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6-11

인생은 들풀과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사람을 의지했다가 망한 역사가 있습니다. 영원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위로를 받는 자들에게 말씀의 영원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풀과 같이 영원하지 않습니다.(6-7) 들의 꽃은 잠시 아름답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유다가 경험했던 바벨론의 힘도 강력한 것 같지만 그 영광스러움도 잠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난 받는 교회에게 이 말씀을 그대로 강조했습니다.(벧전1:24-25)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8)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사람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하며, 언제나 유효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하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어서 말씀의 영원함을 고백했습니다.(23:19)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하신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을 예고합니다.(10)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장차 임할 진정한 이 왕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은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입니다.(1:2-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고 통치하시는 왕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강한 자로 임하셨습니다.

예수는 연약한 인생의 모습으로 오셨고, 또 죄인의 자리까지 낮아졌지만 그것은 승리의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인간의 자리에까지 내려 오셨습니다.(2:7-8) 십자가는 정죄 당하고 조롱받는 가장 연약한 처지이지만 예수는 그 십자가로 세상의 강한 것들을 이기셨습니다.(2:15)

예수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의 시작부터 기록 된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4:4) 예수는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데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는 기록된 성경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기록된 말씀은 다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24:44)

예수는 강한 자로 임하셨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를 목수의 아들로 여겼지만, 예수는 가르침과 표적들로 그의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예수는 죽음의 세력을 가진 강한 자를 멸하셨습니다.(2:14)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연약함이 아니라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가장 강한 힘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3.가장 강한 자이신 예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는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는 이미 유다를 향하여 이방들이 아무 힘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2:22) 그러나 유다는 그런 이방을 의지하다가 망합니다. 늘 실패를 자주하는 우리도 똑 같은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힘을 의지하는 위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영원불변하며, 항상 효력 있는 것을 의지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는 그의 말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24:34-35) 변하지 않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재림의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혼인잔치에 신부로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강한 자로 임하신 예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살피고 심판하여 상급과 보응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의 상급을 바라고 힘을 쓰며, 보응을 알고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삶에 힘을 다했습니다.(딤후4:7-8) 인간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은 가장 강하신 하나님을 버리는 일입니다.(삼상8:7)

하나님의 백성들은 들의 풀과 같은 인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장 강한 자로 오신 예수만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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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0:1-5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는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첫 부분은 유다가 바벨론 포로 후 회복되는 일에 대한 말씀인데, 첫 마디가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만이 우리를 완전하게 회복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실 것을 선지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는 말씀하시는 분이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 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게 로암미즉 그들이 자기백성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1:9) “너희 하나님이란 말은 듣는 자에게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모든 은혜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위로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해야 할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입니다. 환상을 보는 이사야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위로자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가브리엘천사는 다니엘을 일으키며 위로했습니다.(8:18)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회복을 선포하며 위로합니다. 노역의 때는 끝났고, 죄악은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마음에 닿도록 전달됩니다. 또 위로라는 히브리어는 후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보시면서 마음에 후회도 합니다.(32:14)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에게 아기 예수를 만나 위로를 받게 하셨습니다.(2:25) 하나님의 위로로 그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를 보게 됩니다.(5) 예수는 이 말씀대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1:14)

예수는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통해서 등장합니다. 죄의 권세에 눌린 자를 위로하려고 예수께서 오실 때 세례요한은 그 길을 예비했습니다.(3:3) 하나님의 위로는 바벨론 포로귀환 백성에 대한 위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죄에서 구원받을 모든 사람에 대한 위로입니다. 그 위로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3:11)

예수는 구원으로 위로를 완성하며, 또 위로를 지속합니다. 예수는 가난한 자, 억눌린 자에게 은혜의 해로 위로합니다.(4:18-19)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의 위로가 지속되게 합니다. 보혜사는 위로자, 대언자입니다. ‘위로의 성령입니다.(9:31) 예수의 위로는 그가 보내신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위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는 그의 백성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여호와가 자기 목자임을 아는 다윗은 하나님의 위로를 깨닫습니다.(23:4) 하나님의 위로를 알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사도로서 예수의 위로를 받고 있음을 알았습니다.(고후1:5)

하나님의 위로를 믿음으로 받고, 또 위로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말씀을 이사야의 예언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언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성경의 위로가 있음을 강조합니다.(15:4) 우리는 성경의 위로로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란 위로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7:17)

위로의 사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합니다.(고후1:4) 사람의 마음에 닿으며, 사죄의 선포가 있는 위로는(2) 효력 있는 위로입니다. 예수는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를 완전하게 위로하셨습니다.(5:34) 골짜기, 언덕, 고르지 않은 곳과 같은 마음들을 평탄하게 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예수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위로할 이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로서 위로의 사역을 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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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9:1-8

이사야는 인간 역사의 결과가 항상 실패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왕 히스기야의 결말도 실패였습니다. 그의 교만의 결과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할 것이란 말을 듣습니다. 평안함이 사람을 단련하는 하나님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시험하셨습니다.

앗수르의 위협과 질병의 치유 이후에 바벨론 사자들이 편지와 예물을 들고 히스기야를 찾아온 것은 히스기야 자신이 강하고 큰 사람으로 여겨지는 착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평안해지고, 내가 강하다는 생각 안에 교만함이 틈탈 수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시험하셨다고 했습니다.(대하32:31)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사람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용광로와 같이 사람을 더 정련하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시험으로 자기의 뜻과 양심이 단련되기를 구했습니다.(26:2)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망하게 하려고 직접 시험하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욕심으로 시험에 들 뿐입니다.(1:13-14)

히스기야는 평안함의 시험에 대해 실패합니다. 히스기야는 전쟁과 질병은 기도로 해결했지만, 바벨론 사신들이 찾아 올 정도의 부유함과 평안함의 문제 앞에서는 교만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만나는 그들을 향한 시험도 됩니다.(16:4) 이스라엘은 만나를 통해서 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2.예수는 우리를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제자의 조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14:26-27) 사람이 자기목숨을 위해 살지 않으면 무서움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기며, 가족보다 주를 더 사랑하면 유혹과 평안함의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참 예수의 제자는 모든 시험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실패를 통한 깨달음으로 그들을 단련시키셨습니다. 예수의 권능을 받아 사역했던 제자들은 그것이 지속되지 않을 때 당황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는 그 원인으로 믿음’(17:20)기도’(9:29)가 그들에게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계속되는 믿음의 기도로 시험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물질과 육신적 평안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은과 금은 없지만 예수 이름으로 사역했습니다.(3:6) 그리고 베드로는 이 일 후에 예수 이름만을 드러내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3:12-13)

3.우리는 평안의 시험도 통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풍요와 평안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고 마실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주셨지만 불평하는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습니다.(106:14-15) 육신적 평안이 목적이면 영혼이 버림받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육신적 조건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4:12-13)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시는 과정입니다.(1:2-4) 하나님의 시험 그 자체를 힘들어 하고 불평하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더욱 단련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습니다.(대하32:25)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드러낼 때 교만을 이기지만, 그것이 내 힘으로 된 줄 착각하면 교만에 빠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누릴 모든 것이 그들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8:18)

우리에게 있는 평안함도 하나님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평안함의 시험을 잘 이겨야 합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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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9-22

히스기야는 죽음 앞에서 영적 외로움과 영혼의 고통을 느꼈지만, 치유를 통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인생의 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통한 깨달음이 얻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고통 후의 평안을 깨달았습니다.(17) 하나님의 계획을 몰랐을 때는 빼앗긴 중년의 여생에 대한 상실감(10), 모든 것이 끝났다는 허탈감에 빠졌지만(12-13)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고통 뒤에 있는 평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샬롬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박국은 이 샬롬을 깨달은 사람입니다.(3:17-18)

히스기야는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17)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죄를 등 뒤에 던져버렸습니다. 육체의 질병만이 아니라 그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깨달았으며,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영혼과 육체를 온전하게 하십니다.(살전5:23)

히스기야는 자기가 하나님의 산 자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18-19) 죽은 자는 감사, 찬양, 소망이 없습니다. 할 일도 모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산 자이고, 자녀를 낳으며 그에게 주의 신실하심을 알게 할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는 사두개인들에게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12:27)

2.우리는 오직 예수를 통하여 산 자가 되고, 깨닫는 자가 됩니다.

부활의 예수를 통하여 생명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는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에게 부활과 생명을 보여주십니다. 병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는 죽은 자를 깨우셨으며(11:11), 자신도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후의 생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도 부활의 주님을 보고 깨달았습니다.(20:28)

사역의 예수를 통하여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의 치유는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다루셨습니다.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에게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5:34) 오병이어의 이적 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늘로서 오는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를 통하여 우리의 할 일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는 산 자의 주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믿음으로 살아 있는 자들에게 주가 되어주십니다.(14:9)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한 자들은 그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3.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을 깨달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로 고난 이후의 것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땅의 것을 통하여 하늘을 보고, 현재를 통하여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예언서들은 이런 시각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저자는 고난으로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유익을 깨달았습니다.(119:71) 이런 일을 깨닫기 위해서 이미 기도했었습니다.(119:18)

영적인 삶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적 행복과 기쁨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몸의 회복만 약속하지 않고, 그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36:26)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새 영, 새 마음입니다.

산 자의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믿음으로 지금도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은 창세기 4장의 가인의 후손처럼 세상에서 여러 일들을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준비는 못합니다. 산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살아 있어서 말씀을 믿고 할 일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있는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의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자로서 우리는 이 은혜를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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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1-8

모든 사람은 자기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방법과 길을 찾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생긴 문제는 앗수르의 침입과 개인적 질병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죽음의 날이 임박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을 치리합니다. 히스기야는 6년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고, 14년에 앗수르가 쳐들어 왔고, 질병도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기도로 생명이 15년 연장되어 54세에 죽습니다. 즉 히스기야 14년은 질병과 전쟁이 동시에 나타난 때입니다. 이러한 연속되는 위기는 지금 교회에도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신앙회복을 위하여 힘썼습니다.(왕하18:5-6)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위기는 연속됩니다. 사람은 위기를 두렵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 속에서 이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이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이 믿음의 길에 선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합니다.(4:3) 그는 성전에서도 기도했고, 벽을 향하여 기도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도의 동기이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입니다.

2.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언약에 근거하여 응답하셨습니다.(5)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눈물을 보셨지만, 응답이 사람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 다윗언약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열심이 하나님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물과 부르짖음이 필요하지만, 느헤미야처럼 언약에 근거한 눈물과 부르짖음이어야 합니다.(1:9)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수한을 15년을 더하고, 예루살렘을 보호하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5-6)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든든함도 사회적 조건이나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함이 이루어집니다. 바울에게 환난은 계속되지만, 주님의 도우심도 분명합니다.(23:11)

하나님의 치유의 징표로 해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8) 아하스가 도입한 앗수르의 해시계의 해그림자가 뒤로 물러가게 하신 것은 시간을 되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연장은 오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시간들입니다.

3.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고백할 때 언약의 관계가 이뤄집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12:4) 하나님께 부르짖기 전에 먼저 예수의 말씀에 믿음과 순종이 우선입니다. 기도 이전에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우선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응답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아하스는 응답을 우상에게 구했지만, 히스기야는 그 우상들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5:15) 예수는 제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응답받도록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16:23)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오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응답을 받은 자는 예수 이름을 드러낼 책임을 져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15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이룰 시간들입니다. 그러나 치유 이후에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사자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자기 보물을 보여주었습니다.(39:2)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자로서 예수를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 때와 시간을 주관하시며, 그의 백성들의 간구함을 보시고 들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하고, 응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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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7:30-38

하나님은 기도하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 왕이 되돌아갈 것을 말씀하시고 그 일에 대한 징조를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주신 하나님의 징조를 알고, 또 징조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징조를 주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에게 징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주셨습니다. 아하스에게는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징조를 주셨고, 하나님께서 버린 사울 왕에게는 아무런 징조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신 이 징조는 3년에 걸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전쟁이 없는 평화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약속하십니다.(52:7)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징조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주셔서 그가 비전을 품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합니다. 이 징조는 일이 성취된 다음에 '하나님께서 진실로 역사하셨구나!'하는 것을 나중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3:12) 하나님이 주신 징조의 목적은 사람에게 평안과 믿음을 더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조가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일하십니다.(32) 하나님은 유다 족속 중에 남은 자가 뿌리를 박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평화의 때에는 아무 일이 일어난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가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5:17)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징조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예수는 평화와 안전의 하나님의 징조를 완성합니다. 히스기야가 받은 징조는 평화와 안전함의 징조입니다. 세상 사람이 추구하고 노력하는 평화와 안전은 불완전합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평화와 안전을 얻으려고 했습니다.(4:17) 사람의 육신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평화는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4:7)

예수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징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예수의 사역에서 나오는 표적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표적만 구할 뿐이었고, 그를 통해서 가질 믿음이 없으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16:4) 예수는 사역의 결론에서도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14:1)

예수는 징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자신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구와 통로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14:10) 유다 족속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일은(31)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징조를 가진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징조를 깨달아야 합니다. 초자연적 징조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일반적인 삶에 나타나는 징조는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회복하시며 함께 합니다.(43:2) 우리가 물과 불을 통과하는 어려움의 환경은 그대로지만 하나님은 늘 함께 합니다. 이 도우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징조를 주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징조를 통해서 믿음을 가질 수 있게도 하십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 일이 우리에게 주신 징조입니다.(14:11) 하나님의 징조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믿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징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의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무기가 됩니다.(6:13)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서 많은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징조를 주시면서 사람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특별하고 이상한 징조가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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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7:21-29

나라의 사법부는 법으로 판결하고 집행하지만, 그 판결에 대해서 반발도 있고, 새로운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정확하고, 엄중하고 그 심판을 집행할 수 있는 판결은 오직 하나님의 판결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1.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의 응답으로 앗수르 왕을 판결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 편에서 판결하십니다.(21) 앗수르에 대한 판결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종 다윗을 위하여”(35) 판결합니다. 하나님의 판결기준은 세상의 도덕과 윤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언약으로 모든 것을 보십니다. 다윗언약은 다윗의 후손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삼하7:12-13)

하나님의 판결에는 정확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가 행한 일과 말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23-25) 앗수르 왕의 훼방과 능욕, 그리고 그의 교만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살피시는 분입니다.(8:27) 하나님은 모든 사실을 다 정확하게 알고 하시는 판결이기 때문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판결을 강력하게 시행합니다.(29) 앗수르는 자기가 모든 나라를 정복했다고 자랑하지만,(37:12-13) 하나님은 그 앗수르 왕을 무너뜨리십니다. 유다를 위협하는 앗수르 왕의 말은 이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도 갈고리로 끌어냅니다. 세상의 강한 나라도 하나님의 갈고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29:4)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판결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다윗언약은 다윗의 집이 영원토록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다에 다윗의 후손인 왕이 없을 때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 나와서 치유를 받았습니다.(9:27) 예수는 다윗언약을 성취하며 왕으로서 사역하시고, 대적들은 완전하게 멸하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판결을 내리는 심판자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알고 계셔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2:24-25) 예수는 제자이기는 하지만 결국 자기를 팔아버릴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6:64)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로 보이지만, 예수는 가장 큰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10:38) 예수의 능력 중에 가장 큰 능력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려고, 체포되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는 기록된 성경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14:49)

3.우리를 위하여 대적을 판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언약, 시내산언약, 다윗언약과 같은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람의 충성으로 쌍방책임을 지는 이 두 가지가 언약을 이루는 힘입니다. 오직 우리의 충성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언약의 말씀을 믿고 붙들어야 합니다.(11:9-10)

하나님의 정확한 판결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대적을 향한 판결을 신뢰하면, 시험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갈렙은 가나안 족속을 멸하시는 말씀을 믿었지만, 불신의 정탐꾼은 믿지 않았습니다.(13:30-31)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판결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강건한 삶을 사는 기초가 됩니다.

말씀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기도했습니다.(16) 하나님은 앗수르 군대 185천을 하룻밤에 죽이고, 왕도 죽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의 일을 만들며 성취합니다.(33:2)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대적들이 심판의 판결을 받습니다. 우리 편에서 판결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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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7:8-20

앗수르 왕의 협박은 유다에게 위협이 되었지만, 이런 시험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의 패턴은 동일합니다. 모든 시험을 예수 안에서 해결하고 살아야 합니다.

1.히스기야가 당하는 시험은 사탄의 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은 도전해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에서 물러가면서도 유다를 끝까지 협박합니다.(9,14) 사탄의 전략의 첫 번째는 사람에게 다가 오는 것입니다.(3:1) 앗수르 왕도 정치적 판단으로 잠시 물러간다고만 생각하면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계속 유다를 조롱하며 무너뜨리려고 애를 씁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에 속지 말라’(1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거짓입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만듭니다.(3:4)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사탄은 믿음을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게 합니다.

사탄은 다른 것을 믿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그가 무너뜨린 나라와 신들을 보라고 합니다(11-13). 사람은 보이는 것들을 쉽게 믿습니다. 사탄은 다른복음을 주어 말씀을 떠나게 합니다.(3:5)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주의, 골로새교회에는 체험주의자가 있었습니다.(2:18) 말씀보다 영적 체험을 중요시하는 일이 있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당할 모든 시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는 사탄의 시험을 먼저 이기고 사역을 시작합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시2:7하나님의 아들과 사42:1하나님의 기뻐하는 종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모든 시험을 이겨 놓고 사역을 시작하십니다.(4:10-11)

말씀이신 예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주셨고, 시험을 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십니다. 사탄은 거짓으로 다가오지만 예수는 진리를 주셔서 사람을 사탄의 유혹과 억압에서 자유하게 합니다.(8:32) 그리고 사람이 되신 예수는 사람의 모든 고난을 직접 체험하셨는데, 그 목적은 사람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2:18)

예수는 교회가 시험의 때를 면하도록 해 주십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에게 대적이 주는 시험의 때는 다가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씀을 지키며 배반하지 않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3:10-11) 시험의 때가 오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시는 예수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이 보낸 글을 성전에 가서 펴 놓고 기도했습니다.(14) 우리에게 다가온 시험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다가 올 때 우리는 더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4:8)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사탄의 시험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묵상하여 더 알아야 합니다.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고백했습니다.(16)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6:3) 히스기야는 세상 신들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임을 알았습니다.(19)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는 이유는 자기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광이 목적이 되면 시험에 쉽게 빠집니다.(딤전6:9) 히스기야는 천하만국이 주님만이 여호와인줄 알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20) 마귀는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하지만 예수는 오직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 된 마귀의 시험은 지금도 교회를 시험하며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시험을 이미 이겨놓으신 예수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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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7:1-7

이사야서의 기록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신뢰하고 살 것인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입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1.앗수르의 조롱과 모욕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왕과 신하들과 제사장 중의 어른들이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며, 나라에 닥친 위험성을 공유합니다. 굵은 베옷은 슬픔, 회개, 복종, 원통함, 금식 등의 이유로 입습니다.(2:10) 히스기야는 회개와 슬픔을 굵은 베옷으로 표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으로 갑니다. 하나님에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성전으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봉헌하던 솔로몬의 기도를 기억합니다.(왕상8:29) 하나님은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그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4)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응답의 통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려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여호사밧도 말씀의 통로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왕상22:7)

2.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날 때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앗수르 왕의 종의 말은 아무 효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10:28)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두어 그가 소문을 듣고 돌아가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의 소문(9)을 듣고 돌아갑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앗수르의 산헤립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 등장했을 때 귀신은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귀신들 전체에게 임할 일을 두려워했습니다.(1:24)

하나님은 앗수르 왕이 그 나라에서 칼에 죽게 합니다. 산헤립이란 한 사람의 죽음 정도가 아니라 앗수르라는 나라가 쇠퇴하는 원인이 됩니다. 대적의 죽음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를 핍박하던 권세가 그리스도의 권세로 깨어진다고 말하여 교회에 위로와 힘을 줍니다.(12:9-10)

3.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를 의지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처음에 앗수르에게 공물을 바쳤지만(왕하18:14), 계속 된 공격으로 그 방법의 잘못을 알고 회개합니다. 아하스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히스기야는 인간적 방법에서 돌아섭니다. 예수의 사역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던 것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들은 히스기야에게는 이미 기록 된 말씀입니다. 기록 된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길입니다. 예수는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4:4)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할 권세는 오직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10:1)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듣고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처럼 믿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욕하는 자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어떤 대적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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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6:1-22

이스라엘의 절기들의 년 중에 가운데 있는 맥추절은 구원받은 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는 삶이 구원받은 자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대적들의 공격으로 감사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1.앗수르는 유다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계속되는 환난은 감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가 다시 쳐들어 왔습니다.(1)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왕이 공격을 받는 것은 인과응보적인 면에서 불평과 염려가 될 수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재앙이 계속 되고 욥이 병들어 재에 앉아서 몸을 긁고 있는 것을 보고 욥을 비난했습니다.(2:8-9)

스스로 작아 보이는 것들은 감사를 잃게 합니다. 앗수르 왕은 유다의 여호와 하나님을 힘없는 신이라고 속입니다.(7) 앗수르의 신당과 제단의 외형은 크고 놀라웠습니다. 아하스 왕도 이 제단을 예루살렘에 만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왕하16:10)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으면 보잘 것 없는 겉모습으로 감사를 잃을 수 있습니다.

기대감의 상실로 감사를 잃게 됩니다. 앗수르 왕은 자기가 유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다고 속입니다.(16) 하나님께의 은혜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지면 사탄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 갑니다. 은혜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모르면 감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21:5)

2.역사 속에 들어오신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는 환란 가운데서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침입한 앗수르를 하룻밤에 망하게 하셨습니다.(37:36) 이러한 승리는 예수 안에서 분명하게 완성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승리자로서의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16:33) 예수의 승리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예수는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게 합니다. 유다는 너무나 연약해서 앗수르가 마음 놓고 조롱할 정도였지만(8), 하나님은 유다가 이기게 합니다. 예수는 갈릴리 어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든 민족들을 제자삼고 가르치게 합니다. 예수는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대적을 능히 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21:15)

예수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있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12) 세상이 평화, 번영을 약속하지만 오직 예수만이 진정한 소망을 주십니다.

3.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분명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의해서 예루살렘만 외로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는 그 신앙을 무시하고 조롱했지만(7), 그 신앙이 세상의 도전을 이기는 힘이었습니다. 세상은 신앙을 조롱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진정한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보면 염려와 근심이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 능력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여호사밧 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대하20:17-18)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는 자가 도우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를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탄의 거짓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랍사게의 무슨 말에도 대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1) 나중에 그의 개인적 질병에서 치유 된 후 살아 있는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38:18-19)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분명하면 거짓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분명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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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5:1-10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잘못을 징계하시기는 하지만 결국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거룩한 길로 행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거룩한 길을 열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이 영광과 아름다움을 얻게 됩니다.(1-2) 광야나 사막은 구원이전의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입니다.(4:15)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영과 육의 모든 메마름을 회복시켜 줍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회복이 이루어집니다.(8:30)

하나님은 거룩한 길을 열어주십니다.(8)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셔서 아름다워진 그곳에 대로가 있어 거룩한 길이라 일컫게 됩니다. 거룩한 길은 회복의 길이고, 치유의 길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노래하면서 돌아오는 길입니다.(10)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길에는 깨끗하지 못한 자, 우매한 행인이 다닐 수 없으며(8), 사람을 해치는 사자나 사나운 짐승이 없습니다(9). 거룩한 길에는 거룩하게 구별 된 사람들만 다닙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받는 사람을 구별합니다. 주의 은혜로 구별 된 사람은 사탄이 만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요일5:18)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드신 유일한 거룩한 길입니다.

예수는 사람을 영광스럽게 회복시키십니다. 핍박자 사울은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만난 후에 사도라는 영광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는 사울을 변화시켜서, 사도 바울로 만드셨습니다.(딤전1:12-13) 회복 중에 중요한 것은 영의 회복입니다. 예수를 알고, 예수가 진정한 구원자임을 깨닫는 것이 참 회복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한 많은 길들을 찾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14:6) 세상의 종교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은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 길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는 그의 사람들을 구별하여 함께 하며 보호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주시는 것은 제자들과 세상을 구별하는 것입니다.(14:16-17) 죄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들어오시고, 함께 거하심으로 완성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진리를 깨닫게 하고, 사역을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3.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룩한 길에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회복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사람의 회복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완성됩니다. 우리의 완전한 회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환란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교회를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실 것이란 사실을 알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살전5:23-24)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 거룩한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면서 핍박을 받았지만, 더 강하게 예수의 이름을 강조했습니다.(4:12) 거룩한 길로 행한다는 것은 자기의 판단과 기분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매한 자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나 우매한 자는 거룩한 길로 다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구속함을 받은 자는 구별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어리석은 자와 함께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1:1) 악한 꾀, 현세적 유익, 자기를 자랑하는 오만함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는 하지만 버리지는 않습니다. 거룩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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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4:1-17

유다에게 해를 끼친 에돔을 향한 여호와의 보복과 신원의 날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위하여 내 억울함을 신원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보복하시고 신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보복합니다. 유다를 조롱하고 해를 끼친 에돔의 죄를 묻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모스도 에돔의 죄를 말했습니다.(1:11) 모세도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복수를 말했었습니다.(32:4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처지와 형편을 다 헤아리며, 또 보복은 자기 백성에 대한 속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신원해 줍니다. 신원은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까지 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즐거워했고(35:15), 하나님은 해를 당한 유다의 손해에 대해서 그 모든 것을 다 되찾게 합니다. 하나님은 억울하게 손해를 본 그의 백성들의 호소를 신원하십니다. 아벨의 피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4:10)

여호와의 보복과 신원은 줄과 추로 합니다.(5,11) 여호와의 칼에 많은 사람이 죽고, 혼란의 줄, 공허의 추로 인해서 혼란과 공허에 빠집니다.(왕하21:13) 줄과 추는 하나님이 재어보는 기준이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심판을 당합니다. 에돔은 형제를 향한 사랑을 원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아 혼란과 공허에 빠집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복과 신원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에 대한 예수의 관심은 각별합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특히 그의 사람들을 향한 관심은 특별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하셨습니다.(15:13-14) 이 말은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또 제자들을 향해 늘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8:20)

예수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원 받게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14:13-14) 사도들은 박해를 받을 때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했고(4:29), 하나님은 그들을 신원하셨습니다.(4:31)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억울함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받습니다.

예수는 은혜의 줄과 추로 사람을 봅니다. 유대인은 자기들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여기면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예수나 손 씻지 않고 먹는 제자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보는 예수는 세리의 기도를 의롭다고 선포합니다.(18:14) 은혜의 줄과 추로 보면 자기의 죄를 알고 은혜를 구하는 그 사람이 의롭게 보입니다.

3.우리를 위하여 보복하고 신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보복은 주께 맡기고, 주 안에 서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잡으려는 사울에 대한 보복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삼상24:4)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것은 자기 삶의 위치를 말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주 안에 서라고 말합니다.(4:1) 우리가 주 안에 분명하게 서는 일에는 불분명하거나, 양다리 걸침도 안 됩니다.

신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아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 안에 서 있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아뢰는 사람입니다.(4:6)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그 백성의 모든 처지를 아시고, 그들의 간구에 신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아뢴다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지속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은혜의 줄과 추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돔의 죄는 형제국가 유다를 향한 긍휼과 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향한 긍휼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 예수께서 새 계명으로 주신 사랑이 우리의 삶을 재어보는 기준입니다.(5:22) 실수를 저지른 형제도 용서와 사랑으로 대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항상 자기 백성의 편에 서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늘 하나님께 자기의 삶을 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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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3:17-24

육신적인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불신이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에게 그들이 보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유다에게 볼 수 있는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그들의 왕과 광활한 땅을 보게 됩니다.(17) 왕을 아름다운 가운데서 보는 것은 그 왕의 영광을 보는 것이고, 넓은 땅을 본다는 것은 그의 나라가 든든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 나라는 앗수르 때문에 흔들리는 나라가 아니라 든든하고 평안한 나라입니다.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 왕을 보고 감탄했습니다.(왕상10:9)

유다는 절기의 시온성,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게 됩니다.(20) 축제가 있는 절기의 시온성이나 대적의 침입이 없는 안정된 예루살렘은 평안함은 옮겨지지 않을 성전을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든든한 성전을 통해서 그들 중에 있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왕상9:3)

유다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22) ‘본다라는 것은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병든 자가 없고, 사죄함을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24) 애굽의 노예로 고생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구원의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2.예수는 우리가 보아야 할 진정한 왕과 성전과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왕이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나타내려고 오셨습니다.(1:18) 신을 만나볼 수 없는 인간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만, 아무도 자기의 신을 본 자는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권능과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를 직접 만난 후에는 예수가 왕이심을 고백합니다.(1:49)

예수는 참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백성들 사이에 거하시며, 그들과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보고 있지만, 예수는 성전 된 자신을 강조하셨습니다.(2:21) 육신을 입으신 예수는 사람들 속에 거하시며 성전이 되셨습니다. 성전 예수는 무너지지 않는 성전입니다.

예수는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이름으로 오셨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4:18) 특히 예수는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십니다. 가난한 자, 눌린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본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눈은 오히려 가려버립니다.(9:39)

3.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의 야망과 꿈을 하나님이 주신 소망인 줄 착각합니다. 친구와 논쟁하는 욥은 자기의 의로움만 보면서 논쟁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었습니다.(42:5)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결국 자기의 죄와 미천함을 보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믿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불신의 정탐꾼은 불신의 눈으로 보았습니다.(13:33)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11:9-10)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자에게는 대적들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18-19) 나의 대적만 보인다면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의 예수를 본 스데반은 돌을 맞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7:55-56) 오히려 예수님처럼 자기에게 돌 던지는 사람들까지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구원과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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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3:7-16

유다가 앗수르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일어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어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평강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어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슬픈 상황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유다의 용사나 사신들은 슬피 곡합니다.(7) 유다 땅에 사람이 끊어져서 대로가 황폐하고, 대적은 조약을 파하고,(8) 모든 면에서 자랑스러웠던 곳들이 다 무너져버립니다. 모든 것을 잃은 유다는 슬퍼하고 당황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곤란한 처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어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10) “이제라는 말은 인간의 노력이 끝난 후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슬픔에 대해 참지 않으시며,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세상에 가장 강한 왕이 누구인지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도 돌아보셨습니다.(2:24-25)

하나님은 백성들을 높은 곳에 거하게 합니다.(15-16) 이들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 아니라 죄를 끊고, 공의와 정직으로 사는 자입니다. 높은 곳은 안전한 곳, 모든 것이 공급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하박국은 높은 곳에 다닌다고 했습니다.(3:19) 두려움이 없으며,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삽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일어나심을 다 실현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일어나 땅으로 오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일어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사람을 살리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일어나셨습니다.(6:38-39) 고통당하는 그의 백성들을 위한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통해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는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일어남은 높음과 연결됩니다.(10) 예수는 모든 사역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17:4) 대적을 이기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높은 곳에 거하게 합니다. 높은 곳에 거하는 제자들은 안전하고, 영광스럽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사람을 흠 없이 존귀한 사람으로 만듭니다.(살전5:19, 23) 교회는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 있지만 예수는 높은 곳에 두어 영광스럽게 합니다.

3.우리를 위하여 일어나시는 하나님을 알고, 우리도 성령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잘 살아보려고 했던 자리나 혹은 삶의 곤란한 상황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일어선다는 것은 야곱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 하는 것입니다.(35:1) 우리는 하나님만이 나의 삶을 온전하게 하실 것이란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죄악과 단절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어서야 합니다.(15) 일어나신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공의와 정직이 있어야 합니다. 토색한 재물과 뇌물을 받지 않고, 죄악과 단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간을 정리한 여호수아에게 다시 일어나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8:1) 두려움, 염려를 버리고, 공의와 정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높은 곳에 대한 소망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바라고 일어나야 합니다. 현재의 삶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바라며 일어나야 합니다. 나오미는 유다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듣고 모압에서 일어났습니다.(1:6) 하나님이 주신 소망으로 일어서는 사람이 모든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어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 일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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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3:1-6

이사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으며, 또한 그 세력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과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들의 복이 됩니다.

1.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선지자는 먼저 대적의 멸망을 예언합니다.(1) 유다의 대적은 학대를 당하지 않고도 학대하고, 속임을 당하지 않고 속이는 인간 왕입니다. 앗수르 산헤립 왕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대적이 그러합니다. 이들에게는 정의와 공의가 없습니다. (왕하18:28)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왕들을 살펴보시고,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선지자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기도합니다.(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도 말씀을 근거로 기도했습니다.(1:9)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앙망했습니다. 이 신앙이 기도를 시작 하게 합니다.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5), 그 백성이 받은 복을 선포합니다.(6) 선지자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대적들이 흩어지며(3) 유다가 오히려 노략하게 됩니다.(4) 선지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보배라고 강조합니다.(6)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길은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경외함입니다.(2:12)

2.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합니다.(5) 세상의 왕은 학대와 속임수로 통치하지만, 예수의 통치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예수는 모든 만물을 통치하지만(1:22) 가장 중요한 통치는 교회의 머리로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1:27) 시온에 정의와 공의가 충만하다는 것은 그곳에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시대에 평안이 있게 합니다.(6) 예수는 그의 백성들의 시대를 평안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회복의 때를 정하셨고,(30:7) 예수는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이 세상에 오셨고, 율법 아래에 나셨습니다.(4:4) 율법아래 있는 죄인은 평안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진정한 평안이 시작됩니다.

예수는 구원과 지혜와 지식을 풍성하게 합니다.(6) 예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더욱 깊이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더 풍성하게 합니다. 예수의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14:9)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과 지혜와 지식을 더욱 깊이 알게 됩니다.

3.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세상에서 망할 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에게 속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강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의지의 대상이 아니며, 두려움의 대상도 아닙니다. 학대를 당할 때 무너지지 않으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고전15:33) 거짓을 말하는 악한 동무에게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종교의 기도는 인간의 행위와 공로를 가지고 자기 신들에게 나아가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은혜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물을 구하고 받을 뿐입니다.(2:8)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깨달으면서 지혜로 살아갑니다. 구원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지혜로 살면서, 하나님과 직접적 관계에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4:6) 하나님을 깊이 깨달으며 지혜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세상은 학대와 속임수가 가득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와 구원을 통한 평안과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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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9-20

하나님은 공의의 왕이 통치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공의의 왕의 통치를 받지 않는 안일한 자들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공의의 왕은 잘못을 징계하시기도 하지만, 회복의 은혜도 주십니다. 우리는 공의의 결과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공의의 왕의 통치를 받지 않는 유다는 안일한 여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유다는 안일한 여인과 같습니다. 안일하여 염려 없는 것은 믿음으로 담대한 것과는 다릅니다. 안일한 사람은 스스로 위로하며 괜찮다고 생각할 뿐입니다.(8:11) 거짓 선지자들도 자기 생각으로 안일하게 말합니다.(28:11)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담대함이 아닙니다. 자기의 희망 사항을 믿음으로 포장한 것입니다.

안일한 유다는 당황하게 됩니다. 안일한 자는 때에 맞춰 일하지 않고 게으릅니다. 파종할 때에 파종하지 않습니다.(11:4) 이들은 일 년 남짓 지나면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여자들의 당황함과 같습니다.(25:8) 이들은 타인의 좋은 밭의 열매를 보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됩니다.(12)

유다의 안일함의 원인은 영이 없는 육체적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영을 부어 주십니다.(15)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육체로 살다가 망합니다. (6:2) 공의의 왕의 통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육신적인 지혜와 권력과 힘을 추구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이들의 삶은 황폐하게 됩니다.(13)

2.이 세상은 공의의 왕이신 예수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공의의 왕은 은혜의 법으로 통치합니다.(9) 왕은 백성들에게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안일함에 빠져 있는 유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스라엘은 심지 않은 것을 거두게 됩니다.(6:11) 예수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4:9)

공의의 왕은 자연법칙으로 심판합니다. 은혜의 법칙은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되고, 공의의 왕은 대부분 자연의 법칙으로 통치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6:7) 공의의 왕은 심지 않으면 그대로 내버려 두어, 안일한 그들에게 심판이 되게 합니다. 왕이신 예수는 자연의 모든 현상들을 통해서 통치하십니다.

공의의 왕은 영의 법칙으로 완전한 회복을 이루십니다. 육체가 회복되려면 영의 회복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공의가 살고, 그 공의의 열매로 화평이 이루어지고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얻습니다.(17) 에스겔도 하나님이 주실 영을 예언했습니다.(36:26) 성령을 보내주실 예수의 약속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우리는 공의의 왕의 통치하에서 공의의 결과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안일함에서 벗어나도록 말씀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영적 긴장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면 자기 생각만 믿게 되고, 안일한 삶을 살다가 멸망당합니다.(1:32) 그냥 잘 될 것이라는 자기생각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왕의 말씀을 늘 들어야 합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20) 자연의 법칙 하에 있는 우리는 자연 속에서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예수 재림의 임박함을 듣고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생겼습니다.(살후3:10-11) 이 세상에서 자연의 법 아래에서 사는 우리는 세상에서 자기의 맡은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에 육신적 열심만 가지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화평과 평안과 안전함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그의 능력으로 역사해야 합니다.(6:8) 그래야 공의의 결과인 평안과 안전함을 누리게 됩니다.

공의의 왕이신 예수는 은혜의 법칙, 자연의 법칙, 영의 법칙으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의 말씀에 대해 깨어 있고, 그가 보내신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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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2:1-8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는 유다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공의의 왕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공의의 왕이신 예수의 통치로 말미암아 세상에는 구원과 평강이 있고, 하나님의 존귀한 일이 계속 진행됩니다.

1.하나님은 장차 한 왕이 통치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공의의 왕의 통치는 그를 믿는 자에게 피난처가 됩니다. 이 왕의 통치로 광풍과 폭우에서 안전하고, 마른 땅에 냇물이 흐르고, 곤비한 땅에 바위그늘이 있게 됩니다. 광풍은 실제적 재앙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영을 공격하는 악한 영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의의 왕은 영적인 면에서도 사람의 영을 온전하게 보호 합니다.

왕의 통치는 사람을 존귀한 자로 만들어줍니다.(3-4)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존귀한 자는 하나님을 압니다. 의의 왕은 사람의 눈과 귀를 열어주고, 지식을 깨닫게 하고, 말을 분명히 하게 합니다. 즉 사람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4:13)

공의의 왕의 나라에서는 뒤집혔던 가치관이 바로잡힙니다.(5) 공의의 왕의 통치가 없으면 사람들의 가치관은 혼돈되고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5:20) 공의의 왕의 통치 하에서는 어리석은 자를 존귀하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존귀한 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14:1)

2.예수 그리스도는 공의로 통치하는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평안을 주십니다. 고통 속에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께 나와서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4:24) 사람들이 육신적 평안에만 마음을 두는 것이 문제이지만, 예수는 사람의 육체의 문제를 해결하시면서 특히 귀신을 내쫓아서 그의 영이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사역자들에게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16:33)

예수는 존귀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는 제자들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있는 존귀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교회 성도들의 존귀함에 대해 강조했습니다.(벧전2:9) 예수의 사람들은 애굽의 요셉처럼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과 능력이 있는 존귀한 자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행위를 자랑하고 자기들이 의롭다고 강조하지만 예수는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는 진정한 의로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18:14)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3.우리는 의의 왕의 통치하에서 정의를 이루는 방백 같이 살아야 합니다.

의의 왕이신 예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계시록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세상의 왕을 이기는 분은 어린양 예수님입니다. 예수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입니다.(17:14) 우리의 영을 온전하게 하시는 의의 왕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공의의 왕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공의의 왕을 섬기는 방백으로서 정의로 다스려야 합니다. 존귀한 자는 공의의 왕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의 목사와 교사는 존귀한 자들 중 한 사람입니다.(딤전5:17) 완전한 스승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에 서야 합니다.(8) 존귀한 자는 말씀에 대해 눈과 귀와 입이 열린 사람입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계획은 마음의 작정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낼 작정을 했습니다.(11:29) 다른 형제를 잘 세우는 일이 존귀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공의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면서, 그의 정의를 이 세상에서 실행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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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1:1-9

하나님의 도우심은 어미 새가 새끼를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돌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에게 주신 육신의 부모나 노인들을 공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유다를 도울 자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지혜로우십니다.(2) 사람들은 자기의 지혜를 믿고 있지만 여호와의 지혜는 사람들의 생각 이상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지혜로 그를 의지하지 않는 자에게 재앙을 내립니다. 완전한 지혜의 하나님은 도망하던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11:33)

여호와는 시온산과 그 언덕에 강림하여 싸우십니다.(4) 애굽은 유다의 도움요청에 돕는 척 할 뿐입니다. 시드기야 때 애굽은 유다를 도우려고 왔지만 그냥 돌아갔습니다.(37:7) 유다를 치러오는 대적이 있을 때 하나님은 시온 산과 그 언덕에 직접 강림하여 그들과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하며 도우십니다.

여호와는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함같이 예루살렘을 보호합니다.(5)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동행하신 하나님의 보호가 독수리 어미가 새끼를 보호함 같다고 했습니다.(32:11-12)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리고 약한 새끼들 보호하기 위하여 어미를 준비하신 하나님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완벽한 보호자로 일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지혜로 대적을 완벽하게 이기셨습니다. 예수의 지혜는 사람들이 구하는 두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혜입니다.(고전1:22-24)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이 예수의 지혜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집니다. 마귀는 예수의 지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는 사람이 되어 친히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입은 것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과 함께 합니다.(1:14) 예수는 승천하여 사람들과 이별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자들과 늘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28:20) 하늘에 계신 예수는 지금도 땅에 있는 교회와 늘 함께합니다.

사랑과 능력이 있는 예수의 보호와 도우심은 완전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20:17)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아버지의 보호와 은혜를 거부하고 다른 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슬픔입니다.(23:37)

3.하나님께서 주신 부모를 향한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부모와 노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징계를 통해서 온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미 새처럼 보호하고(5) 돌아오기를 기다리며(6) 또 풀무불의 연단으로 온전하게 만드십니다.(9) 하나님이 주신 부모나 노인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대상입니다.

노인의 지혜를 잘 들어야 합니다. 노인들에게는 오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노인의 지혜를 무시하다가 나라가 둘로 나눠졌습니다. (왕상12:13-14)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가 있게 하셨고, 젊은이에게 노인을 주셨습니다. 이런 노인들의 지혜를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의 복을 잘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모를 공경하고,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부모공경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권위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복종함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이제는 늙어 연약해진 부모를 오히려 공경하며,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23:22)

하나님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도우십니다. 우리에 대한 보호의 역할을 어느 정도 감당한 부모를 향한 감사와 공경함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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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0:27-33

어린이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하시며, 유다 백성들이 구원의 노래를 부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은 아이들까지 함께 모여 심판이 지나기를 기다립니다. 구원의 노래는 다음세대 어린아이들과도 함께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앗수르를 멸함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 온다고 하셨습니다.(27) 이름은 그 존재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라는 그 이름을 모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는 구원의 이름이며, 애굽에게는 심판의 이름입니다. 애굽의 바로는 이 이름을 멸시하지만(5:2),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이름을 드러내셨습니다.(6:3)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합니다.(31) 앗수르는 강한 제국이지만, 하나님의 목소리에 낙담합니다. 하나님의 입에는 분노가 있으며(27), 하나님의 장엄한 목소리는 화염, 폭풍, 폭우, 우박으로 나타납니다.(30) 애굽의 바로는 우박과 우렛소리에 낙담했습니다.(9:27) 대적은 하나님의 능력의 소리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유다는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처럼 노래합니다.(29) 유월절에 애굽의 장자를 치는 심판의 천사는 어린양의 피가 묻은 집을 통과하고 넘어갑니다. 이스라엘 온 가족들은 이 밤에 함께 모였습니다.(12:3) 이스라엘의 각 가정은 죽음을 피한 장자를 보게 되었고, 심판을 벗어난 아이를 바라보는 즐거운 노래가 있었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가 주신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것이 그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선포이고, 대적들에게는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의 오심에 대해 항변했습니다.(1:24) 그렇지만 예수는 아버지께서 주신 그 이름으로 제자들을 보존하고 지키셨습니다.(17:12)

예수는 죽음 앞에서 큰 소리를 외쳤습니다. 예수의 소리는 구원받을 자에게 생명의 소리이고, 대적에 대해서는 심판의 소리입니다. 십자가에서 영혼을 아버지께 드릴 때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를 외쳤습니다.(23:46, 11:43) 예수의 소리는 우렛소리같이 사람들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주는 소리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는 구원의 노래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아이들에게 호산나 찬양을 받으셨고, 그 찬양을 온전케 하셨습니다.(21:15-16) 예수는 그 때에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셨습니다.(8:2) 이것은 유월절 어린양 예수가 원수와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만들어 구원의 노래를 온전케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3.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아이들이 예수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14:13-14)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영적 재산은 예수 이름입니다. 어린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이겼듯이 예수 이름을 소유한 자가 승리합니다. 아이들이 예수 이름을 영접하게 해야 합니다.(1:12)

아이들이 하나님의 소리를 믿음으로 들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하와를 유혹하는 뱀의 소리같이 우리를 유혹하는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엘리는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삼상3:9)

아이들이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 노래를 불렀으며(15:) 출애굽 제2세대에게 율법을 다시 가르친 후에 구원을 노래를 가르쳤습니다.(31:22) 아이들이 구원의 노래를 부르도록 어른들이 먼저 불러야 합니다. 구원의 삶을 전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유월절 거룩한 절기의 밤에 불렀던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기쁨으로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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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0:18-26

유다의 지도자들의 불신앙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받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는 일을 먼저 하십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행동은 기다림과 일어남이고(18),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함입니다.(19) 하나님은 고난 받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행동하십니다.(3:7)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신앙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먼저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스승을 보내어 백성들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20) 하나님이 보내신 스승은 바른 길을 가르치시고, 길을 인도합니다.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지만 스승을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21)을 약속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하게 체험했습니다.(23:3-4)

은혜의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회복시켜 줍니다.(23-26) 하나님은 사람들이 땅에 뿌린 종자에 비를 주셔서 먹을 것이 풍성하게 하시고(23), 또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줍니다.(26) 하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의 영과 육을 회복시켜 주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광명의 은혜를 약속합니다.(26, 4:2)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은혜의 임금과 구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예수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진정한 왕이며 구주라는 것을 증언했습니다.(5:31)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왕과 구주로 오신 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예수는 참 스승이 되셨습니다. 랍비들은 유대인들에게 스승이 되어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23:8-10) 우리가 가야할 바른 길을 가르치시는 이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중의 스승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직 참 스승이신 예수 안에 온전한 가르침과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는 생명의 빛으로서 사람을 회복시켜 줍니다. 예수의 사역은 선포와 가르침과 치유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의 치유사역은 말씀의 권세를 드러내는 표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강조하신 것은 자신이 생명의 빛이라는 것이었습니다.(8:12)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빛도 필요하지만, 생명의 빛이 더 중요합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 약속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36:37) 은혜를 받아 누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7:7)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참 스승이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는데, 그 성령님은 가르치는 분입니다.(14:26)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성경을 읽어도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는 사람들이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둡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님만이 진정한 스승입니다.(딤후4:3)

은혜를 바라보며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비를 주십니다.(23) 씨를 뿌린 자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다린 것이 씨 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회복의 때에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126:1, 6) 모든 상황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씨 뿌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잘 받아 누려야 합니다. 참 스승이신 예수와 성령님의 가르침을 잘 받고,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씨를 뿌리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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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8-17

예수의 부활은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고, 또 부활은 우리에게 약속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에 대한 바른 신앙이 없어서, 부활과 생명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부활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1.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했습니다.(9)

선지자와 선견자를 거부했습니다.(10) 패역한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가 하는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왕상22:8) 사두개인들은 부활이야기를 싫어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믿어지는 것만 믿으려고 한 것입니다.

압박과 허망을 믿고 의지했습니다.(1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이 됩니다.(30:14-15) 부활과 생명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유다가 믿은 압박은 백성을 압박한 재물을 애굽에게 주는 방법이었습니다.(왕하23:35) 그리고 허망을 믿는다는 것은 도움이 안 되는 애굽(30:5)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수단방법을 찾지만, 실패합니다.(16-17)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15) 유다는 빠른 짐승을 타고 도망하리라고 했지만, 그들을 쫓는 자가 더 빠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14:13-14) 사람들은 종교, 과학, 재물 등으로 살 길을 찾지만 실패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는 부활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26:19) 부활의 약속을 믿는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 그의 부활표적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셨고, 십자가에서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렸으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벧전2:23)

예수는 부활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그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셨고(23:46), 하나님의 생명의 사역을 신뢰하셨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입니다.(8:11) 생명의 하나님의 일을 신뢰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자기 수단을 추구했던 이들은 산꼭대기의 깃대처럼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흔적으로만 남습니다.(17)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사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역하는 근거가 됩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고전15:20) 예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 됩니다.

3.이 시대에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죽은 자를 살리는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37:4) 말씀이 생명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책망, 권면, 교훈, 약속 등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5:5)

하나님의 사역을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다리지 못할 때 두려워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바벨론에 포로 된 다니엘, 에스겔은 회복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의 신앙은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바울은 부활을 강조하며, 날마다 죽는다고 했으며(고전15:31), 형제들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고전15:58)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께 속해 있어야 합니다. 예수 없는 부활은 거짓입니다. 애굽 사람이 미라를 만들고 부활을 기대했지만 헛된 소망이었습니다.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이고, 그 다음은 그에게 속한 자들입니다.(고전15:22-23)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포도나무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내 안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활 생명의 은혜를 주십니다.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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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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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0:1-7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를 아는 자는 예수께 호산나!” 찬양을 하고 영접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사야 당시의 유다는 세상에서 힘 있다고 생각되는 애굽을 의지했는데 결과는 수치일 뿐입니다.

1.유다의 계교는 죄를 더하는 것이 되고,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유다의 계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았습니다. 사신을 광야를 통해서 애굽으로 보내려는 것이 사람의 계교입니다.(6) 광야로 가는 모습은 출애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꾸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지 말라고 이미 경고 했었습니다.(17:16)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계교가 죄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 애굽과 맹약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 죄에 죄를 더했습니다. 죄를 더하는 것은 그 죄가 계속 누적되는 모습입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 성령을 체험했지만 사람 중심으로 사역을 했습니다.(삼상14:52)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는 사람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입에 묻지 않고, 애굽을 그늘로 생각하고 의지합니다.(2)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입니다.(8) 라합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실 때 무찌르신 애굽입니다.(51:9) ‘가만히 앉은 라합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서 유다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2.유대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세속적 권력을 찾는 자는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 같은 모세의 제자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힘으로 자리를 얻은 대제사장에게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는 오히려 불편하지만, 예수는 나귀새끼를 타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21:5) 세상의 왕은 강한 힘을 드러내지만 예수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예수와 상관없이 로마에 항거하는 열심당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에도 있었지만(6:15), 열심당은 로마에 대해서 폭력적 반정부 활동을 했습니다. 로마라는 힘을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로마와 친한 대제사장과 같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합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그늘로 삼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했고, 그것으로 스스로 위로를 얻었습니다.(18:11-12) 이들에게는 종교적 열정과 인간의 행위를 그늘로 삼았습니다.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는 예수만이 진정한 그늘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그늘이 아닙니다.(121:5)

3.우리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를 향한 호산나찬양과 믿음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무지개언약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힘으로 바벨탑을 세웠습니다.(11:4)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사람의 범죄의 결과는 성령의 떠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성령을 구할 때 주시고(11:13), 인도합니다. 바울은 예수의 영의 이끄심을 따라 그의 사역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16:7)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 세상의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그늘은 말씀입니다. 요나는 육체가 쉴 박넝쿨 그늘을 구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니느웨의 생명의 그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이 의지하는 그늘로 만듭니다. 말씀으로 사는 우리는 세상에게 그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주신, 평화의 왕 예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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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의 지도자들은 애굽과 동맹하려는 그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계획은 실패하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만이 완전한 성취를 이룹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구원과 회복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1.유다는 사람의 계획을 세우지만 실패합니다.

사람의 계획은 여호와께 숨기려는 어둠의 계획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는 그들의 계획을 하나님 앞에 숨겼습니다. 애굽과 동맹 맺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는 고의적인 범죄입니다. 다윗은 대적들의 비밀계획을 알았습니다.(64:5-6) 사람은 묘책을 꾸미지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의 계획은 자기를 속이는 계획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속이는 일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모두에게서 숨기 위하여 배의 밑창에 내려갔습니다.(1:3)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누가 알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의 계획은 패역한 계획입니다. 패역은 뒤집어엎는다는 의미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진흙같이 여기고, 빚음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게 총명이 없다고 하는 것이 패역입니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이 더 옳다고 여기는 것은 패역입니다. 예레미야도 이 말씀을 선포합니다.(18:6)

2.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유다 백성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으로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사람들이 알고, 믿고, 기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해서 하실 계획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12:1-2)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은 예수 안에서 다 이루어집니다.(19:28)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백성들의 회복입니다. 성전을 짓는 백향목이 있는 레바논이 회복(17)되며, 빛과(18) 즐거움이 회복되고(19), 강포한자, 오만한자는 끊어지며(20-21), 야곱 족속은 부끄러움이 없고(22) 하나님을 경외하고(23), 총명하여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24) 예수는 이런 하나님의 회복을 성취하셨습니다.(4:18-19)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이룰 때를 주관합니다. ‘오래지 아니하여’(17), ‘그 날에’(18)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모든 시간의 주관자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찼을 때 아들을 보내셨습니다.(4:4-5) 아무리 좋은 계획도 집행 시간을 주관하는 권세가 없다면 그것은 허사입니다. 예수의 재림의 때도 아버지께 있습니다.(13:32)

3.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기록 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바리새인 사울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질 줄 알았지만, 예수를 만나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비밀을 알았습니다.(고전4:1) 지혜와 계시의 영의 도우심을 통하여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면, 사람의 헛된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죄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1:21-22) 이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한 후 하나님의 구원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노래했습니다.(3:26) 하나님의 계획은 미래의 소망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지면 사망의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일에 수고하게 됩니다.(고전15:58)

사람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과 다르면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믿으며 기다리는 삶이 그 계획의 성취를 누릴 복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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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9:9-14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서 그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이방 제국을 의지하는 불신앙으로 살았던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주셨던 계시를 봉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알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1.하나님은 형식적 신앙의 유다에게 계시를 봉해버리는 벌을 주셨습니다.

계시가 봉해진 것은 관계가 소원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1:3), 이제는 이 백성이라고 칭합니다.(13)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말씀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님께서 계시를 봉한 것은 그들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아주 파괴되면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합니다.(1:28)

계시의 밀봉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잃은 유다는 비틀거리게 되었습니다.(9) 술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는 이것은 영적 비틀거림입니다. 영적 무지의 유다는 맹인처럼 깨닫지도 못합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 어둠 속에서 비틀 거렸습니다.(삼상28:6)

유다는 계시의 밀봉으로 잠들게 하는 영으로 눈이 감겨졌습니다.(10)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의 활동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밀봉되면 미혹의 영의 미혹을 받게 됩니다. 선지자, 선견자들도 말씀을 깨닫고 전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혹 당하는 것은 심판을 받는 일의 시작이 됩니다.(살후2:11-12)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잘 드러내 주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 중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사람이 되어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했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1:10-11) 그렇지만 예수는 자기를 죽이려했던 그들을 모으고 품으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선지자를 죽이고,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품으셨습니다.(23:37)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시고 성취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어 말씀하셨습니다.(1:1-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봉해진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열고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이루십니다.(5:4-5)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닫고 생각나게 하고 가르치는 성령을 보내어 줍니다.(14:26)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열려져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계시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12:7-8) 하나님과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충성하는 삶으로 더욱 든든해집니다.

사람의 계명으로만 가르침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13) 탈무드와 같이 유대인들이 강조한 사람의 계명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잘 살려는 목적으로 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선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는 것이 잘못입니다. 유대인들의 고르반 선언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 것으로 악용되었습니다.(7:10-11)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는 것은 사람의 지능이 아니라 영성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잘 알기를 기도했습니다.(1:17) 지혜의 영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모르는 사람은 결국 실패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은 가장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계시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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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9:1-8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하지 않고 세상의 다른 힘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또 그의 백성을 치는 대적들을 징벌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아리엘이라고 부르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아리엘은 유다지파를 말합니다. ‘아리엘의 문자적 의미는 하나님의 사자입니. 야곱은 유다를 사자새끼라고 말했습니다.(49:9) 유다의 예루살렘은 사자처럼 강한 힘을 가졌는데 이제 그 힘을 잃어버린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잃은 유다처럼 능력 없는 신앙은 하나님께 슬픔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리엘은 번제단 바닥을 말합니다.(43:15) 번제단 바닥이란 제물의 입장에서는 고통과 죽음의 장소입니다. 해마다 절기는 돌아오지만 유다백성들이 절기에 드려지는 제물의 죽음이 하나님의 희생과 아픔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형식적 예배만 있을 뿐입니다.(1:11) 형식적 신앙은 하나님의 슬픔이 나타나게 합니다.

아리엘은 다윗의 진 친 성읍 예루살렘입니다.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려 했던 모리아 산이 이 곳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사람과 언약을 맺는 곳이 되었습니다.(16:59) 언약백성이 언약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2.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슬퍼하시지만, 또 예루살렘을 위하여 일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괴롭게 합니다.(2) 아리엘같이 되게 한다고 하신 것은 그들에게 번제단 바닥과 같이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고통과 아픔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보내서 유다를 공격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없는데, 예수는 이 심판의 권한을 가지고 오셨습니다.(5:26-27)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합니다. 하나님은 그럴지라도’(5)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잘못이 있어도 그 백성들 편에서 행동합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다투었을 때(22:24) 예수는 제자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섬김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위하여 사탄의 뜻이 무너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22:31-32)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대적을 징벌합니다.(6) 징벌이란 말은 직접 찾아가 방문하는 것입니다. 직접 이 땅을 방문하신 예수는 심판의 권세를 받아가지고 오셨고, 더러운 귀신은 그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1:24) 세상에 오신 예수의 방문이 사탄에게 두려움과 징벌이 됩니다. 대적들의 모든 욕망과 꿈과 계획은 무산됩니다.

3.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강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스스로 무능하여 애굽과 같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는 것을 슬퍼하셨습니다. 에녹과 같이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11:5-6)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알고, 그 말씀을 분명하게 믿고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따르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습니다.(13:22) 하나님이 다윗을 만나신 것은 다윗의 중심을 발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합한이라는 말은 내 마음을 뒤따르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땅을 방문하신 예수께 책망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들은 형식적 신앙은 있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죽였습니다. 예수는 이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했습니다.(23:37)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철저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따라 살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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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8:23-29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반은총의 지혜를 주셔서 사람들이 세상에서 문명세계를 이루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완전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지혜의 영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1.여호와는 기묘한 경영과 광대한 지혜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고, 지혜는 광대합니다.(29) 엘리바스는 욥과 논쟁하면서 하나님의 기묘한 경영을 말했습니다.(5:9-11) 사람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창조와 통치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영과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경영과 지혜를 말하는 것은 유다의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26) 가인의 후손들이 했던 많은 일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농부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농사를 짓습니다. 율법을 안다고 하는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지혜의 영이 아니라 일반적 은총의 지혜를 가지고 단순하게 애굽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경영의 목적을 깨닫도록 농부의 일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농부가 농사를 순서대로 잘 짓는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비유는 들어야 할 사람과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뜻을 이상과 비유를 통하여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12:10)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경영을 지혜로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모사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경영하셨고(9:6), 지혜로우신 예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경영하셨습니다. 예수의 경영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는 아버지의 일을 다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17:4)

예수는 그의 제자들을 지혜롭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셨고, 또 깨닫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14:26) 일반은총은 세상에서 잘 사는데 필요하지만, 특별은총은 하나님을 더욱 알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알려주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의미를 해석해 주셨습니다.(13:11-12)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천국(하나님 나라)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사는 것이 진정한 지혜의 삶입니다.

3.우리는 지혜의 영으로 하나님의 경영을 이루는 일에 역사해야 합니다.

사람의 명철로 하나님의 일을 경영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은총의 지혜로 세상에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부는 아닙니다.(3:5-7) 인간의 명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바른 길에 대해 지도를 받지 못합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사람의 명철로 국제정세를 살피고, 정책을 세웠지만 실패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영광은 왕이 되어 처음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1:5) 우리가 구할 지혜는 두뇌가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성령을 분명하게 주십니다.(11:13)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야 합니다. 지혜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을 알고, 천국 백성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았습니다.(3:19-20) 어리석은 유다 지도자들과 달리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을 알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경영에 헌신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여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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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8:14-22

유다의 지도자들은 애굽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지도자들에게 시온에 한 기초 돌을 세우실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초 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피난처요 살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1.하나님은 시온에 기초 돌을 두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에 기초 돌을 두셨습니다. 시온의 지도자들은 사망과 스올과 맹약하며(15), 거짓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기초 돌은 시험한 돌, 귀하고 견고한 돌로서 깨어지지 않으며, 믿는 자로 하여금 다급하지 않게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믿는 거짓은 다 무너지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기초 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로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십니다.(17) 하나님은 유다의 지도자들이 의지하던 것을 우박으로 소탕해 버립니다. 농업국가인 애굽에 내린 우박재앙(9:25)을 본 바로는 큰 두려움을 가졌고, 자기가 범죄 했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의 모든 피난처를 다 소탕해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역을 이루십니다.(21) 하나님은 그의 기초 돌이 든든히 세워지도록 일하십니다. 왕이 된 다윗을 위하여 브라심에서 대적을 흩으셨고,(삼하5:20) 여호수아와 함께하여 기브온에서 태양이 멈추게 했습니다.(10:1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고, 또 하나님의 사역자를 도와서 사역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초 돌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는 산 돌입니다. 돌의 이미지는 무생물인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예수는 살아있는 돌입니다.(벧전2:4-5) 살아 있는 예수는 그를 의지하는 자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산 돌이신 예수를 의지하지 않으면 결국 그 돌이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버린다고 경고하셨습니다.(20:18) 오직 예수께만 참 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는 모퉁잇돌입니다.(벧전2:6) 건물의 모퉁잇돌은 건물 전체의 규모와 방향을 규정하고, 기둥을 받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모퉁잇돌을 놓는 것은 건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삶의 기초되신 예수를 의지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퉁잇돌이신 예수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갑니다.(2:22)

예수는 머릿돌입니다.(벧전2:7) 머리라는 말은 첫째, 최고, 탁월한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건물의 머릿돌은 그 건물의 이름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는 우리의 영광입니다. 건축자들은 이 돌의 가치를 모르고, 버렸지만, 베드로는 머릿돌 되신 예수의 이름이 구원의 이름임을 강조했습니다.(4:11-12)

3.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초 돌에 대한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도자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하려면 우리가 신령한 집, 즉 성전으로 세워지고,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벧전2:5) 성전과 제사장이 될 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거짓과 언약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는 산상보훈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또,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1:22) 사사시대 미가는 신상을 만들고, 레위인을 초빙하며 하나님께 복을 받을 줄 믿었습니다.(17:13) 말씀이 없으면 거짓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신 기초 돌을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건축자들이 모퉁잇돌을 버린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벧전2:8) 하나님이 세우신 돌은 안전하고 가치 있으며, 영광스러운 돌입니다. 이 돌 위에 선다는 것은 말씀을 믿음으로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의지하고 행동해야 합니다.(5:5)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거짓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 대상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밖에 없습니다. 산 돌, 모퉁잇돌, 머릿돌이인 예수만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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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8:1-13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럽게 들어내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면류관으로 삼은 것들을 땅에 던져 버리고, 오히려 그의 백성들에게 면류관이 되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면류관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1.북이스라엘은 땅에 있는 것으로 그들의 면류관으로 삼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면류관은 술 취한 자들의 면류관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 때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힘이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바산의 암소라고 했습니다.(4:1)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북이스라엘은 주변의 나라들이 보기에 아주 잘 익은 무화과 열매로 보였고, 그것을 보는 자가 얼른 따 먹을 정도였습니다(4).

북이스라엘의 면류관은 교만한 면류관입니다. 이들은 세속적인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의 힘과 권력을 자랑으로만 여길 뿐이지 연약한 자를 돕는 역할은 하지 못했습니다.(2:6) 술 취하고 교만한 자는 지혜를 잃고, 옆걸음치고, 비틀거리고, 환상을 잘못 풀고, 재판에 실수 합니다.(7)

이스라엘은 자기 지식을 면류관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서선지자가 전하는 교훈을 무시하고 조롱합니다.(9-10)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이란 말은 말씀을 잔소리로 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4:6) 종교적 지식은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말씀을 조롱합니다.

2.이사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진정한 면류관이 되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기 위하여 오십니다.(5)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고, 그의 백성에게 다가와서 면류관이 되어주십니다.(4:7) 하나님은 판결하는 자에게 판결의 영이 되시고, 싸우는 자에게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그의 면류관으로 삼은 사람은 안팎으로 모든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면류관을 땅에 던져버리는 힘이 있습니다.(2) 하나님은 사람의 면류관을 던지기 위하여 강한 자를 사용합니다. 세상의 강한 자를 마음대로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 가장 강하신 분입니다. 이 하나님을 나의 면류관으로 삼으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자랑해야 합니다.(9:23-24)

하나님은 사람에게 안식을 주십니다.(12)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안식을 주셨으며, 상쾌하고 안식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은 더듬는 입술 어리석은 방언을 말하는 자즉 이방인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들이 뒤로 넘어지고 쓰러지게 하십니다.

3.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면류관을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판결의 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술 취한 자 같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고후3:6) 유대인들은 율법의 규정을 앞세워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싸워야 합니다. 힘이 되신 하나님을 면류관으로 삼은 사람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교만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골리앗 앞에 나아가는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삼상17:45) 사역의 과정과 결과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말을 조롱하며 받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 하나님을 면류관으로 삼는 일입니다. 시편저자는 말씀의 가치를 알았습니다.(119:105-106) 예수를 고발하려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지만(6:7), 우리는 말씀의 가치를 알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면류관으로 삼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진정한 면류관입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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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7:7-13

하나님은 포도원과 같은 유다 백성들을 대하실 때, 그들의 잘못을 견책하기는 하지만 적당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견책은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견책하는 마음에는 긍휼과 자비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견책 속에서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하게 견책 하십니다.

하나님의 견책은 분명하지만 긍휼하심도 분명합니다.(7-8) 하나님의 견책으로 백성들이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것과 다릅니다. 백성들에게 있는 동풍은 강한 바람이지만(1:19), 하나님은 그들을 폭풍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감당할 분량대로 견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견책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견책하여 제단의 우상이 없어지고(9), 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13)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진노하고, 책망하지만 그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4:23)

하나님은 견책과 구원의 사역을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견책을 받아서 흩어진 백성들을 하나하나 모아 회복하십니다. 흩어진 이스라엘을 과일을 떠는 것 같이 하나하나씩 모으십니다.(12) 모은다는 말은 이삭을 하나씩 줍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으십니다.(30:4)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견책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특별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 중에서 제자들을 특별히 사랑하셨으며(13:1), 잘못에 대한 견책도 특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했을 때 단지 쳐다보기만 하셨는데(22:61) 이것은 자각하게 하는 견책입니다. 유대인은 선민사상이 있지만 예수는 제자들을 특별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는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도록 십자가를 지셨습니다.(2:16) 예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그 길이 되셨습니다.(14:6) 예수는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고, 예수로 인하여 예배가 온전케 됩니다.

예수는 견책하면서, 또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도 누가 크냐고 다퉜습니다.(22:24) 예수는 제자들을 책망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22:31-32) 예수는 제자들의 잘못의 배경이 되는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도록 그를 위하여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견책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견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야 합니다. 견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견책의 고난에서도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119:71)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잘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때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합니다.(12:8) 아버지의 징계를 통하여 내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견책의 목적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견책 뒤에 있는 목적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견책의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고, 사역의 비전이 됩니다.(12:10-11) 징계, 견책의 목적이 우리에게 의와 평강의 열매라면, 우리는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견책을 잘 받아야 합니다.(15:32)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죽은 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견책을 달게 받은 것입니다. 견책을 잘 받는 것은 견책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일은 포로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2:6)

견책은 싸우다라는 말인데, 하나님은 자기백성과 다투지만 긍휼을 잃지 않습니다.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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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7:1-6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포도원이라고 비유하면서 그것을 잘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한 포도원지기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3)

하나님은 포도원지기로서 때때로 물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5:2) 그리고 하나님은 포도원을 관리하시며, ‘때때로포도원을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매 순간마다 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항상 그의 포도나무를 살피신다는 것입니다.(121:3-4)

하나님은 포도원 지기로서 강력한 칼을 가지셨습니다.(3) 하나님은 포도원을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도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포도원을 허는 대적을 향한 강력한 칼을 가지고 계십니다.(1) 엄격하고 가혹한 견고한 칼이며, 위대한 큰 칼이며, 튼튼하고 강한 칼입니다. 심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칼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의 결실을 기대하십니다. “후일에는”(6)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추수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과 같습니다.(126:6) 씨 뿌리는 자의 울음이란 추수까지의 과정에서 힘든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감람나무의 접붙임을 통하여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11:25)

2.예수는 포도원을 가꾸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포도나무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삼으신 것은 그 백성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교회를 때때로 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람이 되셨으며,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1:22-23) 한 몸이 되는 것은 끊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는 포도나무의 결실을 위하여 가지에게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많은 결실을 하는 조건은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에게 붙어있는 자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공급받을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으며(15:7), 그리고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15:16)

예수는 포도원을 위하여 대적과 싸우십니다. 이사야는 포도즙 틀을 밟아서 붉게 물든 옷을 입은 메시아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63:1-3) 예수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셨으며, 또 교회를 대적하는 찔레와 가시를(4) 다 밟고 불살라버리셨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교회는 든든합니다.

3.하나님의 포도원이 된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2)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뻐하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교회를 기뻐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그의 자랑이라고 말했습니다.(살전2:19-20)

주의 공급을 계속 받아야 합니다. 예수는 포도나무 줄기로서 가지들이 열매 맺도록 공급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도록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1:4) 기도하며 기다린 제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게 했습니다.(2:4) 예수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유다에게 앗수르나 바벨론, 애굽과 같은 제국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나라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왕하19:4)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적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포도나무처럼 결실이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대적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해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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