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5:5-12

   예루살렘은 그 성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멸망한다고 말씀합니다. 국가, 가정, 각 개인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신 목적이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이루어야 성공입니다.

1.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 원인을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이방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셨으나(5) 그들은 그 위치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지리적, 영적으로 세상 중앙입니다(38:12). 예루살렘은 세상 중앙에서 주변에 하나님을 드러내 하는데,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했고, 이것이 그들의 멸망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규례와 율례를 두셨습니다(6).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두셨습니다(20:2-3). 예루살렘은 요란했으며, 이방인보다 더 악행을 드러냈습니다. 요란함은 말씀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소리가 가득한 상황입니다. 이방인도 상식적인 법을 만들고 지키는데, 예루살렘은 더 악한 모습이었습니다(고전5:1).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거룩한 성소를 두셨습니다(11). 성소는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25:8). 다윗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도우심이 나타남을 알았습니다(20:1-2). 하나님은 성소에서 그들과 함께하려고 하셨으나 예루살렘은 미운 물건, 모든 가증한 일 즉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지 않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세상에 보내시고, 함께합니다. 예수는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가 세상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빛을 발하도록 말씀과 예수 이름의 권능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십니다(14:14,:16). 또 예수는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항상 함께하십니다(28:20).

   말씀이신 예수는 사람이 되셨고, 제자의 마음에 말씀을 주시며, 함께합니다(15:7). 교회다움은 그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철학, 도덕, 윤리, 예술성이 있어도 말씀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는 돌판이 아니라 제자의 마음에 말씀을 둡니다. 에스겔도 그 예언을 합니다(36:26-27).

   예수는 성령을 보내어 우리를 거룩한 성소로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을 성소로 여기지만, 예수는 성령을 우리 마음에 두셔서 우리가 성소가 되게 합니다(고전3:16). 베드로는 우리가 신령한 집이 되고,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강조합니다(벧전2:5).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3.멸망의 원인이 해결된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중앙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드러내야 합니다. 큰 건물, 많은 사람,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예수를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고후3:3). 그리스도의 편지에 그의 구원과 사랑과 그의 영광이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 바울처럼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18:5). 말씀에 붙잡히면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이 이끄는 대로 삽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으나, 말씀을 범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모독을 당하게 했습니다(2:23-24). 말씀보다 인간의 소리가 더 커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울이 말씀에 불순종할 때 성령은 떠났습니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은 회개하며 성령이 떠나지 않기를 구했습니다(51:11). 성소의 거룩함이 유지되도록 성령 충만을 구하고, 성령께 복종해야 합니다(고전9:27).

   평화의 성 예루살렘이 왜 평안을 잃어버린 성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지금도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드러낼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잘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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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5:1-4

   에스겔은 머리털과 수염을 잘라 불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흩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는 표적이 됩니다. 교회는 세상에 영광의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을 예루살렘 멸망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날카로운 삭도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으라고 하셨는데 제사장이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것은 거룩함을 잃은 수치의 표입니다(21:5-6). 암몬의 하눈은 다윗의 조문 사절의 수염을 잘라버리고 그들을 조롱했습니다(삼하10:5). 머리털과 수염이 잘린 에스겔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망할 때의 수치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잘린 머리털과 수염을 불사르고, 칼로 치고, 흩어 버립니다. 이 광경은 유다의 멸망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왕하25:1-2). 머리털과 수염을 삼 분의 일씩 나누어 불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흩는 일은 예루살렘이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고, 전쟁의 칼에 죽으며, 포로가 되어 흩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5:12).

   에스겔은 터럭 중에서 조금을 옷자락에 싸고, 그 가운데 얼마를 불에 던져 사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망할 때도 하나님께서 소수의 사람을 남겨 두시고, 그들에게도 고통이 있을 것을 보여준 표적입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도 남은 자를 말합니다(23:3). 에스겔은 남은 자에 대한 은혜와 그들이 당할 고난의 표적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의 목적을 다 이루셨습니다.

   모든 병과 약함을 고치는 권능을 가진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습니다(10:1). 질병이나 약함은 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은 재물을 받아 나와서 약한 자가 없었습니다(105:37). 오병이어 이적을 보여주신 예수는 육의 양식을 초월하며, 하늘 양식을 주는 자임을 보여준 표적입니다(6:27).

   예수는 전쟁의 칼에 엎드러지는 자를 살리십니다. 전쟁을 만난 사람에게는 강한 적군과 패배와 멸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말하며 골리앗을 이깁니다(삼상17:47). 만왕의 왕 예수는 이 땅의 실제적 전쟁도 주관하시며, 특히 영적 전쟁에서 제자들이 마귀를 이기게 합니다(16:33).

   예수는 포로 된 자가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죄와 사망 권세에 포로 된 죄인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수는 부활로서 사망 권세를 이기고, 구원받을 자를 사로잡고 승천하셨습니다(4:8). 예수께 포로 되는 일이 구원입니다. 예수는 죄인을 사망에서 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1:13).

3.우리는 예수의 은혜의 옷자락에 쌓인 표적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표적을 잘 이해하고, 지혜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는 성전의 무너짐을 경고하며, 그날이 오기 전 제자들이 살아야 할 지혜로운 삶을 가르쳤습니다.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며(24:4),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질 때 끝까지 견디며(24:12-13), 깨어서 맡은 사역에 대해 충성을 해야 합니다(24:45-46).

   주의 은혜의 표적을 본 자로서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생명 싸개 속에 싸여 있는 사람으로서(삼상25:29) 유다 광야를 성소라고 말하며 광야에서 주의 권능과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63:1-2). 예수의 은혜의 옷자락 속에 있는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주의 권능과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드러내는 표적 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합니다(1:14). 예수의 제자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 등경 속에 있는 등불이 아니라 영적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그 백성들이 바라보는 표적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표적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잘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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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4:9-17

   하나님은 에스겔이 누워있는 동안 고난의 음식을 먹게 하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받을 기근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기근의 벌을 알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교훈을 얻으면 고난이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이 고난의 떡을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의뢰하는 양식을 끊습니다(16). 에스겔은 모로 누워있는 동안 아주 적은 양의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서 예루살렘에 기근이 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근이 극심하면 자기 자녀를 잡아먹는 끔찍한 일도 벌어집니다(28:57). 하나님은 사람들이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실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정한 떡을 먹을 것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이 떡을 만들 때 백성들의 목전에서 인분으로 굽게 했습니다(12). 인분은 더러움이 상징입니다(23:13-14). 부정한 떡을 먹는 일은 이방 땅에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쫓겨난 상황입니다. 다니엘은 부정함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1:8).

   하나님은 에스겔의 호소(14)를 듣고 인분 대신 쇠똥을 허락합니다(15).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은 변경되지 않지만, 에스겔을 곤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정결과 부정에 대한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10:15). 쇠똥을 허락한 일은 살길을 열어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진노 중에도 긍휼함이 있습니다(3:2).

2.예수는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으며,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기근이 무엇임을 말씀하셨으며(4:4), 영적 기근을 막아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 기근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예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양식인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급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물질적인 것에 매이지 않게 하셨습니다(6:31-32).

   예수는 인간의 부정함을 정결하게 합니다. 부정하게 된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사람은 정결을 추구하나 부정함은 물로 씻어지지 않습니다(2:22).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깨끗하게 됨을 강조하시고, 자기 안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15:3). 말씀으로 정결케 되어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오게 됩니다.

   예수는 우리를 영생으로 이끄십니다. 예수는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벗어나는 정도로 돕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완성합니다. 예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것은 영생입니다(10:28-29). 예수의 구원은 순간의 어려움의 해결이 아니라 영원한 해결입니다. 부족한 음식, 부정한 음식에서 건져 주는 일의 완성은 영생입니다.

3.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소망의 행군을 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경제적 기근을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영적 기근과 기갈을 주의해야 합니다(8:11). 하나님은 전쟁과 난리, 기근과 전염병 같은 마지막 때의 징조를 허락하셨습니다(21:11). 물질적 기근이 아니라 영적 기근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은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4:8). 부정한 음식이 아니라 부정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물질적 음식을 구별하나 예수는 사람 속에서 나오는 더러움을 강조합니다(7:20-21). 거룩한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상이 아니라 주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자기를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핍박자 사울이 사도가 된 것은 오직 은혜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고전15:10). 우리에게 살길, 환난을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소망을 걸어야 합니다(고전10:13).

   에스겔은 고난의 음식을 먹는 중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소망의 행군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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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4:4-8

   에스겔의 두 번째 행동 예언은 모로 누워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것입니다. 줄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선지자의 모습은 패역한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자화상입니다. 에스겔의 행위를 통하여 자기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이 줄에 묶여 모로 누운 모습을 보여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왼쪽으로 390, 유다를 위하여 오른쪽으로 40일 누워있게 했습니다. 이 모양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눕다라는 히브리어 샤카브는 부정적 면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편한 휴식보다는 시체, 영적 음행의 모습이며, 줄로 동인 것은 자유가 없음을 말합니다(52:11).

   하나님은 에스겔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짊어지고 담당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대속 사역을 완수하지는 않으나, 대속자를 보여주었습니다. 백성들의 문제를 짊어지고, 담당하는 말은 제사장에게 많이 사용됩니다(28:38).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고난에 동참하며 그들을 위한 대속자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굴을 세우고, 팔을 걷어 올린 것은 군사들이 싸움을 준비한 자세입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가 필요합니다(8:4). 에스겔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주며 예언을 합니다.

2.예수는 우리의 대속자로서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담당한 여호와의 종입니다(53:6). 사람이 되신 예수의 모습은 건강과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고 외모를 가꾸려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합니다(53:2). 죄인의 모습에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받는 그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구원과 자유를 주시는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자신의 사역이 무엇인지 선포하셨으며(4:18), 또 사역을 마무리하시면서 무덤에서 부활하시면서 그의 시신을 싼 세마포 즉 결박을 풀어버리셨습니다(20:6-7). 예수 안에서 사망의 권세에 포로 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합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하셨으나 안타까움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분노하셨으나(21:13), 또 분노만 품지 않으시고, 멸망할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가졌습니다(23:37). 예수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 속에서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3.우리는 성경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대속자 예수 안에서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모로 누운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자화상이며, 십자가의 예수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53:5). 예수를 향한 연민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가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알고, 철저한 회개와 대속하신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해야 합니다. 성경의 거울에서 우리를 발견해야 합니다(1:7).

   예수로 말미암아 얻은 자유를 잘 누려야 합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율법에서 자유를 얻은 바울은 형제를 얻으려고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고전9:19). 교회는 종의 자세로 형제들의 문제를 담당하며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5:13). 사랑의 줄에 스스로 매여야 합니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합니다(벧전2:16).

   은혜의 얼굴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자화상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은혜의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삼하9:6). 그에게 평안을 주며, 그의 기업을 누리게 하고, 왕의 상에서 먹으며 왕의 얼굴을 보는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경에서 발견한 우리의 자화상에서 우리 문제를 발견하고, 우리를 위한 대속자 예수를 찬양하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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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1-3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토판에 예루살렘 성읍이 포위된 모습을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여주며,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에 대한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토판에 예루살렘이 포위된 모습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최후를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예레미야는 목에 멍에를 메고, 에스겔은 토판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부하지만(28:11), 죄악이 가득한 결과는 분명합니다(5:1). 실제로 7년 만에 예루살렘은 파괴됩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는 대적이 언덕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세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같은 강력한 나라를 징벌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25:9).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포위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예루살렘 성 사이에 철벽을 두게 하셨습니다. 성읍과 선지자 사이에 있는 철벽은 성읍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1:15). “성을 에워싸라는 말은 그것을 향하여 너의 얼굴을 고정시키라는 말입니다. 선지자의 얼굴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의 얼굴을 의미합니다(34:16).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징벌받는 자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에스겔이 토판에 새긴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진노 속에 있는 자들과 함께하고, 그들이 징벌에서 벗어날 길을 만드셨습니다(1:11-12). 예수는 사람이 멸망 당하는 원인인 죄를 가르치셨으며(3:14-15),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14:6).

   예수는 모든 권세를 가지셨으나 징벌받는 예루살렘을 대신하여 벌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하늘의 천사도 동원할 권세가 있으나(26:53), 진노 속에 있는 죄인을 구원하려고 죄인을 포위하고 있는 어둠의 권세에게 자신을 내어주시고(22:53)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고전15:55-57).

   예수는 하나님께 외면당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외면당하셨습니다(27:46). 하나님께 외면당하신 예수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벽은 무너졌고,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2:14).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귀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요일1:3).

3.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면서, 징벌에 들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 거룩한 집이 되도록 진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루살렘 멸망은 말씀을 믿지 않고, 사람의 생각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할 일을 강조했습니다(딤전3:15). 하나님의 집의 거룩함을 이루기 위하여 진리의 기둥과 터인 하나님의 집에서 진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17:17).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포위한 세상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질병과 기근 재난,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핍박이 있어도 이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고후4:8-10).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4:7).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사방이 막혀 있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간구했습니다(4:6).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고라 자손도 하나님의 얼굴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42:5).

   예루살렘 멸망의 모습을 보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루며,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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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22-27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권능으로 임하시고, 영광을 보여주며, 일으켜 세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족속이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스겔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사역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을 패역한 족속에게 보내시며 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하셨습니다(24). 패역한 족속은 말을 듣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말하는 자의 입을 막으려고 공격합니다. 요아스는 말씀을 전하는 스가랴를 죽였습니다(대하24:21-22). 에스겔에게 문을 닫는 일은 그가 말씀을 전할 대상의 공격적 성향을 알고 그 마음을 미리 준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족속에게 말씀을 주지 않습니다(26).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천장을 붙게 하여 꾸짖는 자가 못 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가 말을 못 하는 일은 패역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사야에게도 비슷하게 말씀하셨습니다(6:10).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 진정한 기근이라고 했습니다(8:11).

   하나님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를 위하여 선지자의 입을 여셨습니다(27). 하나님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을 기대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의 결과는 말씀을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를 구분합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도 들을 귀 있는 자를 강조하셨습니다(8:8). 말씀을 들을 귀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열립니다(16:14).

2.예수는 세상에 보내시는 사도들의 입을 주관하여 사역하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들의 말을 들을 대상을 알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환경은 이리 속의 어린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10:16-17). 그리고 또 예수는 헤롯 왕에 대해서는 여우라는 표현도 하셨습니다(13:32). 제자들의 사역은 여우같이 간교한 사람에게 가서 해야 하는 어려운 사역입니다.

   예수는 말씀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재판받을 때 빌라도의 질문에는 대답하셨으나 대제사장의 고발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습니다(15:5). 말씀에 대해 마음을 닫은 자들에게는 말씀을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13:46).

   예수는 제자들이 입을 열어 말씀을 선포하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산상설교 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고넬료의 집에서 입을 열어선포했습니다(10:34-35). 성령은 유대인 베드로의 입을 열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졌음을 분명히 말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3.우리도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역의 대상을 알고, 성령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의 완악함을 미리 말씀하셨고 모세는 사역의 어려움을 알고 갔습니다(3:19-20). 사역 대상자를 알면 사역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의지할 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12:11-12).

   사역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역자는 하나님이 원하는 때 하나님이 하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입을 닫아주시면 참고 기다리며, 열어주시면 주저하지 않고 말해야 합니다. 엘리후는 영이 역사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32:8,10). 바울은 이미 교회가 세워진 곳에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15:20).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족속을 향한 마음을 에스겔에게 계속 보여주셨습니다(33:11). 우리는 악인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사역자의 바른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준비는 인간의 능력과 학식과 재물 같은 것의 준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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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16-21

   하나님은 이스라엘 집이 회복되도록 그들을 위하여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의 영으로 에스겔을 일으키시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합니다(딤전2:4). 그 일을 위한 말씀의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집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을 위한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은 깨어서 그 집에 닥칠 모든 상황을 살피고, 사람을 깨울 책임이 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파수꾼이었으나 실패했습니다. 파수꾼은 외부의 환경을 살피며, 자기 집을 보살피며(31:27),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여 전달도 합니다(2:1).

   하나님은 에스겔을 하나님 대신 말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대신이란 ‘~로 부터, ~에서 밖으로의 뜻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직접 계시(3:9), 간접 계시가 있는데 에녹과 같은 사람을 통하여 말씀을 많이 주십니다(1:14).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는 그를 보낸 분의 말을 전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사람을 깨우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깨우치다라는 말은 어둠을 밝힌다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악인에게 그 일이 죄란 사실을 알리는 일이 깨우침입니다. 죄를 깨우쳐 줄 때 사람이 속죄제를 드릴 수 있습니다(4:23). 하나님은 악인들이 회개하고 다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2.예수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책임자를 세우는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의 눈을 열어 파수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추수하려는 이방인을 보게 하셨습니다(4:35).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에 무관심하나 예수는 제자들이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을 보게 하셨고, 또 사울도 이방인을 보도록 하셨습니다(15:16). 즉 예수 제자는 모든 민족의 파수꾼이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셨고, 또 그를 대신할 제자의 입을 열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고 말하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으로 아들의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16:15). 예수가 보낸 제자는 예수를 대신하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는 일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13:20).

   예수는 말씀으로 사람을 깨우치셨고, 제자를 세상을 깨우칠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부활을 질문한 사두개인들에게 예수께서 산 자의 하나님을 말했을 때 서기관도 예수를 인정했습니다(12:32).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드러내어 사람을 깨우치셨고, 제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책임감 있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의 파수꾼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고전3:9).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교회를 노리고 위협합니다(벧전5:8).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동족에 관심을 가지고 물었으며, 그들을 위해서 성벽을 건축했습니다(1:2).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의 사명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실을 바르게 알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룰 수 있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보냄을 받은 사울 왕은 자기 뜻대로 좋은 것들을 남겼고,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삼상15:21).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임을 알았습니다(고후5:20).

   악인을 깨우쳐서 그들이 회개하고 생명을 얻게 해야 합니다. 악인의 영혼을 깨우치는 일이 그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있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형제를 깨우치라고 했습니다(딤전4:5-6). 말씀과 기도로 깨우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남을 깨우치려면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깨우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파수꾼의 사역을 잘못하면 악인도 죽고 자신도 죽습니다. 책임감 있는 파수꾼으로서 말씀을 전하여 악인도 살리고 자기 영혼도 보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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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12-15

   세상은 힘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강한 자로 만드셨으며, 또 강한 자로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강하기는 하지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 강함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맡은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이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리셨습니다(12). 에스겔이 영으로 들어 올려진 일은 사역의 시작입니다. 이때 에스겔은 큰 소리를 들었는데, 에스겔이 움직일 때 하늘의 네 생물이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스라엘에 앞서 사자를 보내셨습니다(23:20). 선지자 사역은 천사와 함께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에스겔은 근심과 분한 마음을 가졌는데 그 마음을 말합니다. 에스겔은 패역한 족속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분노나 근심을 가진 하나님의 영과 같은 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품은 자를 기뻐합니다(25:11). 예레미야도 여호와의 분노를 느꼈습니다(6:11).

   하나님은 권능으로 에스겔을 힘있게 하고(14), 칠 일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15). 사역자를 힘있게 감동하신 일은 그 마음의 감정만 건드린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한 힘이 그 위에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다윗을 감동하셨습니다(삼상16:13).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때에 말씀을 주십니다.

2.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셨고, 제자들이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성령이 임하고,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으며 시작되었으며, 또 하나님의 사자가 수종을 들며 함께합니다(4:11). 예수의 탄생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 등 모든 일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마가는 첫마디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을 선포합니다(1:1).

   예수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는 패역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가지셨으며(23:13), 또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을 보여주셨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셨는데,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 마음에서 나오는 은혜와 은혜를 이루는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14:9).

   예수는 사역의 때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하여 율법 아래 나신 예수는(4:4) 제자를 택하고, 사도가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먼저 강한 능력을 보이시고(1:27), 모든 민족에게서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권세와 능력이 있는 그 이름을 주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16:17).

3.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강한 자로서 사역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일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에는 나 혼자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나와 함께 일하는 천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섬기는 영을 보내주셨습니다(1:14). 우리의 기도는 이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이지만 실제로 그 기도는 천사의 손에 의해서 하늘로 올려집니다(8:3-4).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한 두로 왕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28:2).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2:5). 죄를 향한 분노,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김,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열정 같은 예수의 마음이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일해야 합니다(15). 에스겔은 그 백성 중에서 칠 일을 기다립니다. 그 백성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성급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았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일할 때를 말했습니다(4:14). 하나님의 때를 알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환경과 삶에 대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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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3:4-11

   세상의 모든 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에스겔을 패역한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마음이 굳은 사람에게 그를 보내실 때 그를 금강석같이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의 능력으로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을 강한 자로 만들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자기 동족 사이에서 사역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시는 것은 무너진 이스라엘 집을 다시 세우려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달리 에스겔을 동족 이스라엘 속에 보내셨기에 언어적인 불편은 없습니다. 말은 통하나 마음이 굳어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마가 굳은 이스라엘 사람보다 에스겔을 더 강하게 만드십니다. 이마가 굳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완악함, 강퍅함입니다. ‘창녀의 낯입니다(3:3). 죄를 지어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이나 예레미야 같은 사람을 금강석 같게 굳게 만들어 주십니다(1:18).

   하나님은 에스겔이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10). 에스겔을 강하게 만드시는 것은 에스겔을 감정적으로 뻔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을 때 강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성령과 능력으로 강하게 하셨습니다(10:38).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강한 자로 만들어 사역하게 하십니다.

   예수는 평범한 사람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갈릴리 어부들을 부르시고 사람 낚는 어부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1:17).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것은 사역의 시작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말이 통하는 이스라엘 집에 보내셨고(10:6), 또 모든 민족에게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는 사도들이 담대히 사역하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마귀를 이기는 권세를 주셨으며(10:1), 또 그들이 담대하게 사역하도록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한 말씀을 주셨습니다(10:24).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탄을 이기는 능력은 오직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드러내는 말씀이 강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말씀을 마음으로 받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여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벧후1:21). 진리의 영으로 무장되어 두려움을 이깁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4:19-20).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을 때 사탄이나 어떤 세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3.우리는 우리를 강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가야 합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벧후1:10). ‘굳게라는 말은 밟고 지나가기에 알맞다라는 뜻이고, 밟아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율법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 부르심을 강조합니다(1:15).

   확실한 예언의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상황이 아무리 어두워도 말씀이 빛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말씀에 주의하라고 했습니다(벧후1:19). ‘주의하다라는 말은 배를 육지에 갖다 대다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바람에 밀려가는 배와 같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이 아니라 말씀에 나의 마음을 든든하게 묶어야 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이 있으면 사역할 때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합니다(4:1). 예수는 광야에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면 염려 없이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4:6-7).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강하게 만들어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말씀에 매이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처럼(20:32) 강한 자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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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8-3:3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셨고, 또 글자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에스겔은 단순히 말을 들은 자로서가 아니라 먹은 자로서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8). 패역한 이스라엘 모습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준 두루마리를 잘라서 불에 던져버리는 여호야김의 모습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36:23).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패역함입니다. 패역은 하나님의 마음을 쓰라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2:8).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은 일곱 우레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었고(10:9), 예레미야도 말씀을 먹었다고 말합니다(15:16). 음식을 먹을 때 영양분과 힘을 얻게 됩니다. 말씀을 먹는 일은 말씀의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3:1). 하나님이 주신 말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2:10)의 말입니다. 심판의 말을 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입술에 말씀을 두셨고(1:9), 유다의 멸망을 말하게 했습니다(21:9). 말씀이란 단어 다바르정복하다’, ‘파괴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라고 표현했습니다(1:1).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하라’(다바르)고 하셨는데 이 단어의 철자를 조합하면 아들의 길이란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행한 모든 길이 말씀입니다. 다바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왕상15:23). 즉 예수의 길과 일이 말씀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는 오병이어의 이적 후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며 먹으라고 하셨습니다(6:51). 생명의 떡이신 예수는 자신의 살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생명의 떡 예수를 먹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예수를 잊지 않고 기념하는 것입니다(22:19).

   예수는 제자들이 말씀을 먹을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보혜사 성령으로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또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씀을 먹은 자가 된 것입니다(14:26).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영의 사람이어서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어린아이는 젖을 먹을 뿐입니다(고전3:1-2).

3.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 패역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2:7).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말했습니다(6: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이 하나님 영접이고,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두루마리를 먹고 달기가 꿀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양식을 말씀하셨습니다(4:34). 말씀을 귀로 들을 때 머리로 이해를 하지만, 말씀을 먹을 때 말씀을 실행하는 자가 됩니다. 말씀은 우리의 소중한 양식입니다(4:4). 다윗은 하나님 말씀의 맛을 알았습니다(19:9-10).

   성령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먹고 말씀을 자기의 힘으로 삼은 사람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패역한 족속이스라엘 집으로 만드는 일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만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의 제자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성령의 세례를 몰랐습니다(<18:24-25).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아들의 길과 일을 알고, 영양소와 힘을 얻어서 능력있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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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1-7

   하나님은 에스겔을 불러 환상을 보이시며 패역한 족속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세우고 보내는 목적은 패역한 족속이스라엘 집으로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지금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세우는 일로 이어집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을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바벨론 1차 포로 후 12년 동안 말씀하지 않으셨다가 드디어 에스겔에게 말씀합니다. 선지자의 끊어짐은 이사야가 예언했었습니다(29:14).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13년간 외면하셨고, 그 후에 다시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16:16, 17:1)

   하나님은 말씀을 전할 사람에게 영이 임하게 하여 그를 세웁니다(2). 말씀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사람의 아들,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연약한 인자가 일어서는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이 사역의 시작입니다. 다윗도 성령이 임한 후부터 왕이 될 자로 살게 됩니다(삼상16:13).

   하나님은 에스겔을 패역한 백성에게 보냅니다(3,5). 3패역한 백성은 반역하는 민족이란 말인데, 5절의 패역한 족속은 하나님의 마음을 쓰라리게 만드는 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집을 말씀하셨습니다(63:7). 하나님은 패역한 집에 말씀을 보내어, ‘패역한 집을 다시 이스라엘 집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2.예수는 하나님의 선지자 사역을 완성하셨고,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시는 선지자의 완성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는 자기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날 것을 예언했습니다(18:15). 모세 이후 많은 선지자가 일어났으며, 그중에 에스겔도 예수의 그림자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의 완성입니다(1:1-2).

   예수는 제자들을 세워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는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으며, 또 말씀을 전할 제자를 세워서 사도로 보내셨습니다(6:12-13). 예수는 사도를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사도들은 그 성령으로 강력한 사역을 시작합니다(15:26-27).

   예수는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 집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셨습니다(10:5-6). 승천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패역한 집인 모든 민족이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이스라엘 집에 들어오게 합니다(28:19). ‘이스라엘의 집에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들어옵니다.

3.우리는 회복된 이스라엘 집하나님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말씀을 듣고 일어서야 합니다. 성령이 사울 왕에게서 떠나는 일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르심에 대해서 배와 부친을 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말씀을 듣는 자세를 취했습니다(삼상3:10). 성령과 말씀에 대한 순종은 함께합니다.

   패역한 족속들에게 선지자가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흥왕하게 하는 자로 나타났습니다(2:10). 바울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상에 드러났음을 강조했습니다(고후2:15-16).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집 즉 하나님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집은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8:8). 그런데 그 이스라엘 집의 의미는 더욱 확장되어 그리스도께서 맡으신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3:6). 즉 예수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가 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가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일보다 더 온전한 일은 이스라엘 집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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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22-28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네 생물 위에 있는 궁창과 그 궁창 위에 있는 보좌의 형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영광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입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궁창 위의 보좌를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이 본 네 생물 위에 있는 궁창은 아주 넓게 펴진 하늘과 같은데 에스겔은 그 궁창이 수정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셨고, 궁창 위와 아래를 구분하셨습니다(1:7). 그리고 궁창 위에 있는 보좌는 남보석, 청옥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칠십 명 장로들은 하나님의 발아래의 청옥을 보았습니다(24:10).

   에스겔은 궁창 위의 보좌 위에 사람 모양을 보았습니다(26).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영광은 세상 신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좌 위에 있는 사람의 허리 위는 단 쇠 같았고, 허리 아래도 불같았습니다. 사방으로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요일1:5). 요한도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4:3).

   에스겔은 궁창 아래와 위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궁창 아래에서는 네 생물의 날갯소리가 나고(24), 궁창 위 보좌에서도 음성이 들려졌습니다(28).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은 분명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의 배경은 노아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였습니다(9:16).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궁창 위에서 궁창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가지신 분입니다(17:5).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즉 전능하신 속성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2:6-7). 사람이 되신 예수는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런 영화로움이 없었기에 멸시를 당하셨습니다(53:2).

   예수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 등불을 밝히고 밤새 축제를 벌이고, 또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서 시험하던 사람들 앞에서 예수는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8:12).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빛은 예수뿐입니다. 생명의 빛은 알게 하는 계시구원성결함을 이룹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그 말씀의 근본적인 의미를 바르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5:17).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12:49).

3.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깬 후에 돌기둥을 세워 기름을 부으며, 십일조 드릴 것을 서원했습니다(28:17-18).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그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사야처럼 빛 가운데서 나의 부정을 깨달으며,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기의 부정함을 깨달았습니다(6:5). 그러나 이사야는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6:8).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정함을 알고, 또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려는 각오와 결단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울처럼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사도권에 의문을 가지고 도전하는 자들에게 바울은 자기가 셋째 하늘에서 환상과 계시를 본 체험을 말했습니다(고후12:1-2).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체험을 자랑거리로 여기지 않고, 부득불 자랑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체험보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영광중에 계신다는 사실은 에스겔을 통하여 선포되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의 뜻에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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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15-21

   코로나 팬데믹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섭리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네 생물 곁에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모양을 보여주셨습니다. 섭리의 바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네 생물 곁에 있는 바퀴를 보여주셨습니다.

   네 생물 곁에 땅 위에 바퀴가 있습니다(15). 바퀴는 계속 도는 것으로 연속성을 말합니다(10:12). 솔로몬도 땅의 모든 것의 연속성을 말했습니다(1:10). 윤회설은 아닙니다. ‘바퀴 안의 바퀴 형상은 바벨론이란 공간과 포로 기간이라는 시간을 주장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섭리의 바퀴를 본 것입니다.

   바퀴 안에 바퀴(16)는 높고 무섭고, 눈이 가득합니다(18).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에 제한이 있으나 하나님은 세상 모든 곳을 다니며 모든 사람을 살핍니다(104:3). 눈이 가득한 것은 완전한 살핌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눈으로 세상 모든 것을 살핍니다(4:10). 바퀴 안에 바퀴는 세상을 보는 하나님의 관심의 바퀴입니다.

   바퀴는 생물의 영의 뜻에 따라 움직이며 사역합니다(19-21).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 있으며 바퀴는 그 영의 의지와 생각으로 움직입니다. 바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룹입니다(10:6). 하나님의 그룹은 심판 사역도 합니다. ‘병거 바퀴’(3:2), 회리바람(66:15)처럼 바퀴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역의 바퀴입니다.

2.예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바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온 세상을 향한 시공간의 섭리 바퀴를 돌립니다. 창조주 예수는 섭리자입니다(17:14).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그대로 이룰 분은 오직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두루마리의 인을 떼며 기록된 일이 이루어지게 합니다(5: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관심을 가지고 살핍니다. 예수는 심판의 대상도 잘 살피시지만, 구원받을 백성을 향한 주의 눈은 절대로 감지 않습니다. 어린 양 예수에게 일곱 눈이 있습니다(5:6). 구원받을 자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소외되지 않으며, 모두 그의 보살핌과 중보기도 속에 있습니다(7:25).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복음 사역의 바퀴의 방향을 정합니다. 바퀴는 힘과 능력의 사역입니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권세를 주어 보내셨고(20:21), 그들의 사역의 방향을 주장하셨습니다. 바울의 사역 방향을 유럽으로 움직이게 하신 것은 예수의 영이었습니다(16:6-7). 예수는 복음 사역의 바퀴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3.우리는 바퀴의 환상을 보는 에스겔의 깨달음을 가지고 사역해야 합니다.

   섭리의 바퀴를 아는 자로서 인생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삶의 수레바퀴라고 했습니다(3:6). 인생을 바퀴로 보았습니다. 에스겔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잘 깨달으면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기쁨의 시간을 알았습니다(30:5).

   관심의 바퀴를 아는 자로서 하나님의 평안함을 누려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들은 자기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버려진 사람들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늘 기억합니다(2:24-25). 우리가 하나님께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평안함이 됩니다. 우리를 기억하는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6:12).

   사역의 바퀴를 아는 자로서 각자 맡은 사역 부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들이 각각 나눠서 집니다(2:9). 내가 맡은 사역의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역자의 수레바퀴는 레위인 중에 게르손 므라리 자손처럼 무거운 짐을 옮길 때 사용합니다. 맡은 사역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관심 속에서 사역의 한 부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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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4-14

   에스겔은 하늘의 네 생물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포로 된 유다 백성이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며, 소망 없이 살 때 하늘의 소식을 들려주는 일이 에스겔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우리도 형제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네 생물을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섬기는 네 생물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같은 모양을 보았습니다(4:6). 생물이란 말에서 그 존재가 살아 있다는 특성을 말하고, ‘형상이란 말은 그 본래는 아니지만 닮음, 같은 모양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드러나는 것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입니다(42:8).

   네 생물에는 네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의 사역 특성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네 생물의 얼굴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네 생물은 각각 사람, 사자, , 독수리 얼굴을 가졌습니다. 지혜의 사람, 용맹한 사자, 힘쓰는 소, 신속한 독수리 얼굴입니다.

   생물의 다리는 곧은 다리이고(7), 네 날개가 있습니다. 하늘의 네 생물은 든든히 서 있으며, 날개로 열심히 움직입니다. 네 생물의 다리는 든든함이며(1:15), 날개는 활동성입니다. 그 움직임은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9), 번개 같습니다(14). 네 생물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설 때는 분명히 서고, 움직일 때는 움직입니다.

2.예수는 네 생물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은 금으로 꾸민 솔로몬 성전처럼 영광을 물질적 빛난 영광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독생자만이 온전하게 드러냅니다(1:18).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17:4-5).

   예수는 핵심 제자들이 그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 변화산에서 그의 본래 영광, 겟세마네에서 아버지 뜻에 복종하는 충성의 종을 보았습니다. 예수는 고난과 영광을 이어서 말씀합니다(16:27-28). 그리고 또 변화산에서 그 영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17:1-2).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움직이셨습니다. 예수 사역의 움직임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려는 대상을 향한 분명한 움직임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 중에 있는 죄인들을 외면하나, 예수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움직였습니다(15:1-2). 예수의 움직임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향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6:38-39).

3.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두려워하고 떨었습니다(12:21).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의 부정함을 깨달았습니다(6:5).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섬기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네 얼굴의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의 사람, 능력의 소, 용맹의 사자, 신속한 독수리 얼굴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되고(41:38), 다윗과 같은 용맹을 가지며(삼상17:45), 바울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4:13), 때를 알고 신속하게 일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12:45).

   세상이나 형제들에게 사역의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사역의 날개는 영의 뜻대로 움직입니다(12). 에스겔은 포로 된 유다를 위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이사야가 말한 땅에 펼쳐진 임마누엘의 날개(8:8)는 바울과 같은 사도들에 의해서 널리 펼쳐졌습니다(15:28). 땅끝을 바라보며 세상을 향한 생각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에스겔을 통하여 하늘의 광경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네 생물의 특징을 가지고 형제를 위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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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1-3

   바벨론에 있는 유다 백성은 맥추절 같은 절기는 지킬 수 없으나 그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감사의 조건이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중에서 에스겔을 세워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입니다.

1.하나님은 강한 자를 세워 바벨론 포로인 자기 백성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열어 그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1).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수용소에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 영광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은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31:23). 건물 성전은 없어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그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에스겔을 부르셨습니다. 에스겔은 자신이 제사장임을 밝히고, 또 서른 살이란 사실을 말합니다(1). 서른이란 제사장 사역을 시작하는 나이입니다(4:3).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단단히 매인 사람, 하나님으로 강하게 된 사람을 통하여 자기 백성과 함께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말씀과 권능을 주십니다(3). 에스겔은 하늘의 환상만 보는 자가 아니라 선지자로 일할 말씀과 권능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사역이 말씀 사역임을 강조하십니다. 바벨론에는 보이는 성전은 없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이 임하셨음을 강조합니다. 권능이란 여호와의 손입니다(2:15).

2.예수는 땅에 있는 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을 연결합니다. 예수는 하늘의 광경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자들과 함께하려고 직접 내려오셔서(2:6-7), 땅의 사람이 참 하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땅의 사람이 하늘에 오르게 하셨습니다(4:1).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땅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살게 된 것은 오직 예수의 은혜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강한 자로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는 이전까지 목수의 아들로 지냈으나 서른 살쯤 선지자, 제사장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3:23). 예수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이 그와 함께하심으로 하나님께 매인 자, 하나님으로 인하여 강한 자인 참 에스겔이 되셨습니다(10:38).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과 권능을 주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1, 14). 말씀이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지식전달, 정보전달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권위 있게 말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그의 이름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 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흑암의 땅, 절망의 사람들에게 하늘의 일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노역하는 유대인은 절망의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소망의 메시지, 복음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땅의 것만 보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소식을 말해야 합니다. 하늘의 일은 사람들이 잘 믿지 않지만(3:12), 그래도 하늘 소식은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인 자로서 단련되어,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25세부터 사역을 준비하고(8:24), 30세에 사역을 시작합니다. 사역은 훈련을 통하여 준비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3, 바울도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준비했습니다(1:17-18). 사역자는 고난의 훈련도 견디며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야 합니다. 훈련된 사역자가 강한 것 같으나 말씀의 능력과 권위가 없으면 실패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사역하셨습니다(11:20). 베드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치유가 이루어졌다고 강조합니다(3:16). 하나님의 손을 힘입을 때 겸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에스겔과 똑같은 사역자는 아니어도 이 시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이 주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에스겔과 같은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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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6:22-24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사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이 제한을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영원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영원하게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영원을 누려야 합니다.

1.하나님은 영원한 것을 이루시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십니다. 처음 하늘과 땅이 첫 사람의 삶의 환경이었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환경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를 위하여 영원한 하늘과 땅을 만드십니다. 만든다는 말은 창조(1:7)의 선포 이후에 창조의 능력이 계속 발휘되는 성령의 역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원하게 합니다. 의인들의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합니다. 이름이 항상 있는 것은 의인들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의미합니다(3:5). 그리고 하나님은 악인의 이름은 지워버리는데(32:33), 악인은 영원한 불 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4).

   하나님은 예배를 영원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해하는 매월 초하루, 매 안식일을 말씀하면서 모든 혈육이 예배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예배를 가르쳤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함께하며 권위에 절대 복종하며 은혜를 찬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찬송을 원하셨습니다(43:21).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함을 이루십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는 시간과 공간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체험한 예수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요일1:2). 영원하신 주님은 그 영원함을 가지고 시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으며, 시공간의 제한 속에 사는 사람들이 영원을 맛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11:26). 또 예수는 영생이란 단순히 시간적 영원함이 아니라 영생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라고 하셨습니다(17:2-3). 그리고 예수는 땅에 있는 우리가 영생이신 하나님 안에 있기를 기도하셨습니다(17:21).

   예수는 영원한 예배를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 형식과 장소를 물었을 때, 예수는 영이신 하나님께 사람이 영과 진리로 나아가고 하나님과 함께함이 참 예배임을 가르치셨습니다(4:24).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에 성전이 되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와 함께하는 것이 영원한 예배입니다(21:22).

3.우리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영원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영원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3:11).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먼 미래와 더 나은 본향 즉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11:16). 영원한 것을 바라지 못하고 현재의 문제에 급급하게 매여 살아가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영원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귀신을 이긴 것보다 하늘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10:20). 하늘에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이 땅에서 영적전쟁을 하며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딤전6:12). 마귀를 대적하며, 죄와 더불어 싸우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예배를 이 땅에서 드려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는 일은 우리 가운데 계신 아들의 영으로 아빠 아버지라고 친밀하게 부르며 나아가며, 함께하는 것입니다(4:6).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예배의 어떤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 나아감이 예배의 근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영원한 사람과 영원한 예배를 이루십니다. 시공간 속에 사는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함을 맛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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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18-21

   이 세계는 코로나 이후 더 나은 세계 재건의 꿈을 꾸고 있으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때에 대해 이루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을 모으십니다(18). 니므롯의 바벨성에서 사람을 흩으신 하나님은(11:9) 마지막 때에 그들을 회복하며 다시 모으십니다. 모든 민족을 다시 모으시는 목적은 모든 민족에게서 영광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모든 민족을 말씀하셨습니다(12:3).

   하나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징조를 세우셨습니다(19). 하나님은 심판에서 도피하는 자들을 전혀 알지도 못한 나라 즉 땅끝까지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징조(오트)를 세우시는 일은 사람들에게 그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모세를 보낼 때 표적(오트)을 주셨습니다(4: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세우십니다(21). 먼 나라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낼 때(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러 민족의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삼으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통하여 예배와 섬김의 사역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2:9).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때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이루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 땅에 오셨으며(4:4), 재림의 날도 아버지께 모든 주권에 맡기고 기다리십니다(24:36). 어린양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가 기록된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차례대로 떼심으로 하나님의 때의 일들을 다 이루시고(6: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세워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때를 위하여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증인을 삼으셨습니다(1:7-8). 예수의 증인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게 하는 것이 모든 민족을 모으는 방법입니다. 모든 나라 사람은 성령으로 자기 언어로(2:8), 하나님의 큰일에 대해 들었습니다(2:11).

   예수는 십자가 표징을 보이는 사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십자가만 드러내었습니다(고전1:23-24). 예수의 십자가만이 세상을 향한 진정한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모든 족속을 만드신 하나님을 말했을 때(17:26)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17:32).

3.하나님의 때를 알고, 그때를 바라보며 사역해야 합니다.

   모든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세상만사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따라 이루어짐을 고백했습니다(3:1-8). 하나님의 일의 시작과 마침을 아는 지혜보다 중요한 일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3:11). 모든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 받기를 원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바울의 회심은 많은 사람에게 징표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로 간다고 말하는 바울을 죽이려 했지만(22:21-22).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자기의 회심을 계속 간증했습니다.

   열방에 대한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일해야 합니다. 예수는 교회의 예배와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자신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14:13-14).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는 우리가 할 일은 모든 민족을 위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때를 정하시고, 모든 민족에게 영광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과 레위인으로서 예배와 섬김을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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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15-17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하나님은 원수들을 향해서는 분노로 이 땅에 강림하여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이 강림은 예수의 재림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1.하나님은 이 땅에 강림하여 그의 모든 원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강림하십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은 불에 둘러싸여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불은 거룩함, 심판의 분노를 나타냅니다(10:17). 하나님의 강림은 그의 만드신 온 세계를 마지막까지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굴러가고 진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로 결국 마무리 됩니다(21:1).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레들은 땅에 있는 것을 들어 올려 던져버리는 회오리바람 같습니다(4:13). 하나님은 혁혁한 위세 즉 그의 극한 분노를 나타내시며(5:25), 잘 갈아진 칼끝과 같은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십니다. 맹렬한 화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심판의 도구입니다(3:3).

   하나님의 심판 대상은 모든 혈육입니다. 모든 혈육에 대한 심판은 노아 홍수 때 실시되었고, 세상 마지막 심판에 연결됩니다.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고 동산에 들어가는 것은 우상 숭배의 모습이며(8:11), 이들은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인데(65:4), 이 일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한 것입니다(고전10:21).

2.예수 그리스도는 재림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완성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하신 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재림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26:64). 또한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수의 재림에 대해 많이 말했는데 그 당대에 재림이 성취되지 않아 재림을 불신하는 자가 생겼을 때(벧후3:4) 베드로는 도둑같이 임할 주의 날을 다시 강조합니다(벧후3:10).

   예수는 재림으로 세상에 대한 심판을 완성합니다. 재림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백마와 그것을 탄 자이며,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는 분입니다(19:11). 재림 예수의 입에서 예리한 검 즉 빛나는 검이 나오고, 또 철장으로 다스릴 것입니다(19:15). 다시 오시는 예수 앞에서 이 세상의 무엇도 견딜 수 없습니다.

   예수의 재림은 판결의 시간입니다. 재림하신 예수는 영광의 보좌에서 모든 것을 판결하실 것입니다(25:31-33). 예수의 재림 앞에 악인의 죄도 드러나지만, 그의 종들의 사역 결과도 다 드러납니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충성된 종을 칭찬하기도 하고(25:21), 악하고 게으른 종을 책망하고, 추방도 합니다(25:30).

3.우리는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온 세상을 주관하고 마무리하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세상은 인간의 주권을 말하며 하나님 없는 삶을 추구합니다. 창조주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마침입니다(1:8, 22:13).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시작하고, 마치는 주권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심판 앞에 무너질 세상에 유혹당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말세에는 발람의 길에 미혹 당하는 자가 많습니다(벧후2:15). 사도 유다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 온 자들을 경고하면서 잘못된 길 3가지를 말했습니다(1:11). 성도들은 인간의 힘과 방법, 재물, 명예 같은 것들에 미혹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 사명 받은 자로서 깨어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는 자기의 종들에게 어떤 일과 권한을 준 주인과 같습니다(13:34-35). 주님께 사명을 맡은 우리는 깨어 예수께서 주신 권한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일은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사역적인 개념입니다. 예수의 증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1:7-8).

   하나님의 시내산 강림은 백성과 함께하는 큰 복입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심판을 위한 강림입니다. 늘 깨어서 충성하며 주의 재림을 지혜롭게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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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6:10-14

   사람은 기쁨을 얻으려고 온 힘을 다하나 세상의 기쁨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누릴 기쁨과 위로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성읍 예루살렘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예루살렘의 기쁨입니다. 예루살렘은 아이를 해산한 어머니 같습니다. 어머니는 넉넉한 젖, 위로의 품, 아이가 노는 무릎이 있습니다. 고라자손은 예루살렘으로 위로를 얻었습니다(84:1-3). 바울은 사라위에 있는 예루살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4:26).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기쁨에 참여하게 합니다(10).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평강과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줍니다(12). 기쁨을 7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사랑하는(싸마흐) 기뻐하라(), 즐거워하라(아헤브), 성의 기쁨(마소스) 기뻐하라(수스) 즐거워하리라(아나그) 논다(샤아)’ 이 단어들은 완전한 기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온전한 위로가 있는 기쁨입니다(13). 여기서 자식(케이쉬)은 남자 어른을 말합니다.(2:23). 위로받는 자가 성숙한 상태에서 위로하는 자를 깊이 이해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위로라는 단어는 후회의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사용 됩니다(2:13). 하나님의 후회로 재난과 심판이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누릴 진정한 기쁨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기쁨을 누릴 처소 새 예루살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시는 예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합니다(21:2). 새 예루살렘은 열두 문,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안에는 건물 성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직접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21:22).

   예수는 자신의 기쁨을 나눠주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기뻐하며, 기쁨을 독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가진 기쁨을 제자들도 가지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17:13). 예수의 기쁨은 세상이 준다고 하는 기쁨이 아닙니다(14:27). 예수께서 이루신 기쁨은 완전하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완전한 위로를 얻게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사귐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요일1:6-7). 그리고 예수는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우리의 눈물을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7:17).

3.우리는 약속된 기쁨과 위로를 믿음과 소망으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다가올 기쁨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랑하라’(10)는 말은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62:10).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33:1). 우리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18:20).

   현재의 삶에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세상 기쁨은 일시적, 표면적 기쁨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말씀으로 박해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5:11-12). 바울은 고난이 있는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기뻐하라고 했으며(2:17-18), 고난과 핍박이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살전5:16).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하여 성숙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교제의 시작은 주를 영접하며 시작됩니다(3:20). 성장과 성숙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듯이 주님과 함께하며, 말씀을 품고 살 때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 주님과 더 온전하고 깊은 교제가 됩니다(벧후3:18). 성숙한 자가 되어 온전한 위로를 누려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영원한 기쁨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미래의 꿈과 비전에 대한 분명한 확신으로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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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7-9

   하나님은 교회의 대적에게 보응의 목소리를 내시고(6), 그 백성은 고통 없는 순산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교회가 한순간에 세워지고, 번성하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신뢰하며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번성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7). 시온은 해산 고통이 없이 남아를 낳게 됩니다. 그 여자의 영광은 그에게서 나오는 남자 때문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낳고 크게 기뻐했습니다(삼상2:1). 사람은 생육의 복을 받았으나 범죄 이후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3:16). 진통 없는 해산은 범죄 이전 상태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을 한순간에 만듭니다(8). 세상 나라는 번성을 원하여 힘을 강화하고, 어떤 경우에는 전쟁도 불사합니다. 많은 수고를 거쳐 세운 세상 나라는 무너지나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는 순식간에 세워지고 망하지 않습니다. 시온에서 난 아들은 교회의 탄생입니다. 교회는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2:40-41).

   하나님은 교회의 탄생 과정에서 주권을 가지셨습니다(9).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이라는 말에서 갖도록’(아쉬삐르)깨뜨리다, 찢는다라는 말입니다. 시온의 회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고레스의 칙령도 하나님의 일입니다(1:1).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마무리까지 하며, 그 일에 실수가 없고, 온전하게 완성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회복된 시온 즉 교회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교회가 낳은 남자가 되며, 교회를 영광스럽게 합니다(12:5). 예수는 십자가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걸림돌인 죄를 없애주셨으며, 우리가 어떤 걸림돌이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셨습니다(2:16). 예수는 우리가 정죄 없이 생명의 법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셨습니다(12:28). 하나님 나라는 계시록의 일곱 번째 나팔 소리에 완성됩니다(11:15). 로마제국이 교회를 핍박했으나 예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교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더욱 완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믿음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태를 닫지 않으십니다(9). 예수는 교회에 믿음을 주어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기를 원하셨습니다(17:20).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15:5-6).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 사역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는 사역이었습니다.

3.우리는 한순간에 만들어진 교회에서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영광의 약속에 대한 소망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약속은 세상 어떤 신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는 소망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벧전3:15). 우리는 재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딤전6:17).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남겨 두신 사람은 그의 증인입니다(1:8).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역하는 사도들로 인해서 교회는 순식간에 세워지고 번성합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을 핍박하지만 사도의 말을 믿는 자는 오천이나 되었습니다(4:4).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나라를 다스리며, 모든 역사를 주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는 사람은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지는 도구였습니다(11:11-12).

   하나님이 순식간에 만드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잉태하게 하신 생명을 잘 품고, 해산의 날까지 마치 산모처럼 귀한 생명을 잘 돌보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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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6:1-4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예배의 문제로 시작(1:)하여 예배의 문제로 결론(66:)을 짓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 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1.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은 온전한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는 성전과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가난한 심령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과 제사 형식은 주셨으나 진정으로 원한 제물은 그들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겸손한 자의 예배를 원하십니다. 스가랴는 메시아의 겸손을 말했습니다(9:9). 다윗은 하나님께 가난한 마음으로 부르짖었습니다(69:29).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는 통회의 예배입니다. 통회란 하나님의 말씀에 그 마음이 세게 맞은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필요한 것은 말씀에 대해 굳은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입니다(36:26). 통회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바르게 반응한 상태입니다. 다윗은 통회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51:17).

   유혹을 택하지 않는 순결한 자의 예배를 원합니다. 순결한 교회는 유혹을 택하지 않습니다(4). 유혹은 망상, 잘못된 생각이며, 재앙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백성이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3:3). 타락한 교회는 진리의 교회를 유혹하지만(17:4), 우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순결한 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온전한 예배자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의 장소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예수는 장소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 사람이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4:23-24). 하나님은 하늘에 보좌가 있고, 땅을 발판으로 삼은 분입니다. 사람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일만이 중요합니다.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예배자를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는 가르침을 받으러 나온 제자들을 보시고 복 있도다!”라고 선포하며 축복하셨습니다(5:3). 그들이 복이 있다는 것은 부유하다거나 권력과 명예를 얻었다는 상태가 아니라 말씀 앞에 가난하고, 말씀으로 애통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마지막 때의 미혹을 말씀하시고, 재난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는 감람산 예언에서 미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24:4-5).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는 예수 이름으로 오는 영적 미혹에 약할 수 있습니다. 미혹하는 일과 재난이 계속될 때 두려움이 없도록 예수는 평안을 주십니다(14:27).

3.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상에서 하나님으로” - 예배에 중요한 문제는 예배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보좌로 삼고, 땅을 발판으로 삼으신 분입니다. 보이는 우상숭배는 쉽게 구분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잘못된 예배는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인처럼 예배자로 준비되지 못하거나(4:5), 탐심의 우상이 가득하면 예배가 실패합니다(3:5).

   “형식에서 내용으로” - 이사야는 예배의 형식만 있는 유다의 죄를 지적했습니다(1:11-12). 하나님께 드리기는 하지만 형식적 예배는 우상 숭배자의 예배와 같습니다(3). 가증한 것을 기뻐했다는 것은 예배 형식은 있으나 그 마음은 우상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6:5).

   “나의 필요에서 하나님께 응답으로” -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사람의 손으로 우상을 만들고, 무익한 것을 구하나 응답도 없습니다. 우상 예배자들은 자기 필요를 신들에게 구하기만 합니다(44:9). 온전한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대답하고, 말씀하실 때 듣습니다(4). 말씀 앞에 마음이 옥토와 같아야 합니다(10:12).

   하나님은 예배자가 가난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예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부르심에 대답하고, 말씀을 들을 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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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17-25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유다 왕국의 회복과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와 이 세상의 마지막 종말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 새 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새 하늘 새 땅은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새롭게 창조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환경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에도 하나님은 씨를 보존하셨습니다(6:19-20).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 이전 것은 기억되지 않게 합니다. ‘이전 것이란 아담의 범죄 이후 생긴 인간의 모든 상황입니다. 지금 보이는 인간적 영광, 고통이나 슬픔 등은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21:4).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애굽으로 돌아가려 한 것은 기억할 필요가 없는 현실만 기억하면서 미래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함과 상함이 없습니다(25). 하나님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합니다. 사람은 우는 소리’(19), ‘저주의 죽음’(20), ‘빼앗기는 상실’(21-23)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거꾸로입니다(6:10-1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부르기 전에 응답합니다(24).

2.예수 그리스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완성하십니다.

   예수는 사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새 하늘 새 땅에 새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람이 새롭게 되어 들어갑니다. 예수는 그를 믿는 자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고후5:17). 새롭게 된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입니다(3:10).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자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갑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악 된 과거를 지워버립니다. 구원 이전은 무거운 짐과 사탄의 유혹이 있습니다(12:1). 세상은 무거운 짐을 지워주지만(6:6). 예수는 무거운 짐을 벗겨줍니다(11:28). 그리고 말씀을 주셔서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질병, 기근, 전쟁 같은 무거운 짐 같은 것이 다시는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신부 된 교회가 있게 합니다. 예수는 마지막 흰 보좌에서 사탄을 심판하시고(20:11),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시는데 거기에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있습니다(21: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신 것은 신랑과 신부의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신혼집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3.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만드신 새 사람은 새 영으로(11:19)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며, 새 마음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으로 새 삶을 시작합니다(삼상10:9). 또 주님과 새 언약의 관계를 맺은 신분으로 살아갑니다(22:20). 이 땅에서 새 영, 새 마음, 새 언약이 있는 새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 재림을 부인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벧후3: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무 분명한 사실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분명하다고 강조합니다(벧후3:12-13).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그날을 사모하며, 바라보는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린양 예수의 아내로 살아야 합니다. 어린 양 예수의 아내는 예수의 피로 이미 정결하게 되었습니다(7:14). 그렇지만 성도는 일상의 삶에서 옳은 행실이라는 빛나고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19:7-8). 거룩한 성도의 옳은 행실이란 하나님의 계명과 신랑 되신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삶입니다(14:12).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듣고, 예언을 믿으며, 새 하늘과 땅에 들어갈 자로서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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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선지자는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며”(64:8)라고 했고, 이에 하나님의 응답은 아버지가 아들을 아끼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드러내며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진리의 하나님으로서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위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과 악인을 구별합니다(13-14). “나의 종들은... 너희는..”이라고 구별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 주시는 은혜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먹고 마시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거지 나사로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서 평안함을 누렸습니다(16:25).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15). 악인들의 이름은 저주의 이름이 되지만, 하나님은 그의 종들은 이름을 새롭게 부릅니다(62:2). “헵시바”, “뿔라”(62:4)같은 애칭입니다. 이름을 새롭게 하는 일은 극진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진리의 하나님은 종들의 기도를 이루고, 맹세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환난이 끝났습니다(16). ‘복을 구한다는 말은 문법적으로 자기를 스스로 축복 한다, 맹세는 하나님께 받은 복을 증거 하며, 다짐하는 말입니다. 리의 하나님, 아멘의 하나님은(고후1:20) 그 앞에서 말한 종들의 기도와 맹세를 온전하게 합니다.

2.예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종들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여 구별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기준입니다(1: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백성이며,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구별된 가르침을 주셨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그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3:1).

   예수는 구원받은 자를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비전을 품은 자로 불러주십니다. 예수는 시몬을 게바(베드로)라고 부르시며, 그에게 새로운 삶과 사역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이기는 자에게도 새 이름을 약속하셨습니다(2:17).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불러주는 것은 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는 아멘의 주님으로서 제자들이 구하는 것을 직접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아멘의 주님, 진리의 주님입니다(3:14). 예수께 부족함이나 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멘의 주님은 그의 제자들이 구하고, 맹세한 것들이 다 이루어지게 합니다. 예수는 그의 이름으로 구하면 직접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14:13-14).

3.하나님의 종으로 응답받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은혜를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광야에서 불신의 정탐꾼들은 세상의 거인을 두려워했습니다(13:33). 애굽에서 구원받은 자가 늘 과거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불려지는 새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 이름의 사람은 새로운 신분, 새로운 비전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즉 많은 무리의 아버지는 단순히 높은 사람이 아니라 많은 열방, 후손들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감을 말합니다(17:5-6).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성도란 새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진리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환난이 잊어졌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의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 두려움에 빠지고, 인간적 희망으로 자기 자랑만 합니다. 스스로 축복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진리의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4:2).

   믿음의 부모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합니다. 어린이를 거룩한 자녀로 세우고, 비전을 심어주고,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는 신실한 부모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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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종들을 위하여 일하시는 일로 응답합니다. 너무 노하지 않으시기를 구한(64:8-9) 간구에 대해서 하나님의 그의 종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로 응답하셨습니다.

1.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다 멸하지 않습니다(8). 즙이 있는 포도송이를 상하지 않게 하려는 사람처럼 하나님은 그 종들을 다 멸하지 않고, 그들에게 남은 것을 보시고 그들을 보존합니다. 소돔 성의 롯에게 있는 의로움을 보셨습니다(벧후2:7). 이스라엘은 무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그들을 다 망하지 않게 합니다(30:11).

   하나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야곱의 씨가 기업을 누리게 합니다(9-10). 하나님은 야곱이 그 씨를 통해 번성하고 기업을 얻게 합니다. 비옥한 사론은 바벨론의 침입으로 사막처럼 되지만(33:9), 그 땅은 다시 회복됩니다. 또 아간을 심판한 아골 골짜기 즉 심판과 저주의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주십니다(2:15).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다 멸합니다(11-12).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산을 잊어버리고, 운수와 행운의 신인 , 운명의 신인 므니를 섬기는 자를 벌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가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임을 말했습니다(17:13). 하나님의 응답은 그의 종이 아닌 자를 벌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종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완성합니다.

   예수는 사람에게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신앙고백은 했으나 성숙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길을 막다가 책망 받았습니다(16:23). 예수는 이미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하셨습니다(16:17). 예수는 베드로에게 시작된 믿음을 보셨으며, 그와 함께하고, 그가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종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야곱의 씨와 같은 믿음의 사람 즉 예수의 제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이라는 다른 씨를 알았습니다(4:25). 하나님께서 거룩한 셋의 후손을 만드는 것처럼 예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되는 하나님의 종들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시며, 악한 자들을 심판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종들을 악한 자의 손에서 보호하시고, 그 악한 자들을 오히려 심판합니다(요일5:18). 예수는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과 특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에 대해 화 있을진저라고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23:13).

3.하나님의 종들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응답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절대자로 신뢰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모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필요한 일은 예배하는 삶입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예배의 법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예배에 실패했으나 다윗은 예배에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10-11).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운명의 신, 운수의 신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강조했습니다(3:5).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향락을 위한 탐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잘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나의 산들이란 기업을 누립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오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33:2). 하나님의 기업은 교회입니다(1:11).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답하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눈앞에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12).

   하나님의 종이 된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에 바른 대답을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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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알 같은 거짓 된 신들에게는 기도에 응답이란 있을 수 없으나, 하나님은 선지자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란 기도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지게 하시는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1.하나님은 선지자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셨습니다(1). “내가 여기 있노라고 하신 하나님은 그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 즉 이방인들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나타내시고, 복을 줄 자에게 복을 주시고, 벌을 줄 자에게 벌을 주십니다. 바벨론의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5:5).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종일 손을 펴서 옳지 않은 길을 가는 패역한 백성이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2). 이스라엘의 죄는 우상을 숭배(3-4)하며, 오히려 그것이 자기의 거룩함이라고 강조하는 교만함(5)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25:5).

   하나님의 행위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기도(64:12)에 응답하여 이스라엘의 행위를 헤아리고, 잠잠하지 아니하고 보응하리라고 하셨습니다(6-7). 보응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고. 완성합니다. 죄에 대한 값을 치러야 상황은 온전해집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하나님의 보응은 상황을 완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이신 그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붙드는 종을 보라고 하셨습니다(42:1). 예수는 이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요일3:8). 예수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세례요한 앞에 거니심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1:35-36)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주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회개하라고 선포하셨습니다(1:15).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암탉이 새끼를 모으려는 것처럼 그들을 모으려고 힘쓰셨으나 그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음을 아시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23:37).

   예수는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징벌을 받으므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신 것은 자신을 죄인이 치러야 할 배상금 즉 속건제물로 내어놓으신 것입니다(23:46). 예수는 속건제물의 배상법으로 자기를 내어놓아 죄의 대가를 치루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19:30).

3.우리는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일은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할라크)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1: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는 것이 완전한 삶입니다(17:1).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딤전2:4). 또한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미워합니다.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일할 때 하나님의 징벌이 멈췄습니다(25:1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2:5).

   구원이 완성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어려움이 있을 때 여전히 옛날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8:1-2). 우리는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로서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완성하신 구원을 누리며, 기도에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완성된 구원의 은총 속에서 힘있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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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4:8-12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선지자의 기도는 현재 교회의 기도입니다. 교회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회개와 간청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36:37).

1.선지자는 하나님 백성의 어려움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선지자의 기도는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를 아는 기도입니다(8).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부자 관계이며, 또한 토기장이와 작품의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작가와 작품 이 두 가지 관계는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고(26:18), 하나님의 작품입니다(43:1).

   선지자의 기도는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아는 기도입니다(9). 선지자는 심판을 없애달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분노가 누그러뜨려지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감해주시는 분입니다(24:22). 죄지은 자가 하나님께 호소할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호세아는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6:1).

   선지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아는 기도입니다(12). 선지자는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면 그들의 괴로움이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주의 능력으로 백성들의 괴로움이 해결되기를 간구합니다. 솔로몬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했으며(왕상8:49), 아삽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지 않기를 간구했습니다(83:1-2).

2.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기도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는 보내신 이보냄을 받은 이라는 관계를 알고(8:29),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기도에 힘을 쓰셨습니다(1:35). 기도는 두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는 아버지의 속성을 잘 아시기 때문에 오직 그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만이 아니라 공의나 거룩함도 있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14:36).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속성만 의지하는 일은 개인적 욕심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의 기도는 제자들이 어떤 괴로운 현상을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을 구한 기도입니다. 예수는 제자를 위하여 하나가 되게 하소서”(17:11), “거룩하게 하소서”(17:17), “영광을 보게 하소서”(17:2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3.우리 교회는 이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아들로서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줍니다(7:11). 그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11:13).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지만, 그 위에 끊임없이 함께하며,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갈 때 그 관계는 더욱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고, 찬송 받기를 원합니다(42:8). 또한 하나님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서 열방이 그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려는 뜻을 가지셨습니다(2:44).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시온이 광야가 되고, 황폐한 것처럼(10) 우리의 영적 상태가 황폐하면 안 됩니다. 괴로움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3:10). 욕망과 경쟁으로 사탄의 시험에 쉽게 미혹 당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세대와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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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9-20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죽음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다시 나오심으로 새로운 일들이 진행되게 하십니다. 부활절은 부활의 기쁜 감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오신 주님과 함께 역사하는 삶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1.십자가에서 나오신 예수는 그의 부활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 죽음에서 나와서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9). ‘보이시니라는 말은 빛나다. 명백하게 하다입니다. 예수는 그의 부활을 명백하게 보이셨습니다. 보이심은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권세를 보이셨고(9:33),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을 드러내셨습니다. 재림 때도 보여줌이 있습니다(24:27).

   예수는 죽음에서 나와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12). ‘나타나심계시하다. 알리다.’입니다. 감춰진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을 명백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예수의 나타남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며, 제자들에게 그들이 할 일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계시를 깨달은 제자들은 모여서 기도하며 부활의 증인을 세웠습니다(1:22).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역사합니다(20). 예수께서 함께 역사하심함께 일하다, 협력하다란 말입니다. 예수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는데, 그의 함께 역사하심은 서로 합력하는 만물을 통해 이룹니다(8:28). 예수는 만물의 창조주,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는 목적으로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1:16-17).

2.십자가에서 나오신 예수로 인해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생명을 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활을 보면 죽음의 절망 속에서도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권세를 보는 것은 큰 복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아들이 살아난 후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왕상17:24).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의 생명을 내다 볼 수 있습니다(고전15:2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깨닫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계시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통치와 그 안에서 나의 일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깨달았으며, 그가 할 일인 증언의 사역을 했습니다(1:1-2).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일을 아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만물 속에서 함께 역사하시는 주의 도우심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는 땅에 있는 제자와 항상 함께합니다(28:20). 예수의 함께하심은 육신의 몸을 입은 형태가 아니라 성령을 보내주시고, 만물을 주관하여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바다의 풍랑도 사도 바울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27:34-36).

3.십자가에서 나오신 예수와 함께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장소에 머물러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에서 죽은 예수를 찾았으나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는 성령을 약속하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1:4). 은혜를 누리는 일에 장소가 늘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장소가 중요합니다. 성도가 함께 모이는 장소가 중요합니다(10:25).

   계시를 깨닫고 할 일을 하는 자가 되려면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귀로 듣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자 하는 사무엘처럼 청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삼상3:10).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문제는 청종이 없는 것이었습니다(25:24-25). 말씀을 청종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의 할 일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역사할 때 함께하시는 주의 은혜를 신뢰하며 주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과의 동행은 나의 길과 방법을 버리고 주의 길에서 주의 방법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했습니다(고전2:1-2). 주의 길에서 주의 방법을 따를 때 주의 함께하심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오신 주님은 부활을 보여주고, 나타내시고, 제자들의 사역에 함께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깨닫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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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1-11

  예수님 지상 사역의 마지막 한 주간은 가장 의미 있는 주간입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셨고, 또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오셨습니다. 예수는 죽음의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고, 오히려 생명을 완성하셨습니다.

1.예수는 사역을 완성하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습니다(1).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가까이하신 것은 공간적으로 거리가 가까움, 시간적 면에서 때가 되었음을 말하지만, 제의적 면에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말합니다(3:5).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룰 목적으로 하신 일입니다(2:9).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는 사명에 충성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찬양받는 모습은 말씀의 성취입니다(9:9. 118:25). 시편 구절이 곧 호산나의 외침입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에게 구원자로 등장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가진 구원의 사명을 이루려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들어와서 둘러보셨습니다(11). 예수의 관심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성전을 둘러보시고 성전의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성전 청결 작업을 하시며,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56:7). 예수는 성전에서 만민들에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2.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예수로 인해서 우리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로 인해서 우리는 거룩해지고, 제의적 면에서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빛이신 예수로 인해서 우리 안의 어둠은 물러가고, 거룩하신 영으로 함께하심으로 더러운 영들은 쫓겨납니다. 말씀으로 우리는 깨끗해집니다(17:19). 예수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17:22).

  예수로 인해서 구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께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보내신 이를 믿는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합니다(5:24).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입니다.

  예수로 인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곳이고, 그의 백성들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7:89). 그런데 건물 성전은 다 무너졌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입니다(요일1:3).

3.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는 예수를 따라야 합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이라는 다른 길을 만들었습니다(왕상12:28).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길을 만들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해야 합니다(16:24). 하나님이 원하신 뜻을 찾고, 정해놓으신 그 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누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외쳤으나 정치적 구원, 개인적 질병과 가난에서 구원을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면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어려울 때마다 불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에게 영적 예배가 중요합니다(12:1-2).

  거룩한 성전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성전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10:19).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부정하고 더러운 악에서 벗어난 자로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살아야 합니다(10:22).

  예수는 죽음의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주님과 함께하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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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4:1-7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하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 기도를 합니다. 죄를 회개하는 기도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동행하심을 누리는 중요한 길입니다. 교회의 기도에 회개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1.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회개하는 기도를 합니다.

  주를 잊어버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5). 이스라엘은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히 대하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주를 잊어버린 것이 범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심판입니다(50:22). 다른 신을 섬길 때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23:27). 또 하나님의 진노가 오래되었음을 호소합니다.

  더러운 옷을 입은 부정한 자라고 고백합니다(6). 사람은 자기 의를 위하고, 아름다움과 영광을 더하려고 옷을 입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은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사람의 의는 그의 수치를 가릴 수 없습니다(59:6). 라오디게아 교회는 벌거벗은 교회였는데, 주님을 문밖에 세워놓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여겼습니다(3:17).

  주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으며 주를 붙잡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7). 사람이 주를 부르지 않으면 주님도 그 얼굴을 숨깁니다.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를 부르며 찾았습니다(7:11.14). 문제가 있을 때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찾으며,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음을 고백했습니다.

2.교회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3:12). 우리의 죄를 미워하고, 그 행동을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이 참 회개입니다. 개인적 삶이나 가정과 교회 혹은 우리나라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의로움만 드러내고 있는지, 또는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나태함이 있다면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전체의 죄를 동일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선지자는 자기 개인적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바라보면서 회개 기도를 합니다. 공동체의 죄를 자기와 동일시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1:6-7). 우리나라와 민족 교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품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 기도는 단순한 애통의 표현이 아니라 용서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입니다(103:10,12). 선지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던 두려운 일을 행하시며(3),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일하시는(4)’ 하나님을 알고 회개했습니다.

3.우리는 회개의 기도로 죄를 용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기를 원한 기도에 응답합니다(1). 하나님의 임하심은 주를 기억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시내산 강림을 생각하며, 미가 선지자도 같은 말을 합니다(1:3-4). 예수의 재림은 이런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영광과 능력으로 재림하십니다(살전4:16).

  예수는 그를 옷 입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강림하시는 예수의 이름은 주의 원수들에게는 큰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 이름의 옷을 입고 승리하게 됩니다. 라합은 여리고 사람들의 두려움을 고백했었습니다(2:11). 예수의 십자가 피는 죄인의 옷을 정결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주의 원수에 대한 승리입니다(7:14).

  예수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일을 행하는 신’(4)을 부르는 기도에 응답하여 그 얼굴을 숨기지 않습니다(7). 회개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를 위하여 일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의 응답은 우리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복입니다(고전13:12).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고, 모든 대적이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회개의 기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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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15-19

  하나님께서 심판과 회복을 이루시는 것을 아는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지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워진 교회가 할 일임을 보여줍니다. 지금 어려운 과정에 있어도 하나님의 회복을 알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1.이사야 선지자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알고 기도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비와 사랑을 열성과 능력으로 드러내심을 알고 있습니다(15).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전할 때 여호와의 열심을 말했습니다(37:32). 거짓된 신들에게서는 사랑과 자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지자는 열정과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지금 그쳤음을 호소합니다.

  선지자는 아버지 하나님, 구속자 하나님을 알았습니다(16).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3:14). 그리고 이사야는 구속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끊을 수 없는 부자간의 관계임을 기억합니다(32:6). 그런데 그 백성이 탕자처럼 아버지를 떠나있고, 마음이 완고하다고 호소합니다.

  선지자는 성소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18-19). 하나님은 성전에 이름을 두시고, 통치합니다(11:4). 니므롯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려고 했고, 사울도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했으나 다윗은 왕이신 하나님을 송축합니다(145:1). 선지자는 성소가 유린당하고, 백성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 못함을 호소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선지자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시는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간곡한 자비와 사랑입니다(8:32). 하나님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시작됩니다(9:36).

  예수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예수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들과 항상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28:20).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도 계시의 말씀을 주시고, 일곱 촛대인 교회를 돌보고 계십니다(2:1).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목적은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돌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성소가 유린당함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참 성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전 된 예수는 부활로 성전이 무너지지 않게 하십니다(2:19). 십자가의 죽음으로 사탄의 계교를 물리치고,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는 유린당하지 않는 완전한 성전입니다(21:22).

3.우리는 응답의 하나님을 알고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을 알고, 그분과 바른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기도도 없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삼상28:6).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부르짖고 했는가란 문제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적이고 기초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는 그를 향한 자비와 사랑입니다. 영적으로 무너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이 진리의 예수를 영접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3:16) 같이 우리도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3:16-17). 우리 마음 성전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사탄에게 유린당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했습니다(왕상8:29).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보며,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믿음과 소망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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