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1:1-3

  세상은 어려움의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온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세상을 향하여 보내주신 메시아가 아니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메시아를 영접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1.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에게 그 영을 내리시고 기름을 부어 그를 세웁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메시아는 이새의 줄기 즉 다윗의 후손으로 나옵니다(11:1-2).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제사장, 선지자 임직을 할 때 기름을 붓듯이 하나님은 메시아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하여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합니다. 율법에서 희년은 50년마다 오는 해로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25:10). 그런데 하나님은 메시아가 희년의 해,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합니다. 희년은 메시아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보복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의의 나무를 만듭니다. 나무는 상수리나무입니다. 성경에서 상수리나무는 주로 우상숭배와 관계있는 나무입니다(1:29, 57:5). 즉 메시아는 우상 나무를 의의 나무로 바꿔줍니다.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히려 의를 드러내는 사람으로 바꿔줍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참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는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자기가 성령과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는 메시아임을 선포하셨습니다(4:18-19). 예수는 복음을 전하고,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메시아 사역을 시작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메시아 예수는 은혜의 해보복의 날을 선포합니다. 예수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며 복음을 전하셨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고, 진정한 안식을 선포하셨습니다(11:28-29). 그리고 예수는 스스로 거룩하다고 여기며 사람의 구원의 길을 막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23:13).

  메시아 예수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죄인일 때 예수는 죄인이 치를 죄의 대가를 속량하셨습니다. 예수의 속량으로 죄인은 의인이 됩니다(3:24). 예수는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죄인이라고 정죄 받는 제자들을 무죄한 자라고 선언 하셨습니다(12:7-8). 예수 안에서 죄인은 의인이 됩니다.

3.우리는 메시아로 인해서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화관을 쓰고 희락의 기름 바른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재(에페르) 대신 화관(페에르), 슬픔 대신 희락의 기름을 받았습니다(23:5). 구원받은 자에게 희락의 기름이 있습니다. 이것은 존귀함과 기쁨입니다. 교회는 환난에서도 기쁨을 유지해야 합니다(살전5:16-18).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찬송의 옷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삽니다. ‘근심’(케하)은 심령이 색깔이 바래거나 컴컴하다는 뜻입니다(삼상3:2). ‘찬송’(테힐라)은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15:11).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의의 나무로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변화된 그의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상수리나무가 의의 나무가 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12:2) 바울은 자기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26:24,29).

  세상은 질병과 가난과 전쟁과 재난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자기를 구원할 메시아를 구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완전하게 이루는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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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15-22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된 백성은 교회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회복은 나무 심는 일로 비유합니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 시대 교회의 정체성이고, 사명이기도 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세상에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필요를 공급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16).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구원자,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를 알게 됩니다. 안다는 것은 인격적, 체험적인 관계입니다. 교회는 이방의 것을 누리게 됩니다(6:8). 하나님이 세상에 심은 가지인 교회는 세상의 것을 누리며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가치를 존귀하게 합니다(17). 금으로 놋을 대신한 것은 가치를 높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가치를 물질적 개념으로 비유하셨으나 화평과 공의를 말씀합니다. 화평과 공의의 감독을 받는 교회가 가치 있는 교회입니다(14:17). 교회나 국가, 가정 모두 화평과 공의로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빛을 비추어주십니다(19-20). 하나님은 빛입니다(딤전6:16). 5:에서 유다를 극상품 포도나무로 비유했습니다. 빛이 식물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영원한 빛을 비춘다는 것은 계속 생명을 공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계속 비칠 때 슬픔의 날은 끝나고, 영광스러운 교회는 완성 됩니다(22:5)

2.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늘의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14:9).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교회이며, 또 하나님의 권속입니다(2:19).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들이 되는 일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는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평범한 사람이 복음의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핍박자 사울은 예수를 영접한 후 새로운 가치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3:8). 핍박자 사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라는 존귀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가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는 지금도 교회를 향해 말씀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는 땅에 있는 교회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1:1). 예수의 계시는 교회를 향하여 계속해서 비추는 빛입니다. 교회를 향한 예수의 칭찬과 책망, 권면과 위로, 약속과 명령은 우리를 향해 비추는 영원한 빛입니다.

3.우리는 이 시대에 이 땅에 하나님이 심은 가지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복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구속자, 구원자, 야곱의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에게서 축복의 기도를 받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28:15). 오늘도 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질병, 기근 등 세상의 상황의 영향을 받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아들이란 신분으로 살아야 합니다(2:19). 물질적인 것의 가치가 아니라 화평과 공의의 감독을 받는 것의 가치를 알고, 화평과 공의가 다스리는 가정, 교회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는 가지로서 성장, 결실해야 합니다. 예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의 형식적 신앙생활을 보여준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어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5:8-9).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펼쳐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심으신 교회의 열매로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누릴 힘과 능력의 복입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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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10-14

  사람은 존귀한 자가 되어 타인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섬김을 가르치셨지만, 이사야가 예언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존귀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1.하나님은 이 땅에 세워지는 교회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은혜가 교회의 시작입니다(10). 진노를 돌이키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2:8). 은혜는 호의, 기꺼이 받아들임입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기꺼이 받아들임 같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돌아온 그를 받아줍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존귀하게 만들고 교회의 편에서 일하십니다. 이방인은 교회에 힘을 보태고(10),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이방인은 저주받습니다(12). 하나님은 교회를 섬기지 않는 나라를 진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철저히 교회의 편에서 일하십니다(14: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발을 두고, 영화롭게 합니다(13). 회복된 성전은 하나님의 발을 두는 곳이라고 했습니다(43:7). 하나님께서 발을 둔 교회는 거룩한 이의 시온입니다(14).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전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짓는데 이것은 이방인이 성전에 들어옴의 예언이기도 합니다. 이방이 교회를 존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존귀한 교회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대제사장이 삯꾼 임을 알고 그 통치를 받는 무리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고 영접한 사람들이 교회의 시작입니다(9:36).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셨고(15:1-2), 이들이 기득권층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21:31).

  예수는 교회의 대적을 완전하게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의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요일3:8). 또 사역을 완성하고 떠나기 전 예수는 자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선언하셨습니다(16:33). 예수의 이김으로 그 안에 있는 자들이 마귀의 권세를 벗어나고,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교회의 편에 서시고, 교회가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예수는 교회를 오른손으로 붙잡고 돌보십니다(2:1). 예수는 교회를 그의 몸으로 여기고, 교회와 지도자들을 붙들어 주시고, 또 교회에 권세를 주십니다(2:26-27). 교회는 예수께서 주신 권세로 세상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하게 되고,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3.우리는 존귀하게 된 교회의 성도로서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이의 시온이란 이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길, 아합의 길은 이스라엘이란 존귀한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자가 가는 길입니다. 교회는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합니다(고전4:10). 바울은 자기가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하다고 했지만, 주님 앞에서 그런 것이지 세상에 대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편입니다(118:6). 바울은 교회가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긴다고 말합니다(8:37).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이 주는 수치심, 두려움을 이기고, 말씀으로 무장되어 사탄의 유혹을 이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합니다(요일5:4).

  우리 안에 거하는 예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세상보다 더 크신 예수가 그 안에 있습니다(요일4:4). 우리 안에 거하는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고, 그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는 지금도 믿음의 사람 즉 교회 안에 살아계십니다(2:20). 사람이 아니라 거룩하신 이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존귀함이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하든 상관없이 교회는 거룩하신 이의 시온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거룩함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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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4

  요한은 예수의 성육신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일로 표현합니다. ‘거하시는장막을 치다. 성막을 짓다는 의미입니다. 성탄절은 한 아기의 출생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성전이 되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1.하나님은 사람 가운데 거하시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주신 에덴동산도 성전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시고, 하나님도 그 동산에서 거니셨습니다(3:8). 그러나 아담은 에덴동산을 지키고 경작해야 할 제사장 역할에 실패하고,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으나 사람은 그들의 죄로 인해 그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 성소의 모형을 땅에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의 성전을 설계도를 보여주셨고, 그것이 사람이 볼 수 있는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25:8-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성막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또 범죄 함으로 그 성전은 파괴되고 맙니다.

  유대인은 마카비혁명으로 성전을 재봉헌하며 수전절 절기를 만들고, 지켰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물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전의 의미는 잃어버렸습니다. 제자들도 성전 건물에 관심을 둘 정도였습니다(24:1), 그러나 예수는 성전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예수는 육신이 되어 사람 가운데 거하시는 성전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 중에 거하려고 원래 육신이 아니지만,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헬레니즘 철학에서 인간 이성과 같은 것을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며 참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됨을 강조하며, 영지주의자(요이1:7)의 교훈에 대해 교회를 수호했습니다.

  성전이 되신 예수는 우리를 성전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육신이 되신 예수가 우리 가운데 거함(스케노오)을 기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육신이 되신 예수가 참 성전이란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성전으로 선포했습니다(2:19). 예수가 보내신 성령으로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고전3:16).

  예수는 하늘에 장막을 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떠나며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4:3).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하늘의 장막을 치며 우리 거할 곳을 마련합니다(7:15).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 사건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일은 영원토록 이루어지는 은혜입니다.

3.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모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9:11). 그러므로 이 예수를 아는 성도들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10:22). 예수께서 세우신 성막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하늘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살아도 하늘에 거하는(스케노오) 자로 살아야 합니다(12:12). 하늘에 사는 자는 이 땅에서 비방을 받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늘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13:6). 우리는 땅에 살아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하늘 성전에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예수의 성전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누리고, 나눠야 합니다. 예수께 있는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다윗은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으로 축복했습니다(삼하2:6).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은 흘러 넘치는 모습입니다. 예수로부터 넘쳐서 흘러온 은혜와 진리를 받은 성도는 이웃에게 나눔으로 그들 중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는 그의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며, 우리도 은혜와 진리를 이웃에게 보내어 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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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1-3

  세상에 영웅이 많아도 그 인생 전체가 모두에게 빛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 중재자가 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성육신이란 은혜를 받은 우리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은혜를 받은 사람을 통하여 일합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같은 사람을 일으키고, 그를 통해 그의 계획을 이룹니다. 일어나라는 말은 결단과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세겜에 머무는 야곱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35:1). 지금의 삶의 자리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위하여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일어나는 자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임합니다. ‘임하였다라는 말은 빛이 아래에서 위로 드러나는 형태입니다(32:31).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할 때 영광의 영이 임합니다(벧전4:14). 영광의 영이 임한 사람이 영광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의 땅, 캄캄함으로 가려진 만민이 빛을 보고 나오게 합니다(3).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비추는 빛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이삭을 찾아왔으며(26:28), 여리고의 라합도 정탐꾼에게 와서 부탁합니다(2:11). 세상의 주관자 하나님은 특별히 택한 사람이 어둠에 사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게 합니다.

2.일어나 빛을 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일어나셨습니다. 예수의 일어남은 본격적인 사역의 준비동작인데, 성육신 전에 영광의 보좌에서 먼저 일어나셨습니다(2:6-7). 또한 예수의 일어나심은 하늘에서 아버지의 일을 다 보시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5:19). 모든 사역이 준비된 예수는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는 흑암의 땅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는 멸시받던 갈릴리에 나타나셨습니다(9:1-2). 갈릴리 나사렛은 나다나엘도 무시하던 아주 작은 동네였습니다(1:46). 예수께서 열악하고 힘들고 어두운 곳에 임함으로 그 땅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눈먼 자의 눈을 열어 빛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드러내어 세상의 빛이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하여 그들이 모든 민족의 시선을 받게 합니다(2:9-11). 성령 충만한 사람을 모든 민족이 바라보게 됩니다.

3.우리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야곱이 벧엘로 가려고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영적인 각오와 결단이 있는 일어남이 필요합니다. 티끌을 털고, 목에 매인 줄을 스스로 풀고 일어나야 합니다(52:2). 옛사람, 육체의 것을 털어버려야 합니다(4:22). 말씀 앞에서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핑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얼굴이 빛났지만, 성도는 말씀 안에서 삶으로 세상의 빛이 됩니다(5:8-9). 보석은 빛이 반사되거나 투과될 때 아름다운 색상과 반짝임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빛이 투과되어 거룩함의 빛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입니다(5:14).

  우리에게 나오게 될 민족과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그냥 혼자 빛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고 그 이름을 고쳐 부르시고 여러 민족을 보게 하셨습니다(17:5). 예수는 제자들이 모든 족속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28:19).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보석처럼 하나님의 아름다운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잘 비추기 위하여 자기를 깨끗하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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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9:16-21

    정의와 공의가 없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난세의 영웅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인간 영웅은 결코 완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스스로 중재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스스로 중재자가 되신 하나님을 기다리고 신뢰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중재자 없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스스로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재자 없는 이스라엘을 이상히 여겼습니다(16). 정의와 공의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에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샤멤) 여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스스로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중재자는 사람의 구원 담당자입니다(53:6). 중재자는 공의의 갑옷, 구원의 투구, 보복의 속옷과 열심의 겉옷을 입은 무장한 군사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20). 시온이란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죄과를 떠난 자 즉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구속자가 임합니다. 구속자(가알)가 임하면 그의 무너진 기업이 다시 세워집니다. 나오미에게는 룻을 통한 보아스가 구속자로 등장했습니다(2:20).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웁니다(21). 언약은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그들 위에 영원히 임하고, 후손과 그 후손의 입에서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31:3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과 말씀으로 든든히 서고, 그 후손도 같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중재자 되신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중재자로 대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입니다(1:1). 성자는 성부와 한 하나님으로서, 또 사람들의 중재자로서 마귀를 멸하려고 나타나셨습니다. 이 땅에 나타나신 예수는 마귀(요일3:8)와 그의 지배를 받는 더러운 귀신(1:24)과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망까지도 이기며 우리를 중재하셨습니다(20:14).

  예수는 구속자로 우리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고향 나사렛에서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4:19). 예수는 한 가족, 한 가문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죄인을 회복시킵니다. 그런데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목수의 아들로만 알고 예수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는 성령과 말씀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고, 성령과 말씀을 보내주심으로 새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14:16-17).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도록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를 통하여 영원히 세워집니다.

3.우리에게 있는 중재자이신 예수를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마귀를 이기신 예수는 우리가 승리에 참여하게 합니다. 승리에 참여하려면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4:7). 마귀를 대적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6:11-12). 아담은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뱀에게 정복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뱀(마귀)을 정복해야 합니다.

  구속자와 함께하며 기업을 지켜가야 합니다. 임하신 구속자를 영접하는 것은 내게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할 때(1:35) 마리아는 그 말씀은 믿음으로 받았습니다(1:38). 임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일에 제대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셨으며, 말씀을 깨닫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주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 말씀을 가르칩니다(14:26).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이 가르치고 원하는 일을 따르고, 그 이끄심에 순종해야 합니다(5:24-25). 성령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중재자 되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중재자, 구속자가 있습니다. 그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이 난세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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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9:9-15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악과 회개, 또 세상의 모든 상황을 살피십니다. 하나님의 살피심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새로운 도우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고 있음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1.이스라엘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는 어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삶에 정의와 공의가 없습니다(9). 영적인 어둠입니다(10). 맹인 같이 더듬고, 길에서 넘어지고, 죽은 자와 같습니다. 이사야는 유다가 정의와 공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그들은 들포도를 맺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5:7) 공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입니다(6:25).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빛과 구원을 바라고 원했지만, 정의와 구원은 그들에게서 멀었습니다(11). 응답이 없는 것은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삼상28:5-6). 하나님께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은 평강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악을 떠나는 자가 오히려 탈취를 당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15). 기본적 법질서, 윤리 규범도 무너지고, 가치관이 전도되어버렸습니다. 미가 선지자도 그 상황에 대해 외쳤습니다(3:11). 정의와 공의, 성실과 정직이 사라지고, 자기 유익이나 돈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잘못된 사회 시스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평강이 없음을 살피셨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은 백성을 살핍니다. 정의는 하나님의 법이며, 우리가 사는 삶의 기준입니다. 공의는 의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의의 하나님은 사람이 그의 의와 거룩함에 참여하기를 원하셨습니다(11:45). 이 정의와 공의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빛인데 사람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1:4-5).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살피십니다. ‘살피다는 말은 바라보다, 조사하다, 준비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버려둔 사람은 그들의 죄악으로 그대로 망하게 됩니다(1:24, 26, 28). 하나님의 살피심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준비가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쫓겨난 하갈을 살펴보셨습니다(16:13-14).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기뻐하지 아니하시고”(15b)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고통을 느낀다는 표현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일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 즉 기뻐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삼하11:27).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느끼시기 때문에, 악한 것에 대해서 참지 않고 심판합니다(6:5-6).

3.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살펴서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나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기준으로 나를 살피고, 회개해야 합니다(9-10). 자기를 속이는 자는 어둠에 있으면서도 어둠인지 모르고 삽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처한 사람입니다(요일2:11). 사탄에게 속고, 장애물에 쉽게 넘어지는 자라면 자기를 살펴서 자기의 죄를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피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린양 예수는 일곱 눈, 일곱 영으로 지금도 우리를 살피고 계십니다(5:6). 하나님의 살피심을 알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139:1-4). 그리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의 은혜를 알고 찬양했습니다(139:17).

  정의와 공의, 성실과 정직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 성실과 정직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살피심을 알면 억울함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로마의 핍박 속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들이 선을 행할 것을 강조했습니다(요삼1:11).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공의와 정의, 성실과 정직으로 살아야 합니다. 공의와 정의를 온전하게 이루신 예수를 닮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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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23:39-44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초막절 절기를 주셨는데 초막절은 모든 절기 중에 마지막 절기입니다. 그리고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완성하신 초막절 의미를 알고 참된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초막절 규례를 주셨습니다.

  초막절은 완성의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토지 소산을 거두기를 마친 후 드리는 감사의 절기입니다(39). 모든 곡식과 과일을 저장한 후 기쁨으로 절기를 지킵니다. 초막절은 완성이 강조됩니다. 29:12-40의 초막절 제물의 숫자는 완전수 7의 배수입니다. 모든 것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초막절은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43). 집을 떠나서 7일간 초막에 거주하면서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현재의 기쁨도 과거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연장임을 알게 합니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삶에 적용됩니다. 바울은 그것이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기록이라고 말합니다(고전10:11).

  초막절은 이른 비를 구하는 절기입니다. 7월 절기가 지나면 겨울이 시작되고, 우기가 시작됩니다. 이때 이른 비가 필요합니다. 요엘선지자는 곡식 창고가 텅 비어버린 그들에게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이른 비를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2:23). 초막절은 하나님이 새롭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는 소망의 절기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초막절을 완성하셨습니다(7:~9:).

  예수는 믿는 자에게 생수를 준다고 하셨습니다(7:). 명절 끝날에 나를 믿으라고 하시며 생수를 말씀하셨습니다(7:37-38). 초막절에 시내 버들을 제단 남서쪽에 세우고 물을 붓고, 제단을 돌며 시118:25을 읽었습니다. 이것이 호산나의 외침이고, 이른 비의 간구입니다. 이때 예수는 자신이 생수를 준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8:). 초막절 7일 저녁부터 8일 새벽까지 성전 여인의 뜰에서 등불 켜고 밤새 축제를 벌인 후, 아침에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두 사죄의 은혜를 기뻐할 때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왔고, 예수는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8:11) 예수 안에 진정한 죄 사함이 있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빛을 선포하셨습니다(9:). 예수는 촛대로 불을 밝힌 그 뜰에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8:12). 명절 후에, 맹인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 것은(9:5-7) 실로암 물로 관제의 행사를 했던 유대인들의 행사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리지 못한 그에게 초막절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3.우리는 완성된 초막절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가 주신 생수의 강이 흐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성령의 충만을 잃지 않는 삶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뱃속에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7:39). 구원의 완성은 우리가 성령으로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 받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께 용서받은 자로서 남을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주기도문에서 용서의 행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6:12). 초막절의 기쁨은 용서를 통하여 형제들과 하나 됨을 이루는 진정한 기쁨이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초막절의 축제는 있었지만, 예수를 시험하고, 죄를 지은 여인을 정죄하는 일을 잘했었습니다.

  예수의 빛 가운데 사는 자로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 세상의 빛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2:17-19).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가르치는 예수의 제자들이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의 삶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완성된 초막절을 아는 자로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감사하며,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고 용서하며, 이 세상에 참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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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9:1-8

  평강을 구하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진정한 평강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자도 그의 속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여 응답을 받지 못하고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제대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평강을 주시지만, 사람들은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응답하려고 하지만, 사람의 범죄는 응답의 길을 막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구원의 손과 기도를 들으시는 귀가 있습니다.(1) 그러나 기도와 금식으로 평강을 구하는 사람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손을 짧지 않습니다.(11:23) 외형적 의식은 있지만, 거짓이 가득한 것이 문제입니다.(3)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을 아시는데(7)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자기 행위의 의로움만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사람은 자기가 정당하다고 여기지만, 그 행위의 옷은 거미줄로 짠 옷과 같습니다.(6) 옷은 수치를 가리고 평강을 누리게 하지만, 거미줄 옷은 수치를 가릴 수 없고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지만, 사람은 평강의 길을 모르고 굽은 길을 만듭니다.(8) 니므롯이 홍수의 두려움을 이기려고 바벨탑을 쌓듯이 자기 길을 만듭니다.(11:4) 아담은 범죄 이후에 평강의 길을 잃어버렸고,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다른 길을 만들어 평강을 추구하지만 평강이 없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길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불통이 되게 하지만, 예수의 피는 우리 죄를 사하여, 하나님과 소통되게 합니다.(요일1:7) 예수의 십자가는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2:14)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간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수치를 가리는 참된 옷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입었던 무화과나무잎 대신에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입을 옷이라고 강조합니다.(13:14)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자기의 부요를 드러내 보이지만 그 안에 예수가 없었는데 이것이 그들의 수치였습니다. (3:18)

  예수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의 곳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입니다.(14:3-6) 우리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은 우리를 혼인 잔치의 평강과 기쁨의 곳에 이르게 합니다. 사갸라는 평강의 길을 예언했습니다.(1:79) 예수는 평강의 길이며, 세례요한은 그 길로 인도합니다.

3.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길에서 평강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자기를 살피고, 자기를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철저히 회개할 수 있습니다.(고전3:18)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다.(1:22) 예배 참석, 말씀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철저한 순종의 삶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3:10-12)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옷을 입고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 된 사람으로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는 세마포 옷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평강의 길에서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평강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는 악인은 평강의 길을 모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3:17-18) 평강의 길로 행하는 자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삽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의 응답을 받고,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14:13)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손을 펴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우십니다. 거룩한 삶을 먼저 살며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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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9b-14

  재건교회는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신사참배를 하고 무너졌던 교회를 다시 세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룰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는 사람이 회복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평안을 이룰 사람을 만드십니다.

  오래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는 자를 만드십니다. ‘오래라는 말은 영원을 뜻하며 이것은 영원히 황폐하여, 심령이 죽은 죄인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들은 주린 자, 괴로워하는 자, 어두움에 있는 자”(10)입니다. 이들을 다시 세우는 재건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에스라처럼 말씀으로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7:10)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는 자를 만드십니다. 역대라는 말은 모든 세대를 말하고, 기초는 건물뿐 아니라 무형적이고 하나님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는 기초를 말합니다. 파괴된 기초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간구했습니다.(32:32)

  무너진 데를 보수하며, 길을 수축하는 자를 만듭니다. 성벽의 터진 곳을 막고, 끊어진 길을 다시 회복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안전하게 사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평안함을 누리기를 원하셨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2:13-14)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회복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의 회복 사역에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오래라는 시간이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말씀으로 고쳤습니다.(5:5-6) 38년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기간입니다. 예수는 오랫동안 육체와 심령이 황폐한 사람이라도 일어나라는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세대에 구원의 기초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유일한 기초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가 유일한 구원의 기초임을 강조했습니다.(4:11-12) 구약 성도들은 이 예수가 앞으로 오실 줄 믿었으며, 신약 성도들은 이미 오신 예수가 나의 구주임을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는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수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9:11) 다윗의 장막은 성전의 구조가 아니라, 언약궤만 있었습니다. 지성소만 있는 구조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성소의 휘장을 찢으셨고, 승천하여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9:24)

3.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관리를 해야 합니다. “안에 있는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라”(9b)고 했습니다. 남을 정죄하여 멍에를 씌우고, 그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손가락질, 다른복음의 말을 거해야 합니다. 심령이 오래 황폐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내가 먼저 진리에 순종하여 나를 깨끗하게 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벧전1:22)

  주린 자에게 심정이 동하고,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해야 합니다.(10) 주리고 괴로워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을 거절했지만, 야고보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며 다윗의 장막 회복 예언을 말했습니다.(15:16-17) 이방인을 향한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4:32)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13)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 주신 날이고 창조의 완성입니다.(2:3)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이란 날 자체를 율법적으로 지키기보다는 그날에 하나님만 즐거워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사람입니다. 회복이 필요한 이 시대에 이 재건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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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8:1-9a

  하나님은 영과 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육체보다 영과 혼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혼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형식적 금식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1.하나님은 금식하는 자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물을 드러냅니다.(1) 사람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형식적 신앙의 실상을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형식적 신앙을 책망했었습니다.(1:11-12) 2절에 보면 유다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의도를 알고 계셨습니다.(3)

  하나님은 그의 기뻐하는 금식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6-7) 하나님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동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흉악한 결박과 멍에를 풀어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행동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146:7-9)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는 자에게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8-9) 하나님의 응답은 그들이 새벽같이 비취고, 치유가 급속하고, 공의가 앞에 행하여 당당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면 그 안에서 안전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호위하심으로 이스라엘은 그 안에서 안전함과 평강을 얻었습니다.(14:19-20)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위선과 외식으로 금식하는 바리새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면서 다른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금식을 많이 한다는 자기 영성을 자랑하려고 한 것입니다.(6:16) 예수는 형식적 신앙으로 자기를 보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23:23)

  예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유를 주는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4:18-19) 예수의 사역은 억눌린 자를 해방하는 일인데 이것은 세상 정치 권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이었습니다.(8:34-36)

  예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삼고, 그들을 치유하고, 의롭게 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사람은 돈으로 산 면죄부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어야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8:1) 요한은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예수의 보호로 악한 자가 건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요일5:18)

3.우리는 이웃의 흉악한 결박과 멍에를 풀어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예배하고 금식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4:23-24) 바른 예배와 금식은 장소나 어떤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프뉴마)이십니다. 예배하는 자는 영(프뉴마)과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그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습니다.(2:12-13)

  진리를 증거 해야 합니다. 거짓의 영이 주는 거짓의 멍에에 매인 사람은 다른복음을 믿고 삽니다. 진리는 거짓의 멍에를 풀어 그를 자유하게 합니다.(8:32) 사탄은 사람에게 생각을 넣어 그 생각의 멍에를 쓴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13:2) 진리를 전해서 그들이 거짓의 멍에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형제가 멍에에 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요셉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 형들을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50:20-21)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면 그 형제는 죄책감과 두려움이란 멍에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억눌린 자,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들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며, 응답을 받는 금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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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7:14-21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의 영과 혼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피곤한 영과 혼을 다시 소생시킵니다. 살려주신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믿음의 고백이 있는 입술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아직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을 소생시킵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를 배려하고 생각해 줍니다.(16) 하나님은 두려움과 놀람에 빠진 그들의 영과 혼이 피곤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피곤은 몸이 아니라 영과 혼의 피곤이며 아주 쇠약하여 죽음에 도달한 상태를 말합니다.(77:3) 하나님은 영과 혼이 죽은 이스라엘과 다투거나 노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깁니다.(16:6)

  하나님은 영과 혼이 죽은 자들을 소생시킵니다.(15)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악한 왕 므낫세까지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대하33:11-13)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셨음을 노래했습니다.(23:3) 하나님이 소생시키는 과정은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는 백성을 고치고 인도하여 위로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18)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십니다.(19) 이것은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 같은 성경에서는 사람이 그 입으로 평화를 노래하는 것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13:15) 하나님께서 소생시키신 사람은 마음의 평안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려고 제자들을 보냅니다. 예수의 성육신 목적은 죄인의 구원 즉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에게는 질병, 죽음, 부정함, 귀신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가서 사람을 고치고 살리라고 하셨습니다.(10:7-8) 예수께서 죄와 사망의 고통, 질병과 죽음에 처한 사람들을 배려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립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다.(1:4)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는 죽은 자를 살려주는 영이 되어 사람을 살립니다.(고전15:45)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을 살려서 그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2:1)

  예수는 살아난 자들이 찬양하게 합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때 호산나 찬송을 제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돌들이 찬송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9:38-40) 구원받은 사람이 주를 향한 찬송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천국에서 큰 무리는 구원하심이 있는 어린양 예수를 찬양합니다.(7:9-10)

3.우리는 영과 혼이 살아난 자로서 입술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통회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통회는 '깨어지고, 부서지고, 잘게 쪼개어진'의 의미입니다. 말씀 앞에 굳어있는 마음이 다 깨어져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통회했습니다.(51:17) 그러나 마지막 멸망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은 징계와 재앙이 있어도 통회와 회개가 없습니다.(9:20-21)

  내 마음대로 가는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길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고치시고, 바른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길로 가는 요나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셨습니다.(4:11) 하나님이 가게 하신 길로 가야 합니다.

  입술의 열매,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찬양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고, 구원하신 주를 향한 섬김이며, 찬양을 듣는 이들에게 증거입니다. 말씀으로 여호와께 돌아와 고하는 것이 입술의 열매입니다.(14:2)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입에서는 감사와 감격, 환호와 기쁨이 나와야 합니다.(살전5:16-18)

  악인에게는 평안함이 없지만, 영과 혼이 살아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함을 누리면서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늘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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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7:11-13

  우상숭배의 결과는 무익함입니다. 우리는 삶에 무익한 것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영원한 것, 진정한 가치를 지닌 것을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유다의 우상숭배의 무익함을 드러내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두려움과 놀람에 사로잡힙니다.(11) 유다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잠잠하셨고, 그들은 더 두려움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잠잠함은 그의 활동과 말씀이 보이지 않고(16:16-17:1) 이것은 사람에게 두려움과 놀라움을 줍니다. 그러나 또 그의 잠잠은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유다의 우상숭배는 그 행위의 무익함만 드러냅니다.(12) 유다는 우상을 섬기며 그들의 행위가 의롭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의는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근본적인 마음을 드러냅니다.(7:9-10)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은 드러나게 됩니다.(14:11-12)

  우상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13) 우상은 바람 앞에 날려 갑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땅을 차지하며, 거룩한 성을 기업으로 얻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알고 그 안에 들어가는 의뢰(61:3)를 통하여 기업을 얻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대적을 물리친 승리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의뢰할 대상인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안에 참 평안, 든든함이 있습니다. 사람은 두려움을 이기려고 여러 방법을 쓰지만 실패합니다. 오직 예수를 의지하는 자가 두려움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는 두려움을 주는 사탄을 이기고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16:33) 예수 안에 있는 사도들은 세상의 판단과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역했습니다.(4:19-20)

  예수 안에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움이 있습니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자기를 잘 다스려도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3:10-12) 율법주의자가 열심히 노력해도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안에 우리의 의가 있습니다.(4:25) 우리가 예수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보이라는 그 테스트에 합격합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누립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 그 약속 된 것을 받게 합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누릴 수 있도록 나를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14:1) 믿음이 기업을 얻는 방법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예수와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3:6)

3.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잠잠하심이 있어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늦어지고, 또 내가 원하는 일들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잠잠하신 시간에 필요한 회개를 이루어야 합니다. 죄를 지은 후 하나님이 잠잠하실 때 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50:21-22)

  하나님 앞에 오직 예수만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율법주의자들처럼 나의 행위와 공로를 드러내는 것은 무익합니다. 모세라도 사역자가 자기를 드러내면 실패합니다.(20:10)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불법이라고 하셨습니다.(7:22-23)

  하나님이 약속한 거룩한 산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물질, 건강, 세상의 즐거움 같은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거룩한 산을 기대합니다. 성도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른 사람입니다.(12:22) 하늘의 예루살렘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12:28)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제일 헛되고 무익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그 기업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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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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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7:3-10

  몰지각한 목자로 인해서 불의한 일이 벌어지는 사회에는 우상 숭배가 만연합니다. 자기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이 보이는 여러 우상을 섬기지만, 보이지 않는 우상도 많습니다. 우상 숭배를 거슬러 이기는 길은 오직 복음의 말씀입니다.

1.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근원을 아십니다.(3-4) 이스라엘을 무당의 자식, 음녀의 자식, 패역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식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어갑니다. 이스라엘의 타락함은 그 조상의 악한 영, 음행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악합니다.(8:21)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악행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아십니다. 그들은 푸른 나무와 골짜기에서 우상을 섬기고(5-6), 높은 산에서 이방 신과 언약하며(7-8), 이방 각처까지 가는 열정으로 우상을 섬겼습니다.(9-10) 몰렉을 섬기며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10) 므낫세(대하33:6) 같은 몰렉 숭배자는 자기를 위하여 자녀도 불태워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질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을 떠나 이방과 언약을 맺은 것(8)에 대해 분노합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입니다.(20:5)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고, 질투는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질투하며, 책망합니다.

2.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는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립니다.

  진리에서 나오는 권세를 가진 왕 예수는 속에 진리가 없는 자를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의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속에 진리가 없으면 마귀의 자식입니다.(8:44)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도 마귀의 영향력 속에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혜의 왕 예수는 왕으로서 판단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우상을 섬기지는 않지만, 율법주의자입니다.(18:11-12) 그러나 예수는 그 마음을 판단하는 왕입니다.(18:14) 또 왕이신 예수는 자기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11:25-26) 세상에 이렇게 말하는 신은 없습니다. 예수만이 진정한 왕입니다.

  사랑의 왕 예수는 자기를 버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영접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슬퍼하셨습니다.(23:37) 자기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끝까지 표현합니다. 암탉이 날개 아래 새끼를 모으려는 예수의 마음으로 유대인 중에서 선택자들이 결국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11:25-26)

3.우리에게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아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분은 성령님입니다.(8:14-15) 성령은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는 대적하는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임을 강조합니다.(4:7)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외형적인 우상뿐 아니라 우리 안에도 우상은 있습니다.(3:5)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탐심이 있어서 그것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몰렉입니다. 몰렉은 ’, ‘주신(主神)’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17:14)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낙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징계받는 아들에게 회개는 필요하지만, 낙망은 없어야 합니다. 자녀는 책망을 들을 때 오히려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합니다.(12:5-6) 자기의 연약함 문제로 낙심하며 포기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책망과 징계가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있게 붙들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결국은 우상 숭배로 이어집니다. 이 시대의 우상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더 잘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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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7:1-2

  하나님을 모르는 몰지각한 목자들로 인하여 의인의 죽음이 생깁니다. 이 일은 당시 사람에게서도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의 죽음은 가치가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사는 것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의인의 죽음을 주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죽음에 마음을 둡니다. 사람은 의인의 죽음을 무시하지만, 하나님은 의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합니다.(116:15) 죽임당한 의인은 일반적 죽음(무트)이 아니라 멸망(아바드)입니다. 몰지각한 목자인 므낫세에게 학대와 핍박을 당한 것입니다.(왕하21:16) 이런 일에도 사람들은 그 죽음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적당한 때에 거두어 갑니다. 악인은 박해와 핍박으로 의인의 목숨을 빼앗지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선한 여로보암의 아들은 병들고 죽지만 그는 재앙 전에 죽습니다.(왕상14:13) 빨리 죽는 것이 사람에게 슬퍼 보이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최종적으로 평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죽음 이후까지도 주관합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은 시므온은 예루살렘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평안을 말했습니다.(2:29)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 이후에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의인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입니다. 예수는 아무 죄가 없이 정죄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를 재판하던 총독 빌라도도 예수가 죄 없음을 알았습니다.(23:22) 그리고 십자가에서 사형을 집행했던 백부장도 예수의 의로움을 고백했습니다.(23:47) 예수가 의인이란 것은 사형받을 죄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죄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고후5:21) 하나님은 아들이 의인의 죽음을 당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53:6)

  예수는 죽음으로 우리의 평안을 이루셨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듭니다.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과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5:11) 평안은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평안을 잃은 아담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3:10)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것이 참 샬롬입니다.

3.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의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의인은 평안에 들어가지만,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57:20-21) 세상의 어떤 박해와 핍박이 있어도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 유언의 편지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핍박이 있음을 디모데에게 말해주었습니다.(딤후3:12)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실한 자를 거두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함으로 이끕니다. 바울은 자기 생명을 주께 드렸습니다.(14:8) 하나님의 진실 즉 헤세드를 우리 삶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보아스는 언약 백성으로 살려는 룻에게 인애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3:10) 이것은 보아스의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의 곳으로 가려면 바른길로 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함은 온전함이 없습니다.(요일2:16-17)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그를 향하여 나아가는 바른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바른길은 곧고, 올바르고, 정직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길인 예수 안에서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래 살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의인의 삶, 진실한 삶, 바른길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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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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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6:9-12

  어떤 공동체이든 바르고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이 있으면 그로 인해 모두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오라, 만나자, 나와 연합이라는 복음을 주셨지만, 이스라엘의 몰지각한 목자들로 인해 그 백성들이 복음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34:5-6)

1.복음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그 백성을 보살필 사람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양 떼 같은 자기 백성을 돌볼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파수꾼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파수꾼이었습니다.(2:15) 둘째는 목자입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삼하5:2) 그리고 셋째는 양 지키는 개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양 떼로 비유하면서 양을 위한 사람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몰지각한 목자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어떠한지 알고 계셨습니다. 맹인 파수꾼, 벙어리 개, 몰지각한 목자는 예레미야 당시에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이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8:11)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한 후 예레미야는 슬픔의 노래를 부릅니다.(2:14)

  하나님은 양 떼로 비유된 그의 백성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라는 이스라엘의 목자를 통하여 그 백성을 구원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3:10)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 가운데 잘 살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참 목자의 모델인 다윗과 같은 왕을 세워주셨습니다.

2.예수는 하나님께 대한 지각이 있는 참 목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는 구원받은 자들의 목자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백성 위에 군림하며 자기만족을 위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중에도 잘못된 길로 가는 왕이 있습니다. 예수는 양을 잘 돌보는 정도가 아니라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은 선한 목자입니다.(10:14-15)

  예수는 몰지각한 목자에게 분노하며, 지각 있는 목자를 세우셨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율법으로 백성들을 가르쳤지만,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 그들은 맹인 된 파수꾼이었습니다. (15:14) 예수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잘 아는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14:9)

  예수는 자기 백성을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맹인 파수꾼, 몰지각한 목자, 벙어리 개의 무능, 탐욕, 방탕으로 양들은 짐승의 먹이가 됩니다.(9) 예수의 그림자인 다윗은 자기의 양을 잘 보호했습니다.(삼상17:34-35) 이처럼 예수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한 마리의 양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찾고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각 있는 목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우리는 기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평안, 건강, 현실의 것만 구하고 있으면 그 입맛에 맞도록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가 나오게 됩니다.(6:13-14)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6:33)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우리는 목자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왕을 구할 때 주변 나라들을 보았습니다.(삼상8:5)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세워주신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보는 일꾼을 구해야 합니다.(9:36-38)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양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 사명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3:17) 양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먹이가 되어, 자기를 보호할 수 없는 자들을 구원해야 합니다.(5:19-20)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전도과정에서 몰지각한 목자 때문에 양들이 짐승의 먹이가 됩니다. 참 목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하고, 우리도 깨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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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6:1-8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를 오라고 하셨으며, 찾으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자를 여호와께 연합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힘이 있는 사람과 연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1.하나님은 그에게 나온 사람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만난 이방인들을 연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1) 연합이란 말은 야곱이 셋째 아들 레위란 이름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온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자인 레위 자손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자들은 원래 하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23:1,3)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을 레위로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와 연합한 자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3) 이방인과 고자들에게 그들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합니다.(5) 야곱은 레위를 저주했지만(49:7), 모세는 레위 자손을 축복합니다.(33:10) 저주가 복으로 바꿔졌습니다. 이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연합한 자의 예배를 받습니다.(7) 하나님과 연합된 자는 성산으로 인도받으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제물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으로 통일이 되게 합니다.(1:10).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나오는 것을 받으십니다.(2:18)

2.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바르게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의 관계를 연합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세상을 떠나게 될 예수는 제자들과 작별하기 전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그들과 자신이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임을 말씀하셨습니다.(15:5) 예수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과 함께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연합입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로서 연합하고 계십니다.(1:22-23)

   예수는 그와 한 몸 된 사람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있는 저주를 복으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저주를 대신 당하시고,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는 자로 만드셨습니다.(3:13-14) 예수께서 십자가의 저주를 받음으로 이방인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실 때 그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11:17) 예수는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별되어 있음에 대해서 분노하셨습니다. 그의 몸이 성전이신 예수는 그에게 나온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된 자로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지키고 의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1) 사람의 의의 행동은 의의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연합된 자는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지혜와 거룩함을 드러냅니다.(4:23-24) 하나님과 연합된 새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고후5:17-18)

  하나님과 연합된 자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며, 그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그의 언약을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4,6)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는 하나님을 알고, 또 연약한 형제에게 안식의 은혜를 나누며,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20:20)

  만민의 기도하는 집에서 레위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되고, 만민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15:16) 성전 되신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와 함께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WCC처럼 예수 밖에 있는 자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입니다. 만민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만민의 기도하는 집에서 의의 삶을 살며, 은혜를 확신하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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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5:6-13

  하나님은 그의 구원이 만민에게 미치게 하시려고 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가장 복되고 소중한 일입니다.

1.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를 주셨습니다.(6)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를 잘 잡는 일이 중요합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의 종말을 말했습니다.(1:15) 노아는 정해진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그 시간을 방주 만드는 의미 있는 시간(카이로스)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방법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돌아와야 합니다.(7) 돌아와서 하나님을 찾고 불러야 합니다.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65:2) 하나님을 만나려면 자기의 길과 생각을 하나님의 길과 생각(8)에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만난 자에게 긍휼과 용서함을 줍니다.(7)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의 긍휼과 용서를 얻었습니다.(15:19-20)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는 죄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근거입니다.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요일4:9)

2.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정한 때에 나타나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세상에 나타나셨고(4:4), 그 목적은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1:18) 제자 빌립은 예수와 함께 있었으나 하나님의 형상을 보려고 했었습니다. 예수를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임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14:8-9)

  예수는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과 생각을 아들에게 드러내셨고, 아들은 그것을 이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말씀하셨고(8:28), 또 자기 자의로 말하지 않았습니다.(12:49) 우리는 예수의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과 길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하셨으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다 이루셨습니다. 또 예수는 제자들에게 긍휼과 용서를 가르쳤습니다.(18:21-22) 모세의 제자, 바리새인의 제자들에게는 긍휼과 용서가 없었습니다. 예수 제자의 삶은 긍휼과 용서가 특징입니다.

3.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하며, 또 하나님을 대면한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성공을 위하여 기회를 찾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습니다.(5:4) 때를 잃지 않고 기회를 잡는 것은 단순한 시간을 의미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를 만날 기회를 찾았습니다.(32:6)

  하나님의 길과 생각에다 나를 맞춰야 합니다. 나의 길과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높은 것’, ‘다른 것들에게 결실이 있도록 베푸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 알았습니다.(3:8) 에덴동산의 회복(13)과 같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형제에게 은혜를 베풀고,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34:10)는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그 긍휼과 용서의 광채를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남은 신비체험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는 용서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6:12)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대면한 자로서 긍휼과 용서의 삶이 우리 얼굴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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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5:1-5

  하나님은 그의 종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고, 화평의 언약과 영광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하여 초청합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복이지만, 유대인 중에는 이 초청에 응한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22:14)

1.하나님은 세상의 만민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만민을 초청합니다. 만민 중에서 목마르고, 돈 없는 자를 부르셨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존, 야망, 영광을 위하여 자기 방법대로 수고하고 애를 쓰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다.(6:7)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초청대상은 어느 특정한 혈통과 지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초청은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의 대가를 치를 능력이 없습니다. 포도주와 젖은 영원한 생수, 완전한 기쁨, 넘치는 풍요입니다. 초청에 응한 자들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습니다(2). 영원한 언약(3), 영화(5) 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30:15)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방법은 물로 나아와서 돈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는 것이며(1), 하나님께 듣는 것입니다(2). 그리고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르라”(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자는 와서 받으며, 말씀을 들으며,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10:17)

2.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이 하나님께 나와서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관심은 세상 모든 민족에게 있습니다. 예수는 성육신하실 때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려고 유대인으로 오셨지만, 선한 목자로서 예수는 양의 우리 밖에 있는 다른 양들을 잊지 않았습니다.(10:16) 예수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잊지 않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예수는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보내셨습니다.(28:19)

  예수는 자신이 생명의 물이고,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과 양식입니다. 사람은 육신의 양식과 물을 얻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진정한 양식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수는 자신이 사람에게 필요한 생명의 물이며(4:13-14) 또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6:35)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로서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5) 예수는 빌라도 앞에서 그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18:36)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나라는 이 세상 나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로 그 나라이며, 예수는 그 나라로서 오셨고, 그 나라 일면을 보여주셨습니다.(12:28)

3.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돈 없이 그의 약속 된 것을 사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약속을 바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2:8)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과 예배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어야 합니다.(2)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이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그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명령에는 순종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삼상3:10)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때 그 나라는 달려온다고 했습니다(5). 하나님의 응답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약속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그들이 먼저 구할 것이 무엇보다 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6:33)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말씀하시고 초청하셨습니다. “와서 사라! 들으라! 구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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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4:11-1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영광스러움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담대함과 평안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신 하나님의 예언은 지금 교회에도 주신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종들의 기업이며, 하나님이 주신 공의를 얻었습니다.

1.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을 든든하게 세우십니다.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에는 아름다움과 견고함이 있습니다.(11-12) 성벽은 채색된 돌들이고, 기초는 청옥이고, 성벽은 홍보석이며, 성문은 석류석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기초는 거룩함이고, 드러내는 것은 사랑이고, 세상을 향해 빛의 문을 연 상태를 말합니다. 교회는 아름다움과 견고함이 있으며, 영광스러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에는 평안함이 있습니다.(13)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교훈을 받는다는 것은 제자가 된다는 것이고, 교훈을 받을 때 평안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훈을 듣는 자녀들의 평안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평안함이 있었습니다.(23:4)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은 하나님의 공의를 얻습니다. 교회의 대적들의 모든 시도는 무산되는 것은(15,17) 하나님의 종들의 기업에 공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긴 자(8:30)는 의롭게 때문에 부끄러움도 없고, 사탄도 참소할 수 없는 강력한 사람입니다. 모든 주권을 가진 하나님이 교회에 의로움을 주셨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교회에 대한 언약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는 유대인공동체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는 믿음이고(16:18), 교회가 세상에 드러낼 사랑을 강조하셨으며(13:34-35),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습니다.(5:14) 교회는 율법, 사람, 지역, 이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예수는 평범한 사람을 그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는 그 당시 모세의 제자, 바리새인의 제자, 요한의 제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 중에서 제자를 불러 세웠으며(3:13-15),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마무리하시는 십자가 앞에서 그들에게 평안함을 주셨습니다.(16:33)

  예수는 교회를 영광스럽게 만듭니다. 승천하신 예수는 재림 이후에 크고 흰 보좌에 앉아서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버리는 심판주로 일합니다.(20:14-15), 그 후에 각종 보석으로 꾸며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셨습니다.(21:9-10) 하나님은 교회의 영광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은 예수를 통해 다 이루어집니다.

3.우리는 예수께서 세우신 영광스러운 교회의 성도로서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함 위에 서서 사랑과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의 약속은 미래의 소망이지만, 이것을 미래의 일로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힘은 세속적 힘이 아니라 거룩함이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빛의 열매로 빛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5:9)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훈을 받으며,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말씀에서 나오는 이 평안함은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겉으로의 평안함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서도 평안함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23:34)

  하나님이 주신 공의로 살아야 합니다. 사탄은 죽음의 공포로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의롭다고 인정된 자는 어떤 상태에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정죄가 없어졌습니다.(8:1-2) 공의로 사는 것은 선행 몇 가지를 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의를 입은 자로서 사탄의 계교에 대해 당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그 원래의 모습은 영광스럽고, 평안함이 있고, 의로움이 있습니다. 이 소망을 지금 우리의 삶에서 실제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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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4:4-10

  긍휼의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사랑하여 회복시키고 화평의 언약을 맺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과 화평의 언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의 언약을 맺은 사람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긍휼은 화평의 언약의 기초입니다.(7)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결혼하셨다고 했습니다.(2:19-20)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큰 긍휼로 그들을 다시 모은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큰 긍휼을 알았습니다.(30:5)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는 화평의 언약을 유지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9:12-13) 하나님의 진노는 잠시지만, 자비는 영원합니다.(8) 영원한 자비는 화평의 언약이 잘 유지되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자비의 하나님입니다.(살후2:16)

  하나님은 맹세로 화평의 언약을 견고하게 합니다.(9)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완전하게 이루십니다.(22:16-17) 하나님은 맹세로 그의 백성들과 세우신 화평이 깨어지지 않게 합니다. 맹세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입니다.(6:16) 하나님이 세우신 화평의 언약은 최후의 확정입니다. 더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람을 보는 예수의 시각은 긍휼함입니다. 예수는 무리를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시고 불쌍히 여겼습니다.(6:34) 모세의 제자는 율법적 시각에서 사람을 보고 비판하고 정죄하지만, 예수는 긍휼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십니다. 그러나 죄를 용납하지는 않으셨으며, 그것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8:11-12)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에 영원합니다. 예수는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성육신을 계획하셨고, 승천하신 예수는 지금도 구원받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구원 사역은 영원합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그의 영원을 말씀하셨습니다.(14:1-3)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13:8)

  예수는 화평의 언약이 흔들리지 않도록 맹세하며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제사장이 되실 것을 스스로 맹세하셨습니다.(7:20-21) 맹세한다는 것은 스스로 각오와 결단을 가지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고,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의 언약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의 긍휼에 집중하고 어떤 어려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귀히 여기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요일4:16) 그것이 하나님과 사귐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를 신뢰해야 합니다.(8) 영원한 자비를 신뢰할 때 평안함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를 강조했습니다.(4:31) 하나님의 자비는 언약적 의무에 대한 충성입니다. 그의 언약에 대해 영원히 충성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의 기도는 떼쓰고 구하기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4:6-7)

  하나님과의 화평의 언약을 유지하려면 죄악과 싸워야 합니다. 모압의 미인계에 넘어가는 시므리와 여인을 찔러 죽인 제사장 비느하스에게 하나님은 평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25:11-12)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은 죄악과는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리심을 받은 자는 자기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3:5)

  하나님은 배신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지만, 그것은 잠시이고, 그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큰 긍휼을 기대하며 화평의 언약이 있는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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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4:1-3

  하나님이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받을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번성할 것을 예고하시면서 그들의 장막 터를 넓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 교회에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1.하나님은 그의 종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많은 자녀의 출산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홀로 된 여인 같은 이스라엘에게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그 자녀가 많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여자에게 큰 수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생육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사람이 하나님께 처음부터 받았습니다.(1:28)

  이스라엘은 좌우로 퍼집니다.(3) '퍼지며'란 말은 터지듯 번성하다란 뜻입니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폭발적으로 퍼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번성을 약속했습니다.(13:14-15) 하나님은 작은 것으로 큰 번성을 이룹니다. 이 번성의 약속은 이스라엘 영토의 확장, 인구폭발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의 번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황폐한 곳이 사람 살 곳으로 되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하여 이뤄집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 지역과 환경들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졌습니다.(16:19)

2.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합니다.

  예수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는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으며, 이들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16:18)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이방인 성도들이 성령으로 난 약속의 자녀임을 말합니다.(4:27-28)

  예수는 교회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파송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의 기본 계획은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는 것은 많은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오도록 장막 터를 넓게 하는 것입니다.(28:19) 예수의 제자는 땅끝까지 보냄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교회에 권능을 주셨습니다.(10:1) 예수의 권능은 황폐한 성읍을 사람 살 곳으로 만드는 것처럼, 더러운 귀신으로 황폐한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들어가게 하여 그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예수는 그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내쫓게 하셨습니다.(16:17) 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사역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3.우리는 주의 약속의 말씀을 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환난의 때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복음에 사로잡히면 찬양과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아직 자식이 없고, 출산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자녀들이 많을 줄 믿고 기뻐 외치는 믿음과 기대감이 필요합니다. 스가랴는 회복된 이스라엘이 즐거이 노래하라고 했습니다.(9:9)

  장막 터를 넓혀야 합니다. 장막 터를 넓히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막 터를 넓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실 것을 받는 준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81:10-11) 엘리사는 죽은 선지자의 아내가 생활고를 호소할 때에 그릇을 많이 준비하라고 했고,(왕하4:3) 준비한 만큼 부어졌습니다.

  황폐한 성읍을 사람 살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사역을 위해서 세상을 통치해야 하는데, 통치권 행사를 위하여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그 대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아담은 피조물의 이름을 지었습니다.(2:19) 본질을 파악하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생육 번성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장막 터를 넓히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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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3:10-12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은 자기의 사역의 결과를 보고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결과로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족하는 종은 우리가 그를 믿고 나아갈 분명한 근거가 됩니다.

1.하나님이 세우신 그의 종은 사역을 완전하게 다 이루는 분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려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합니다.(10) 여호와의 종은 속건제로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속건제란 허물에 대해 대가를 보상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5:16) 죄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허물에 대한 보상도 다 치르는 것이 속건제물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여호와의 종은 자기 영혼의 수고에 만족합니다.(11) 맡은 사역을 온전하게 이루었기 때문에 만족하며, 후회가 없습니다. 혼의 수고란 구원사역을 위하여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았음을 말합니다. 의로운 종이신 예수는 자기 혼의 수고에 만족하며,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했습니다.(17:26)

  여호와의 종은 존귀하고, 강한 자로서 탈취한 것을 나누는 승리자입니다.(12) 여호와의 종은 최후의 승리자로서 탈취한 것을 나눕니다. 그런데 오히려 은혜를 베푸는 일을 합니다. 예수는 이미 그가 이겼음을 선포하셨습니다.(16:33)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이기신 예수는 오히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8:34)

2.구원의 사역을 완수하신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속건제물로 자신을 드린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의 씨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죽은 후에 다른 씨라는 의미의 이름인 셋을 주셨고(4:25), 그 씨를 통해서 난 자손들은 하나님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4:26) 예수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생명의 씨는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께 말을 거는 사람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믿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15:5-6)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는 사탄의 정죄가 먹히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욥처럼 사탄이 주는 시험과 고난은 있어도 정죄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의 기도 속에 있습니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22:31-32)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예수는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기도해 주십니다.

3.우리는 사역을 다 이루신 예수의 구원을 받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생명의 씨로 헌신해야 합니다. 씨는 종족을 퍼뜨리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를 내어놓는 헌신이 필요합니다.(12:24-25) 예수는 구원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생명을 퍼뜨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생명의 씨앗으로 담대하게 사역했습니다.(4:29)

  의롭게 된 우리는 예수를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벧후3:18) 의롭게 된 자들은 공부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면서 예수를 깊게 체험합니다. 욥은 많은 논쟁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42:5-6)

  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우리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탄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사탄이 주는 생각을 거부하고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지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게 됩니다.(고전15:58)

  예수는 사역을 온전히 이루는 종입니다. 우리는 자기 사역에 만족하시는 예수를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잘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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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3:7-9

  세상은 보이는 힘과 권세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거룩, 공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양 같은 연약한 모 습의 종을 보내셨는데, 어린양, 그리고 털 깎이는 암양 같은 모습의 예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생명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1.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어린양과 같은 그의 종을 세우셨습니다.

  사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정결한 어린 양을 세우셨습니다. 어린 양()은 번제물, 유월절 제물이 됩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어린양을 사용했습니다.(22:8) 정결한 어린 양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지고, 그의 희생으로 사람이 살아납니다.(12:5) 어린 양은 정결 거룩함이 특징입니다.

  세상은 강력한 힘만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온순한 양을 세우셨습니다. 털 깎이는 온순한 암양(라헬)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순종입니다. 곤욕을 당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7) 예수는 대제사장 앞에서 침묵하셨고(26:63), 오직 사역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39:9)

  세상은 자기 목적을 위하여 거짓말을 쉽게 하지만 하나님은 입에 거짓이 없는 양(9)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거짓에 물든 사람은 진리를 잘 듣지 않고, 진리를 말하는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8:44) 마귀의 자녀들은 거짓에 잘 넘어가지만, 예수는 오직 진리를 말합니다.

2.어린양 예수는 그의 사역으로 우리가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예수께서 법정에서 심문과 곤욕을 당함으로 허물이 있는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우리에게 있을 심판은 넘어갔으며(12:13), 번제물이 되는 어린양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속죄함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1:4) 예수 그리스도의 곤욕은 우리의 평강과 기쁨으로 연결됩니다.

  어린양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십자가의 예수를 살아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8) 그러나 예수는 생명 자체이며,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1:4) 예수는 부활과 생명입니다.(11:25)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로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부자의 묘실에 장사지냄으로(9) 우리는 그 안에서 정죄당하지 않습니다. 사형수를 좋은 무덤에 장례 치르는 것은 그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유다 왕 여호람은 아끼는 자 없이 죽었습니다.(대하21:20)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정죄당하지 않습니다.

3.성령으로 어린 양 예수 안에서 예수를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거룩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거룩함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입는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고, 예수의 보혈로 더러움이 씻겨진 거룩한 삶입니다.(19:8-9) 세상은 세속적 힘을 추구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우리는 성령으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는 고난 중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며 사역을 시작하셨고(4:1),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기를 내놓았습니다.(9:14) 자기 생각이 앞서는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을 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신뢰하면서 그 이끄심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예수의 관용을 닮아야 합니다. 누구도 예수가 하나님 백성의 허물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8), 예수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잡으려고 왔던 대제사장의 종에게까지도 관용을 베푸셨습니다.(22:51) 성령으로 예수의 관용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과 회복을 누리는 자로서 성령으로 거룩함과 이끄심에 대한 순종과 타인을 향한 관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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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3:4-6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직분과 직책에 따라 어떤 일의 담당자가 되었다면, 그것을 효과적,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있는 질고’, ‘찔림’, ‘상함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담당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1.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의 종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모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임무를 종에게 맡겼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이 받지만(1:4), 민족, 혈통, 신분의 차이 등의 조건들로 차별받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10:13) 예수는 율법적 조건이 아니라 누구에게서든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우리의 죄악의 문제를 담당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의 고난 질고 슬픔 찔림 상함 등 모든 어려운 문제의 근원은 사람의 죄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과 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담당자입니다.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면 정죄가 없고, 그에 따른 모든 것들이 해결됩니다. (8:1-2)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담당시킨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는 아버지께 명령을 받았습니다.(12:49) 예수는 하나님의 명령과 보내심을 입고,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포했습니다.(5:41-42) 예수 외에 다른 그리스도는 없습니다.

2.사람은 잘못 된 생각으로 죄악의 담당자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지만 담당자를 찾지 못합니다. 질병의 고통, 슬픔, 매 맞음, 찔림, 상함, 채찍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좀 더 힘 있고, 많이 배우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구하고 의지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같이 왕을 구했습니다.(삼상8:5) 그러나 인간 왕은 실패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죄악을 담당한 여호와의 종을 오해합니다. 여호와의 종이 받는 고난을 보며 그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에 대해서 권선징악의 관점으로만 봅니다.(4:7) 의인의 고난을 통해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죄를 지은 자를 위하여 대신 고난당하는 원리를 모릅니다.

  죄악의 담당자 없이 내 생각대로 삽니다. ‘양 같다는 말은 그릇 행하고, 제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양의 특징은 길 잃는 것입니다.(벧전2:25) 생명의 길을 잃어버리고, 자기 길을 만들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양에 대한 선한 목자이고,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14:6)

3.우리 죄악의 담당자이신 예수께 대한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야 합니다. 예수의 능력은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미칩니다. 이기적이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큰일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모든 족속을 말씀하셨으며(12:3) 예수도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을 말씀하셨습니다.(28:19)

  나의 죄악의 담당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고, 주시는 은혜의 열매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샬롬)’가 이루어지게 하고, 우리에게 나음(라파)’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15:26)

  나의 죄악 담당자인 예수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나의 상식과 감정, 결단력으로 결정하는 내 생각에서 나온 제 길로 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자기 목자의 인도에 따라야 합니다.(10:3-4) 나의 죄악의 담당자이신 예수를 따르는 것이 모든 질고와 찔림을 해결하는 길입니다.

  나의 죄악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문제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고, 또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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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1-3

  세상은 영웅을 기다리지만, 세상의 영웅은 자기 자신도 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려고 그의 종을 보냅니다. 보내신 그 종에 대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가치관이 하나님과 다르면 이 종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1.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팔로 사람들에게 그 종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1) 하나님은 그의 종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시고, 그 종에 대해 사람들의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영접입니다.(1:11-12) 여호와의 종에 대해 지식적 신앙이면 안 됩니다. 그 종을 나의 구원자, 나의 왕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종을 우리가 볼 때 아름다움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연한 순은 연약함뿐만 아니라 무가치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바로 앞에서 모세, 골리앗 앞에 선 다윗, 아기로 태어난 예수의 성육신은 사람들이 원하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키 큰 왕을 보고 좋아했습니다.(삼상10:23-24)

  하나님은 그의 종과 함께합니다. 여호와의 종은 주 앞에서 자라납니다. ‘주 앞이란 말은 얼굴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그 종은 얼굴을 바라보는 관계입니다. 얼굴을 볼 수 있으면 불안이 없습니다.(42:11)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결론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입니다.(고전13:12)

2.사람들은 나타난 여호와의 종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없으면 영접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는 믿어야 하지만 대부분 믿음의 준비가 없습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들을 믿음이 있었습니다.(12:4) 루스드라의 장애인도 바울의 말을 믿음으로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14:8-9) 믿음의 준비가 없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인간적 가치관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종을 보며 실망합니다. 여호와의 종을 보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평가합니다. 흠모는 어떤 대상에 대한 마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른 것들을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흠모합니다.(요일2:16)

  사람은 여호와의 종을 멸시합니다.(3) 업신여기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과 얼굴을 바라보는 사이인데, 사람은 오히려 그를 외면합니다. 고난받는 종을 멸시하는 것은 자기 우월감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살찌고 윤택 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32:15)

3.여호와의 종을 흠모하며, 그를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치관을 심어주신 것입니다.(1:27-28)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세속적, 육체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면 하나님이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영원한 것들을 받지 못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의 외형적 모습은 사형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움이 나타난 것입니다. 눈이 먼 라오디게아 교회는 현대의 많은 교회의 실상을 보여줍니다.(3:17-18) 우리가 흠모하는 대상이 좀 더 영적이고 영원한 것이어야 모든 것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늘 주의 얼굴을 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라나는 여호와의 종처럼 우리도 예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외면합니다.(7:42) 세상에서 정죄와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흠모하며 그의 얼굴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주의 얼굴을 구했습니다.(27:8-9)

  하나님의 보내신 종을 영접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여호와의 종을 흠모하며, 그 앞에서 사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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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2:13-15

 

  일상의 모든 것을 스마트폰에서 검색하고 지식얻는 사람을 포노사피엔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종을 보내셨습니다. 본문은 네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 서론 부분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형통한 종입니다.

 

1.하나님은 그의 종이 형통한 종이라고 선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형통한 종이 지극히 존귀하다고 하셨습니다.(13) 권력욕과 명예욕에 빠진 자들은 존귀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종이 이루는 존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영광을 버려두시고 사람이 되고 종이 되었지만(2:7), 하나님은 그 아들을 지극히 존귀하게 하셨습니다.(2:9-10) 형통한 종은 존귀한 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놀랄 정도의 종의 상한 모습을 선포합니다.(14) 존귀한 하나님의 종은 사역의 과정에서 오히려 상한 모습을 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 구원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27:41-42) 하나님의 종이 사람의 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이 사람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15)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종의 사역을 보고 놀라고, 왕들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봉합니다. 사랑과 희생을 통한 종의 사역을 타락한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7:3-4)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통한 종으로 사역하셨습니다.

  ‘형통은 숙고하고, 주의를 집중하여 깨닫는다는 말입니다.(41:20)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불완전합니다. 여호와의 종은 구원의 대상을 숙고하고, 집중합니다. 예수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숙고하고 그들이 목자 잃은 양과 같음을 아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9:36) 이 지혜로 예수는 양을 위한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형통은 통찰, 이해하다라는 말입니다. 통찰력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그의 명철로 양을 먹입니다.(3:15) 통찰력을 가진 야곱은 그 손을 엇바꾸어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어 축복했습니다.(48:14)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려고 하셨는데 이것이 그의 형통함입니다.

 

  ‘형통은 성공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역을 지혜롭게 행하여 성공적으로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다윗은 형통했습니다.(삼상18:14) 예수의 형통한 사역은 많은 사람이 놀라고, 입을 봉하게 합니다. 창조주가 죄인을 위해 죽는 십자가는 사람이 생각해내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 성공하셨습니다.

 

3.우리는 형통한 하나님의 종 예수와 함께하는 형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포 된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형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아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를 우리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대로 믿고 받아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말씀을 신뢰하기를 강조했습니다.(30:15-16)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이 형통한 사람이 됩니다.

 

  고난받는 종 예수를 숙고하고, 이해하며 형통한 사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를 숙고하는 자가 형통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항변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고난과 희생, 죽음을 통한 구원사역이란 전체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14:27)

 

  감사함으로 예수의 형통함을 누려야 합니다. 맥추절의 다른 이름은 칠칠절 오순절입니다. 예수는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놀라고 입을 봉하지만, 주의 백성은 은혜를 알고 감사로 삽니다.(34:22, 24), 감사의 삶은 완전한 삶이고, 형통함을 누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통한 종에 대해 집중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예수를 아는 사람이 형통한 사람이 되고, 형통한 사역을 하고, 그의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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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2:7-12

 

  지금은 언컨택트(uncontact)라는 말이 화두입니다. 비대면, 비접촉의 시대를 살게 된 우리는 바벨론에서 떠나야 할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떠나야 할 곳을 떠나(uncontact)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해야(contact) 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떠나도록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으로 돌아옵니다.(8)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이 가득할 때 그곳을 떠났습니다. 성전에서 성읍으로, 다시 성읍 동쪽 산으로 떠나셨습니다.(11:23) 그러나 그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43:4-5) 그의 백성들이 돌아와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시온으로 돌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습니다.(10) 열방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그의 거룩하심을 나타냅니다. 고레스를 통하여 천하에 공포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팔은 더럽고 부정한 것을 멸하는 능력의 팔입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의 결과로 열방들은 하나님의 큰일 하심을 듣게 되었습니다.(2: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길에 그 앞에서 행하고, 뒤에서 호위합니다.(12)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떠나는 길에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호위로 백성은 의를 앞세우고 살며, 그 결과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호위는 의로움과 영광으로 이루어집니다.(58:8)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에스라는 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8:31)

 

2.예수는 하나님의 백성의 떠남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그 백성이 있는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세상 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아 나아가지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로 오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돌아오신 것 같이 예수는 구원받을 자가 있는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요일3:8)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는 거룩한 팔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11:20)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은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지 못했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거룩한 팔을 드러내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권세 있는 예수를 알게되었습니다.(1:27)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의 호위가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의 의로움과 영광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로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고후5:21) 또 주의 영은 지금도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고후3:18) 예수의 십자가로 주신 의로움과 영광이 우리를 호위함으로 평안하고 안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3.구원을 받은 우리는 떠나는 삶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7-8) 하나님의 백성은 이 파수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파수꾼의 신호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자기 책임입니다.(3:19) 스가랴 선지자는 회복되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도피하라고 외쳤습니다.(2:6-7)

 

  떠날 곳을 떠나야 합니다. 죄인이 당하는 저주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것은 지리적 문제가 아니라 내 속의 죄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4:4, 대하32:12, 11:19) 탕자처럼 용서와 회복의 자리로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듯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권세를 벗어나고, 두려움을 떠나 담대함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앞뒤에서 호위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을 알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의롭게 하거나 영광스럽게 하지 못해도 예수는 우리를 의롭고 영광스럽게 합니다.(8:30) 사도 바울은 자기 직분의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역했습니다.(고후6:9-10)

 

  아직 죄의 권세와 세상이 주는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에서 구별된 삶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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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2:1-6

 

  하나님께서 깨어나기를 기도한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 응답을 주시며 네 힘을 낼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구원받은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방법으로서 삶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1.하나님은 깨어난 시온이 스스로 힘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1) 옷은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로에서 돌아온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십니다.(3:4) 아름다운 옷이란 것은 겉모습의 문제가 아니라 거룩함이 있는 옷입니다. 아름다운 옷이란 제사장의 거룩함과 사역이 있는 옷입니다.(28:2)

 

  티끌을 털어버려야 합니다.(2) 포로 된 이스라엘은 티끌에 앉으며, 티끌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상황입니다. 티끌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은 슬픔과 탄식의 표현입니다. 멸망하는 바벨론에게 티끌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47:1) 이스라엘은 티끌을 털어버리고 비천한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2)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노예가 된 이스라엘 목의 멍에를 꺾어주셨습니다. (26:13)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때 애굽의 노예였던 상황과 애굽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사람이 할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목에 있는 줄을 풀어야 합니다.

 

2.예수는 그의 백성이 스스로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는 구원과 사명의 옷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갈릴리 어부로 살던 시몬에게 게바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1:42) 또다시 그를 부르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사명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1:17) 예수께서 입혀주신 새로운 이 옷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옷입니다.

 

  부활의 예수는 사람과 만남으로 그가 자기의 과거의 것을 털어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핍박자 사울을 불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만난 바울은 자신이 가진 과거에 자랑스러운 것을 다 털어버렸습니다. (3:8) 예수를 바르게 만나면 인간적 장점과 같은 다른 것들이 다 티끌과 같이 보입니다.

 

  예수는 사람에게 있는 멍에를 풀어주십니다. 간음하다가 사람들에게 정죄를 당하고 끌려온 여자를 예수는 정죄하지 않았습니다.(8:11) 그 여자에게 정죄의 멍에를 벗기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셨습니다.(5:34) 죄책감, 두려움, 미안함 같은 멍에를 벗겨 주셨습니다.

 

3.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자로서 스스로 힘을 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옷은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그 입은 옷에 맞는 삶을 살게 합니다. 야곱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형 에서의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구원을 받은 자(3)로서 구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13:14)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3:10)

 

  세상의 영향력을 털어버려야 합니다. 애굽과 앗수르의 압박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아닙니다.(4-5) 세상의 거대하게 보이는 힘들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버려야 합니다. 불신의 정탐꾼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것은(14:4) 두려움과 낙망이란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진리로 말미암은 자유를 누리며, 사랑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예수께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보내신 후 가르친 결론은 자유입니다. 자유가 진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8:31-32) ‘내가 여기있다’(6)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진리의 예수를 알고 사랑의 멍에를 메고 형제를 섬겨야 합니다.(5:13)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스스로 힘을 내어 구원의 은혜를 잘 누리기를 원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는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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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17-23

 

  선지자가 하나님께 깨소서!”라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깰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노의 잔을 마시고, 절망과 낙망의 잠을 자는 데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그 분노의 잔은 대적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1.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십니다.(22)

  하나님은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을 깨우고 일으킵니다.(17) 분노의 잔을 마시면 분노 속에 있는 고난에 빠져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잠자는 것과 같게 됩니다. 다윗은 그의 고통이 하나님께서 마시게 한 잔임을 고백했습니다.(60:1,3) 그리고 근심이 사망의 잠이 되지 않기를 구했습니다.(13:3) 깨어 있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게 인도할 자를 다시 보내줍니다.(18) 하나님이 주신 분노의 잔에는 그들의 구원자를 없애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의 인도자를 주십니다. 바사 왕 고레스, 스룹바벨, 느헤미야, 에스라 같은 사람을 보내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시는 목자임을 고백했습니다.(23: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마신 분노의 잔을 대적이 마시게 합니다.(22-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셔도 회복이 있지만, 대적들은 분노의 잔을 마시면 영원히 멸망입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계의 제국들은 다 망했습니다.(92:7)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는 심판이 아니라 아들을 향한 징계일 뿐입니다.(12:7)

 

2.예수는 그의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주신 분노의 잔을 그의 백성을 대신하여 마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분노의 잔입니다.(10:38) 예수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깨어 있는 상태로 마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14:36) 예수께서 우리 대신 마신 그 잔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의 인도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9:36) 그리고 예수는 자신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으며(10:14-15), 또 그의 인도가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 떼 즉 이방인까지도 인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0:16)

 

  예수는 자기 백성의 원수를 갚아줍니다. 예수는 일곱 번째 대접을 부을 때 교회의 원수에 대해 완전히 승리합니다. 교회의 원수는 큰 음녀이고(17:2), 음녀는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습니다.(17:6) 어린양 예수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으로서 이 음녀를 이깁니다.(17:14) 모든 승리는 오직 주 예수께 있습니다.

 

3.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하나님께 대해 깨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온전하지도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대적이 분노의 잔을 마시게 합니다. 자기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이 은혜의 하나님에 대해 깨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고전15:10)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께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이 되시는 예수의 인도하심으로 밝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깨달았으며, 우리가 깨어 있기를 강조합니다.(5:14) 예수의 인도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게 하는 최고의 인도입니다.(벧전3:18)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실 원수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밟고 넘어가던 힘 있는 대적들이 최후에 하나님의 심판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10:28)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예수께서 멸할 것입니다.(고전15:26) 멸망 당할 사망에 대해서 깨어 있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술 취함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5:18)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하나님과 인도자 예수와 또 대적의 멸망을 알고 더욱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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