음부터 나중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신입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말씀 앞에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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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1:14-20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자기 백성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시고, 그들의 삶의 환경까지도 새롭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만드신 특별한 작품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의의 무기와 같습니다.(6:13)

1.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자기 백성과 삶의 환경을 특별하게 만듭니다.(20)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이스라엘을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듭니다. 버러지는 더러움보다는 그들의 연약함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연약한 존재인 이스라엘은 이제 열국을 심판하는 권세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타작기로 추수하는 자 같은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4:1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역이 능력 있게 합니다. 타작기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바람을 보내어 줍니다.(16)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사역에 함께 합력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알곡을 쳐서 까부르면 하나님은 바람으로 쭉정이를 날아가게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동풍을 보내어 홍해를 갈라놓았습니다.(14:21)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풍족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습니다.(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환경을 헐벗거나, 광야처럼 메마르지 않게 합니다.(18) 7가지 나무를 심으십니다.(19)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평범한 사람을 권세자로 만들었습니다. 갈릴리 어부나 세리는 평범하거나 오히려 미움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사람들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권세가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를 약속하셨습니다.(22:29-30) 예수로 말미암아 보통사람이 특별한 자가 됩니다.

예수는 그의 사역자들과 늘 함께 하여 그 사역을 더 온전하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의 이름을 주어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16:17)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는 하늘에서 땅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셨고(2:~3:),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교회를 위하여 계속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7:25)

예수는 사역자들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합니다. 예수는 생수의 강으로 사람들이 하늘의 것을 누리게 합니다.(7:38) 구약의 복의 표현은 마른 땅에 샘물처럼 물질적인 개념이 많지만,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온전한 것을 약속합니다.(14:16) 예수께서 주시는 복의 개념은 풍족함을 뛰어넘는 완전함입니다.

3.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기드온의 아들은 두려움으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지 못했습니다.(8:20) 어린 자는 힘을 사용할 줄 모릅니다. 영적인 아이들은 사역을 못하며, 오히려 교회 안에서 분쟁하고, 싸우기는 잘 합니다.(고전3:1)

주의 함께하심을 신뢰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예수가 시험을 이겼을 때 마귀는 떠나고 천사가 수종을 들었습니다.(4:11)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섬기는 영입니다.(1:14)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인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수종을 드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런 도움을 신뢰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며 가련함과 가난함에도 자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역자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6:32)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알고 염려 없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4:12-13) 우리도 세상에서의 가련함, 가난함으로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능력 있는 존재로 만드시고,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을 강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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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8-13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사건이 될 것이지만 이사야는 회복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속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고,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도우심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 가지로 호칭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야곱,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이름이고, 언약의 이름이고, 끊임없는 사랑이 공급되는 복된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길가에 버려진 아이 같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겼습니다.(16:6) 사람을 불쌍히 여김에서 사랑의 호칭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세 가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나의 종, 내가 택한 자, 나의 벗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을 믿고 일을 맡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존귀한 종입니다.(25:42) 또 하나님의 택한 자를 통하여 이룰 비전이 있습니다(7:6). 그리고 벗이란 말로 그 백성에게 친밀한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돕는 세 가지 행동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하고, 부르고, 붙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 선택이며, 부르심은 특별한 계획 속에 있게 함이고, 붙드심은 그의 의로운 오른손(10)으로 백성의 오른손(13)을 붙드심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정복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강조합니다.(31:6)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예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김으로 바라보며 사역하셨습니다.(9:36) 모세의 제자들은 무리를 율법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에는 정죄, 분노, 증오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김이 가장 강한 힘이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을 위하여 제자를 세우셨으며, 제자를 나중에 친구라고 하셨습니다.(15:15) 예수는 제자들을 종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친구로 여기고 함께합니다. 예수의 친구들은 예수의 마음, 목적, 계획, 그의 사역의 방법 등 모든 것을 알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친구들을 세상 끝 날까지 붙들어줍니다. 예수는 그의 친구들이 사역 할 때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28:20) 예수의 함께함은 포도나무 줄기로서 가지가 열매를 맺도록 계속 은혜와 힘을 공급하는 것입니다.(15:5) 예수의 함께함과 붙드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선민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러 애칭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환경과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 시민, 하나님의 권속임을 강조했습니다.(2:19)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면 두려움과 놀람이 없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등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면서 사역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믿으라고 하셨습니다.(14:1) 예수를 믿는 것은 지적인 동의만이 아니라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들린 오른손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이스라엘만 잘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주변사람들이 함께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 되는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과 힘을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함께 풍랑 만난 자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27:24-25)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하고, 택한 자로서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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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1-7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회복하는 일을 누가 했느냐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사역은 세상의 어느 왕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구원에 대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결정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세상제국을 다스리시며 그의 백성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깨웁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위하여 한 사람을 깨웁니다. 유다의 회복을 위하여 고레스라는 한 사람을 깨워 그가 바벨론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처럼 사역을 감당할 한 사람을 깨우십니다.(12:1) 바벨론 동쪽의 바사의 고레스를 깨우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깨운 사람을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십니다. 고레스가 큰 나라를 이루지만 그는 하나님의 발 앞에 이르게 됩니다.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세워주었음을 알았습니다. 에스라는 성전재건의 칙령을 내린 고레스의 깨달음을 기록했습니다.(1:2) 하나님은 왕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발아래 두시고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열국을 고레스에게 넘겨주어 다스리게 합니다. 메대의 속국인 바사의 고레스는 메대 왕을 죽이고 페르시아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리디아, 소아시아, 북서 인도를 점령하고, B.C.539년 바벨론 도성을 점령합니다. 바벨론의 벨사살은 주연을 베풀다가 도성을 빼앗기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5:5)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홀로 하나님입니다.(4)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통치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4:4) 예수는 아버지의 시간표대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셨습니다.(1:15)

예수는 오직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사역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명절에 성전에서 가르칠 때 그 교훈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그의 교훈이 아버지로부터 왔다고 하셨습니다.(7:16) 그리고 자기는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한다고 하셨습니다.(7:18)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을 잘 다스렸습니다.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오셨습니다.(5:26-27) 예수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이지만 특히 구원사역을 온전하게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오게 하여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셨습니다.(6:39)

3.세계를 통치하는 하나님께 대해 우리는 이 시대의 고레스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일에 부름을 받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는 물고기 잡는 평범한 갈릴리 어부를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깨우치셨고,(4:19) 또 핍박자 사울을 일깨워서 복음의 사도가 되게 했습니다.(9:4) 또 예수는 그들이 모든 민족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28:19)

영원한 왕 예수 앞에 서야 합니다. 원정을 떠났던 바벨론 왕은 열국을 모아 고레스를 막으려고 했지만(5) 실패합니다. 사람들은 많은 숫자를 힘으로 생각합니다.(20:7-8) 예수는 온 세상이 힘을 모아 대적해도 다 감당합니다. 고레스는 한 시대의 왕이지만 예수는 영원한 왕입니다.(20:12) 영원한 왕 예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지만(6-7)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사역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았습니다.(15:16)

하나님은 모든 세계를 움직이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시대의 고레스가 되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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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27-31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거나, 혹은 기도하지만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는 믿음이 없으므로 피곤함으로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이사야는 여호와를 앙망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기대, 기다림, 수집의 의미가 있습니다.

1.하나님을 앙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이사야는 야곱아! 이스라엘아!”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자존감을 깨우치는 외침입니다. 바벨론 포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인간 왕을 구한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삼상12:22) 언약백성은 고난은 있지만 버림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지체에 대해 실망하고 낙망합니다.(27)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사람들이 자기의 시간표로 기다리면 실망합니다. 엘리야도 실망할 때가 있었습니다.(왕상19:4) 욥에게서도 그의 고난이 지속될 때 원망과 불평도 나왔습니다.(13:24)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에 대한 기대감을 잃고(28-29), 인간의 힘을 의지합니다(30). 소년과 장정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이 있는 때입니다.(1:3)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지 못하는 사람은 힘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청년과 같은 인간의 장점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결국 피곤하고, 넘어집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앙망해야 할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28)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6:20)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께로부터 오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를 앙망해야 합니다. 영원하신 예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22:12-13)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셨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능력의 사역입니다.(10:38) 예수는 인간육체로서 피곤을 느꼈지만, 사역에서는 곤비함으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예수야말로 우리가 앙망하고 믿어야 할 대상임을 말했습니다.(20:31) 예수를 앙망함은 그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는 피곤한 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께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합니다.(1:14) 예수는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권능과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앙망이란 말의 뜻 중 하나는 수집하다입니다. 주의 은혜를 수집하려는 노력입니다.

3.예수를 앙망하며 새 힘을 얻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독수리같이 하나님의 백성은 높은 곳의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 하늘의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이다.(3:1-2)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가진 자라는 자존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달음박질해도 곤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달음박질은 사역에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3:14) 그리고 사도 바울은 순간적으로 달려본 것이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열정을 다한 달림이었습니다.(딤후4:7)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도록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걷는다는 단어는 동행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처남 호밥에게 동행을 요청했는데 그것은 또 하나님과 동행이었습니다.(10:32-33)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그 능력으로 피곤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하늘의 사람으로 살고, 사역에 열정이 식지 않으며,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힘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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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12-26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영광과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세상에는 지식이 많은 학자와 강력한 힘을 가진 열방들과 우상의 종교가 있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입니다.

1.하나님은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아시며(12), 그의 영을 지도할 자가 없으며(13) 누구도 정의, 지식, 통달을 하나님께 가르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지식이 무한하며,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14) 욥은 이 하나님을 잘 알았습니다.(28:23-25) 완전한 하나님의 지혜에 누군가 더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이 완전합니다.(15-17) 열방은 자기영광을 드러내려고 많은 노력을 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그 영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세계 제국들은 한 방울의 물, 저울의 작은 티끌, 떠오르는 먼지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자를 통하여 열방을 만드시는 분입니다.(17:5-6)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완전합니다.(26)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스스로 아무 것도 못합니다.(19-20) 창조주 하나님의 질문에 욥은 한 마디도 대답을 못했습니다.(38:4-6) 사람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의지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시는 진정한 스승입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라고 칭함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런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셨으며, 진정한 스승은 오직 한 분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23:7-8)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가르쳐 주시는 스승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17:8)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사탄은 자기에게 절만 하면 천하 영광을 예수에게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4:8-9) 사람들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차지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예수는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했습니다.(4:10) 진정한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있고, 그를 경배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는 창조주이며, 세상의 통치자로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지금도 예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되심을 강조했습니다.(1:15-17)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예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3.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세상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식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철학은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고전1:22-24) 세상의 가르침의 배경은 사탄의 거짓이 배경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주의 계명을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고백했습니다.(119:73)

세상의 영광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보이는 세상영광에 현혹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크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우상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 네피림의 힘이 사람들의 삶의 목표였습니다.(6:4) 예수에게는 세상기준의 아름다움은 없지만(53:2), 그는 우리의 참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면 실패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승리를 얻게 됩니다. 애굽 왕 바로 앞에서의 모세, 골리앗 앞에 다윗, 갈멜산의 엘리야 같은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에게 오직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17:20)

우리는 지혜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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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6-11

인생은 들풀과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사람을 의지했다가 망한 역사가 있습니다. 영원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위로를 받는 자들에게 말씀의 영원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풀과 같이 영원하지 않습니다.(6-7) 들의 꽃은 잠시 아름답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유다가 경험했던 바벨론의 힘도 강력한 것 같지만 그 영광스러움도 잠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난 받는 교회에게 이 말씀을 그대로 강조했습니다.(벧전1:24-25)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8)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사람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하며, 언제나 유효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하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어서 말씀의 영원함을 고백했습니다.(23:19)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하신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을 예고합니다.(10)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장차 임할 진정한 이 왕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은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입니다.(1:2-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고 통치하시는 왕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강한 자로 임하셨습니다.

예수는 연약한 인생의 모습으로 오셨고, 또 죄인의 자리까지 낮아졌지만 그것은 승리의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인간의 자리에까지 내려 오셨습니다.(2:7-8) 십자가는 정죄 당하고 조롱받는 가장 연약한 처지이지만 예수는 그 십자가로 세상의 강한 것들을 이기셨습니다.(2:15)

예수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의 시작부터 기록 된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4:4) 예수는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데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는 기록된 성경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기록된 말씀은 다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24:44)

예수는 강한 자로 임하셨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를 목수의 아들로 여겼지만, 예수는 가르침과 표적들로 그의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예수는 죽음의 세력을 가진 강한 자를 멸하셨습니다.(2:14)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연약함이 아니라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가장 강한 힘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3.가장 강한 자이신 예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는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는 이미 유다를 향하여 이방들이 아무 힘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2:22) 그러나 유다는 그런 이방을 의지하다가 망합니다. 늘 실패를 자주하는 우리도 똑 같은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힘을 의지하는 위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영원불변하며, 항상 효력 있는 것을 의지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는 그의 말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24:34-35) 변하지 않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재림의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혼인잔치에 신부로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강한 자로 임하신 예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살피고 심판하여 상급과 보응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의 상급을 바라고 힘을 쓰며, 보응을 알고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삶에 힘을 다했습니다.(딤후4:7-8) 인간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은 가장 강하신 하나님을 버리는 일입니다.(삼상8:7)

하나님의 백성들은 들의 풀과 같은 인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장 강한 자로 오신 예수만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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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0:1-5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는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첫 부분은 유다가 바벨론 포로 후 회복되는 일에 대한 말씀인데, 첫 마디가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만이 우리를 완전하게 회복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실 것을 선지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는 말씀하시는 분이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 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게 로암미즉 그들이 자기백성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1:9) “너희 하나님이란 말은 듣는 자에게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모든 은혜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위로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해야 할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입니다. 환상을 보는 이사야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위로자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가브리엘천사는 다니엘을 일으키며 위로했습니다.(8:18)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회복을 선포하며 위로합니다. 노역의 때는 끝났고, 죄악은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마음에 닿도록 전달됩니다. 또 위로라는 히브리어는 후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보시면서 마음에 후회도 합니다.(32:14)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에게 아기 예수를 만나 위로를 받게 하셨습니다.(2:25) 하나님의 위로로 그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를 보게 됩니다.(5) 예수는 이 말씀대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1:14)

예수는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통해서 등장합니다. 죄의 권세에 눌린 자를 위로하려고 예수께서 오실 때 세례요한은 그 길을 예비했습니다.(3:3) 하나님의 위로는 바벨론 포로귀환 백성에 대한 위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죄에서 구원받을 모든 사람에 대한 위로입니다. 그 위로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3:11)

예수는 구원으로 위로를 완성하며, 또 위로를 지속합니다. 예수는 가난한 자, 억눌린 자에게 은혜의 해로 위로합니다.(4:18-19)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의 위로가 지속되게 합니다. 보혜사는 위로자, 대언자입니다. ‘위로의 성령입니다.(9:31) 예수의 위로는 그가 보내신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위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는 그의 백성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여호와가 자기 목자임을 아는 다윗은 하나님의 위로를 깨닫습니다.(23:4) 하나님의 위로를 알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사도로서 예수의 위로를 받고 있음을 알았습니다.(고후1:5)

하나님의 위로를 믿음으로 받고, 또 위로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말씀을 이사야의 예언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언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성경의 위로가 있음을 강조합니다.(15:4) 우리는 성경의 위로로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란 위로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7:17)

위로의 사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합니다.(고후1:4) 사람의 마음에 닿으며, 사죄의 선포가 있는 위로는(2) 효력 있는 위로입니다. 예수는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를 완전하게 위로하셨습니다.(5:34) 골짜기, 언덕, 고르지 않은 곳과 같은 마음들을 평탄하게 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예수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위로할 이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로서 위로의 사역을 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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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9:1-8

이사야는 인간 역사의 결과가 항상 실패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왕 히스기야의 결말도 실패였습니다. 그의 교만의 결과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할 것이란 말을 듣습니다. 평안함이 사람을 단련하는 하나님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시험하셨습니다.

앗수르의 위협과 질병의 치유 이후에 바벨론 사자들이 편지와 예물을 들고 히스기야를 찾아온 것은 히스기야 자신이 강하고 큰 사람으로 여겨지는 착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평안해지고, 내가 강하다는 생각 안에 교만함이 틈탈 수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시험하셨다고 했습니다.(대하32:31)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사람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용광로와 같이 사람을 더 정련하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시험으로 자기의 뜻과 양심이 단련되기를 구했습니다.(26:2)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망하게 하려고 직접 시험하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욕심으로 시험에 들 뿐입니다.(1:13-14)

히스기야는 평안함의 시험에 대해 실패합니다. 히스기야는 전쟁과 질병은 기도로 해결했지만, 바벨론 사신들이 찾아 올 정도의 부유함과 평안함의 문제 앞에서는 교만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만나는 그들을 향한 시험도 됩니다.(16:4) 이스라엘은 만나를 통해서 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2.예수는 우리를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제자의 조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14:26-27) 사람이 자기목숨을 위해 살지 않으면 무서움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기며, 가족보다 주를 더 사랑하면 유혹과 평안함의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참 예수의 제자는 모든 시험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실패를 통한 깨달음으로 그들을 단련시키셨습니다. 예수의 권능을 받아 사역했던 제자들은 그것이 지속되지 않을 때 당황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는 그 원인으로 믿음’(17:20)기도’(9:29)가 그들에게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계속되는 믿음의 기도로 시험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물질과 육신적 평안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은과 금은 없지만 예수 이름으로 사역했습니다.(3:6) 그리고 베드로는 이 일 후에 예수 이름만을 드러내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3:12-13)

3.우리는 평안의 시험도 통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풍요와 평안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고 마실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주셨지만 불평하는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습니다.(106:14-15) 육신적 평안이 목적이면 영혼이 버림받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육신적 조건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4:12-13)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시는 과정입니다.(1:2-4) 하나님의 시험 그 자체를 힘들어 하고 불평하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더욱 단련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습니다.(대하32:25)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드러낼 때 교만을 이기지만, 그것이 내 힘으로 된 줄 착각하면 교만에 빠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누릴 모든 것이 그들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8:18)

우리에게 있는 평안함도 하나님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평안함의 시험을 잘 이겨야 합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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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9-22

히스기야는 죽음 앞에서 영적 외로움과 영혼의 고통을 느꼈지만, 치유를 통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인생의 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통한 깨달음이 얻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고통 후의 평안을 깨달았습니다.(17) 하나님의 계획을 몰랐을 때는 빼앗긴 중년의 여생에 대한 상실감(10), 모든 것이 끝났다는 허탈감에 빠졌지만(12-13)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고통 뒤에 있는 평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샬롬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박국은 이 샬롬을 깨달은 사람입니다.(3:17-18)

히스기야는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17)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죄를 등 뒤에 던져버렸습니다. 육체의 질병만이 아니라 그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깨달았으며,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영혼과 육체를 온전하게 하십니다.(살전5:23)

히스기야는 자기가 하나님의 산 자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18-19) 죽은 자는 감사, 찬양, 소망이 없습니다. 할 일도 모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산 자이고, 자녀를 낳으며 그에게 주의 신실하심을 알게 할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는 사두개인들에게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12:27)

2.우리는 오직 예수를 통하여 산 자가 되고, 깨닫는 자가 됩니다.

부활의 예수를 통하여 생명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는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에게 부활과 생명을 보여주십니다. 병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는 죽은 자를 깨우셨으며(11:11), 자신도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후의 생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도 부활의 주님을 보고 깨달았습니다.(20:28)

사역의 예수를 통하여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의 치유는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다루셨습니다.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에게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5:34) 오병이어의 이적 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늘로서 오는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를 통하여 우리의 할 일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는 산 자의 주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믿음으로 살아 있는 자들에게 주가 되어주십니다.(14:9)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한 자들은 그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3.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을 깨달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로 고난 이후의 것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땅의 것을 통하여 하늘을 보고, 현재를 통하여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예언서들은 이런 시각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저자는 고난으로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유익을 깨달았습니다.(119:71) 이런 일을 깨닫기 위해서 이미 기도했었습니다.(119:18)

영적인 삶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적 행복과 기쁨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몸의 회복만 약속하지 않고, 그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36:26)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새 영, 새 마음입니다.

산 자의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믿음으로 지금도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은 창세기 4장의 가인의 후손처럼 세상에서 여러 일들을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준비는 못합니다. 산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살아 있어서 말씀을 믿고 할 일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있는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의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자로서 우리는 이 은혜를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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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1-8

모든 사람은 자기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방법과 길을 찾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생긴 문제는 앗수르의 침입과 개인적 질병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죽음의 날이 임박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을 치리합니다. 히스기야는 6년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고, 14년에 앗수르가 쳐들어 왔고, 질병도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기도로 생명이 15년 연장되어 54세에 죽습니다. 즉 히스기야 14년은 질병과 전쟁이 동시에 나타난 때입니다. 이러한 연속되는 위기는 지금 교회에도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신앙회복을 위하여 힘썼습니다.(왕하18:5-6)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위기는 연속됩니다. 사람은 위기를 두렵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 속에서 이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이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이 믿음의 길에 선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합니다.(4:3) 그는 성전에서도 기도했고, 벽을 향하여 기도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도의 동기이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입니다.

2.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언약에 근거하여 응답하셨습니다.(5)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눈물을 보셨지만, 응답이 사람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 다윗언약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열심이 하나님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물과 부르짖음이 필요하지만, 느헤미야처럼 언약에 근거한 눈물과 부르짖음이어야 합니다.(1:9)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수한을 15년을 더하고, 예루살렘을 보호하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5-6)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든든함도 사회적 조건이나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함이 이루어집니다. 바울에게 환난은 계속되지만, 주님의 도우심도 분명합니다.(23:11)

하나님의 치유의 징표로 해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8) 아하스가 도입한 앗수르의 해시계의 해그림자가 뒤로 물러가게 하신 것은 시간을 되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연장은 오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시간들입니다.

3.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고백할 때 언약의 관계가 이뤄집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12:4) 하나님께 부르짖기 전에 먼저 예수의 말씀에 믿음과 순종이 우선입니다. 기도 이전에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우선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응답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아하스는 응답을 우상에게 구했지만, 히스기야는 그 우상들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5:15) 예수는 제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응답받도록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16:23)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오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응답을 받은 자는 예수 이름을 드러낼 책임을 져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15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이룰 시간들입니다. 그러나 치유 이후에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사자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자기 보물을 보여주었습니다.(39:2)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자로서 예수를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 때와 시간을 주관하시며, 그의 백성들의 간구함을 보시고 들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하고, 응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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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7:30-38

하나님은 기도하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 왕이 되돌아갈 것을 말씀하시고 그 일에 대한 징조를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주신 하나님의 징조를 알고, 또 징조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징조를 주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에게 징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주셨습니다. 아하스에게는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징조를 주셨고, 하나님께서 버린 사울 왕에게는 아무런 징조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신 이 징조는 3년에 걸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전쟁이 없는 평화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약속하십니다.(52:7)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징조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주셔서 그가 비전을 품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합니다. 이 징조는 일이 성취된 다음에 '하나님께서 진실로 역사하셨구나!'하는 것을 나중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3:12) 하나님이 주신 징조의 목적은 사람에게 평안과 믿음을 더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조가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일하십니다.(32) 하나님은 유다 족속 중에 남은 자가 뿌리를 박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평화의 때에는 아무 일이 일어난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가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5:17)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징조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예수는 평화와 안전의 하나님의 징조를 완성합니다. 히스기야가 받은 징조는 평화와 안전함의 징조입니다. 세상 사람이 추구하고 노력하는 평화와 안전은 불완전합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평화와 안전을 얻으려고 했습니다.(4:17) 사람의 육신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평화는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4:7)

예수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징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예수의 사역에서 나오는 표적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표적만 구할 뿐이었고, 그를 통해서 가질 믿음이 없으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16:4) 예수는 사역의 결론에서도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14:1)

예수는 징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자신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구와 통로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14:10) 유다 족속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일은(31)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징조를 가진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징조를 깨달아야 합니다. 초자연적 징조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일반적인 삶에 나타나는 징조는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회복하시며 함께 합니다.(43:2) 우리가 물과 불을 통과하는 어려움의 환경은 그대로지만 하나님은 늘 함께 합니다. 이 도우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징조를 주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징조를 통해서 믿음을 가질 수 있게도 하십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 일이 우리에게 주신 징조입니다.(14:11) 하나님의 징조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믿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징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의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무기가 됩니다.(6:13)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서 많은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징조를 주시면서 사람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특별하고 이상한 징조가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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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7:21-29

나라의 사법부는 법으로 판결하고 집행하지만, 그 판결에 대해서 반발도 있고, 새로운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정확하고, 엄중하고 그 심판을 집행할 수 있는 판결은 오직 하나님의 판결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의 응답으로 앗수르 왕을 판결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 편에서 판결하십니다.(21) 앗수르에 대한 판결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종 다윗을 위하여”(35) 판결합니다. 하나님의 판결기준은 세상의 도덕과 윤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언약으로 모든 것을 보십니다. 다윗언약은 다윗의 후손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삼하7:12-13)

하나님의 판결에는 정확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가 행한 일과 말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23-25) 앗수르 왕의 훼방과 능욕, 그리고 그의 교만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살피시는 분입니다.(8:27) 하나님은 모든 사실을 다 정확하게 알고 하시는 판결이기 때문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판결을 강력하게 시행합니다.(29) 앗수르는 자기가 모든 나라를 정복했다고 자랑하지만,(37:12-13) 하나님은 그 앗수르 왕을 무너뜨리십니다. 유다를 위협하는 앗수르 왕의 말은 이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도 갈고리로 끌어냅니다. 세상의 강한 나라도 하나님의 갈고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29:4)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판결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다윗언약은 다윗의 집이 영원토록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다에 다윗의 후손인 왕이 없을 때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 나와서 치유를 받았습니다.(9:27) 예수는 다윗언약을 성취하며 왕으로서 사역하시고, 대적들은 완전하게 멸하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판결을 내리는 심판자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알고 계셔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2:24-25) 예수는 제자이기는 하지만 결국 자기를 팔아버릴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6:64)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로 보이지만, 예수는 가장 큰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10:38) 예수의 능력 중에 가장 큰 능력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려고, 체포되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는 기록된 성경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14:49)

3.우리를 위하여 대적을 판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언약, 시내산언약, 다윗언약과 같은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람의 충성으로 쌍방책임을 지는 이 두 가지가 언약을 이루는 힘입니다. 오직 우리의 충성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언약의 말씀을 믿고 붙들어야 합니다.(11:9-10)

하나님의 정확한 판결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대적을 향한 판결을 신뢰하면, 시험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갈렙은 가나안 족속을 멸하시는 말씀을 믿었지만, 불신의 정탐꾼은 믿지 않았습니다.(13:30-31)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판결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강건한 삶을 사는 기초가 됩니다.

말씀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기도했습니다.(16) 하나님은 앗수르 군대 185천을 하룻밤에 죽이고, 왕도 죽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의 일을 만들며 성취합니다.(33:2)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대적들이 심판의 판결을 받습니다. 우리 편에서 판결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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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7:8-20

앗수르 왕의 협박은 유다에게 위협이 되었지만, 이런 시험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의 패턴은 동일합니다. 모든 시험을 예수 안에서 해결하고 살아야 합니다.

1.히스기야가 당하는 시험은 사탄의 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은 도전해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에서 물러가면서도 유다를 끝까지 협박합니다.(9,14) 사탄의 전략의 첫 번째는 사람에게 다가 오는 것입니다.(3:1) 앗수르 왕도 정치적 판단으로 잠시 물러간다고만 생각하면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계속 유다를 조롱하며 무너뜨리려고 애를 씁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에 속지 말라’(1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거짓입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만듭니다.(3:4)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사탄은 믿음을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게 합니다.

사탄은 다른 것을 믿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그가 무너뜨린 나라와 신들을 보라고 합니다(11-13). 사람은 보이는 것들을 쉽게 믿습니다. 사탄은 다른복음을 주어 말씀을 떠나게 합니다.(3:5)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주의, 골로새교회에는 체험주의자가 있었습니다.(2:18) 말씀보다 영적 체험을 중요시하는 일이 있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당할 모든 시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는 사탄의 시험을 먼저 이기고 사역을 시작합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시2:7하나님의 아들과 사42:1하나님의 기뻐하는 종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모든 시험을 이겨 놓고 사역을 시작하십니다.(4:10-11)

말씀이신 예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주셨고, 시험을 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십니다. 사탄은 거짓으로 다가오지만 예수는 진리를 주셔서 사람을 사탄의 유혹과 억압에서 자유하게 합니다.(8:32) 그리고 사람이 되신 예수는 사람의 모든 고난을 직접 체험하셨는데, 그 목적은 사람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2:18)

예수는 교회가 시험의 때를 면하도록 해 주십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에게 대적이 주는 시험의 때는 다가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씀을 지키며 배반하지 않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3:10-11) 시험의 때가 오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시는 예수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이 보낸 글을 성전에 가서 펴 놓고 기도했습니다.(14) 우리에게 다가온 시험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다가 올 때 우리는 더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4:8)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사탄의 시험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묵상하여 더 알아야 합니다.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고백했습니다.(16)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6:3) 히스기야는 세상 신들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임을 알았습니다.(19)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는 이유는 자기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광이 목적이 되면 시험에 쉽게 빠집니다.(딤전6:9) 히스기야는 천하만국이 주님만이 여호와인줄 알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20) 마귀는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하지만 예수는 오직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 된 마귀의 시험은 지금도 교회를 시험하며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시험을 이미 이겨놓으신 예수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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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7:1-7

이사야서의 기록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신뢰하고 살 것인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입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1.앗수르의 조롱과 모욕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왕과 신하들과 제사장 중의 어른들이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며, 나라에 닥친 위험성을 공유합니다. 굵은 베옷은 슬픔, 회개, 복종, 원통함, 금식 등의 이유로 입습니다.(2:10) 히스기야는 회개와 슬픔을 굵은 베옷으로 표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으로 갑니다. 하나님에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성전으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봉헌하던 솔로몬의 기도를 기억합니다.(왕상8:29) 하나님은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그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4)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응답의 통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려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여호사밧도 말씀의 통로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왕상22:7)

2.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날 때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앗수르 왕의 종의 말은 아무 효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10:28)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두어 그가 소문을 듣고 돌아가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의 소문(9)을 듣고 돌아갑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앗수르의 산헤립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 등장했을 때 귀신은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귀신들 전체에게 임할 일을 두려워했습니다.(1:24)

하나님은 앗수르 왕이 그 나라에서 칼에 죽게 합니다. 산헤립이란 한 사람의 죽음 정도가 아니라 앗수르라는 나라가 쇠퇴하는 원인이 됩니다. 대적의 죽음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를 핍박하던 권세가 그리스도의 권세로 깨어진다고 말하여 교회에 위로와 힘을 줍니다.(12:9-10)

3.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를 의지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처음에 앗수르에게 공물을 바쳤지만(왕하18:14), 계속 된 공격으로 그 방법의 잘못을 알고 회개합니다. 아하스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히스기야는 인간적 방법에서 돌아섭니다. 예수의 사역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던 것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들은 히스기야에게는 이미 기록 된 말씀입니다. 기록 된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길입니다. 예수는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4:4)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할 권세는 오직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10:1)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듣고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처럼 믿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욕하는 자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어떤 대적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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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6:1-22

이스라엘의 절기들의 년 중에 가운데 있는 맥추절은 구원받은 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는 삶이 구원받은 자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대적들의 공격으로 감사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1.앗수르는 유다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계속되는 환난은 감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가 다시 쳐들어 왔습니다.(1)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왕이 공격을 받는 것은 인과응보적인 면에서 불평과 염려가 될 수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재앙이 계속 되고 욥이 병들어 재에 앉아서 몸을 긁고 있는 것을 보고 욥을 비난했습니다.(2:8-9)

스스로 작아 보이는 것들은 감사를 잃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유다의 여호와 하나님을 힘없는 신이라고 속입니다.(7) 앗수르의 신당과 제단의 외형은 크고 놀라웠습니다. 아하스 왕도 이 제단을 예루살렘에 만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왕하16:10)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으면 보잘 것 없는 겉모습으로 감사를 잃을 수 있습니다.

기대감의 상실로 감사를 잃게 됩니다. 앗수르 왕은 자기가 유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다고 속입니다.(16) 하나님께의 은혜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지면 사탄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 갑니다. 은혜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모르면 감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21:5)

2.역사 속에 들어오신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는 환란 가운데서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침입한 앗수르를 하룻밤에 망하게 하셨습니다.(37:36) 이러한 승리는 예수 안에서 분명하게 완성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승리자로서의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16:33) 예수의 승리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예수는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게 합니다. 유다는 너무나 연약해서 앗수르가 마음 놓고 조롱할 정도였지만(8), 하나님은 유다가 이기게 합니다. 예수는 갈릴리 어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든 민족들을 제자삼고 가르치게 합니다. 예수는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대적을 능히 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21:15)

예수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있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12) 세상이 평화, 번영을 약속하지만 오직 예수만이 진정한 소망을 주십니다.

3.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분명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의해서 예루살렘만 외로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는 그 신앙을 무시하고 조롱했지만(7), 그 신앙이 세상의 도전을 이기는 힘이었습니다. 세상은 신앙을 조롱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진정한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보면 염려와 근심이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 능력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여호사밧 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대하20:17-18)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는 자가 도우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를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탄의 거짓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랍사게의 무슨 말에도 대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1) 나중에 그의 개인적 질병에서 치유 된 후 살아 있는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38:18-19)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분명하면 거짓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분명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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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5:1-10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잘못을 징계하시기는 하지만 결국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거룩한 길로 행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거룩한 길을 열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이 영광과 아름다움을 얻게 됩니다.(1-2) 광야나 사막은 구원이전의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입니다.(4:15)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영과 육의 모든 메마름을 회복시켜 줍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회복이 이루어집니다.(8:30)

하나님은 거룩한 길을 열어주십니다.(8)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셔서 아름다워진 그곳에 대로가 있어 거룩한 길이라 일컫게 됩니다. 거룩한 길은 회복의 길이고, 치유의 길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노래하면서 돌아오는 길입니다.(10)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길에는 깨끗하지 못한 자, 우매한 행인이 다닐 수 없으며(8), 사람을 해치는 사자나 사나운 짐승이 없습니다(9). 거룩한 길에는 거룩하게 구별 된 사람들만 다닙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받는 사람을 구별합니다. 주의 은혜로 구별 된 사람은 사탄이 만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요일5:18)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드신 유일한 거룩한 길입니다.

예수는 사람을 영광스럽게 회복시키십니다. 핍박자 사울은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만난 후에 사도라는 영광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는 사울을 변화시켜서, 사도 바울로 만드셨습니다.(딤전1:12-13) 회복 중에 중요한 것은 영의 회복입니다. 예수를 알고, 예수가 진정한 구원자임을 깨닫는 것이 참 회복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한 많은 길들을 찾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14:6) 세상의 종교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은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 길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는 그의 사람들을 구별하여 함께 하며 보호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주시는 것은 제자들과 세상을 구별하는 것입니다.(14:16-17) 죄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들어오시고, 함께 거하심으로 완성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진리를 깨닫게 하고, 사역을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3.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룩한 길에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회복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사람의 회복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완성됩니다. 우리의 완전한 회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환란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교회를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실 것이란 사실을 알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살전5:23-24)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 거룩한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면서 핍박을 받았지만, 더 강하게 예수의 이름을 강조했습니다.(4:12) 거룩한 길로 행한다는 것은 자기의 판단과 기분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매한 자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나 우매한 자는 거룩한 길로 다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구속함을 받은 자는 구별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어리석은 자와 함께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1:1) 악한 꾀, 현세적 유익, 자기를 자랑하는 오만함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는 하지만 버리지는 않습니다. 거룩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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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4:1-17

유다에게 해를 끼친 에돔을 향한 여호와의 보복과 신원의 날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위하여 내 억울함을 신원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보복하시고 신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보복합니다. 유다를 조롱하고 해를 끼친 에돔의 죄를 묻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모스도 에돔의 죄를 말했습니다.(1:11) 모세도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복수를 말했었습니다.(32:4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처지와 형편을 다 헤아리며, 또 보복은 자기 백성에 대한 속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신원해 줍니다. 신원은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까지 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즐거워했고(35:15), 하나님은 해를 당한 유다의 손해에 대해서 그 모든 것을 다 되찾게 합니다. 하나님은 억울하게 손해를 본 그의 백성들의 호소를 신원하십니다. 아벨의 피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4:10)

여호와의 보복과 신원은 줄과 추로 합니다.(5,11) 여호와의 칼에 많은 사람이 죽고, 혼란의 줄, 공허의 추로 인해서 혼란과 공허에 빠집니다.(왕하21:13) 줄과 추는 하나님이 재어보는 기준이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심판을 당합니다. 에돔은 형제를 향한 사랑을 원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아 혼란과 공허에 빠집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복과 신원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에 대한 예수의 관심은 각별합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특히 그의 사람들을 향한 관심은 특별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하셨습니다.(15:13-14) 이 말은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또 제자들을 향해 늘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8:20)

예수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원 받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14:13-14) 사도들은 박해를 받을 때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했고(4:29), 하나님은 그들을 신원하셨습니다.(4:31)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억울함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받습니다.

예수는 은혜의 줄과 추로 사람을 봅니다. 유대인은 자기들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여기면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예수나 손 씻지 않고 먹는 제자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보는 예수는 세리의 기도를 의롭다고 선포합니다.(18:14) 은혜의 줄과 추로 보면 자기의 죄를 알고 은혜를 구하는 그 사람이 의롭게 보입니다.

3.우리를 위하여 보복하고 신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보복은 주께 맡기고, 주 안에 서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잡으려는 사울에 대한 보복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삼상24:4)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것은 자기 삶의 위치를 말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주 안에 서라고 말합니다.(4:1) 우리가 주 안에 분명하게 서는 일에는 불분명하거나, 양다리 걸침도 안 됩니다.

신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아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 안에 서 있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아뢰는 사람입니다.(4:6)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그 백성의 모든 처지를 아시고, 그들의 간구에 신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아뢴다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지속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은혜의 줄과 추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돔의 죄는 형제국가 유다를 향한 긍휼과 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향한 긍휼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 예수께서 새 계명으로 주신 사랑이 우리의 삶을 재어보는 기준입니다.(5:22) 실수를 저지른 형제도 용서와 사랑으로 대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항상 자기 백성의 편에 서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늘 하나님께 자기의 삶을 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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