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1-19
부활하신 예수는 예수를 믿는 자를 죽이려고 날뛰는 사울에게 역사하여 그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자기 힘으로 강했던 사울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방향에서 강건한 사람이 됩니다. 성령으로 강건해지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1.사울은 인간적 열정으로 움직였습니다.
사울은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사울은 율법주의자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았으며, 예수를 믿는 자를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율법주의자로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죽이려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육체적인 강함으로 위협과 살기를 보였습니다.
사울은 율법에 정통한 자로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사울은 누군가 그에게 말을 전해주지 않으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고전9:26) 열심은 있지만 바른 삶은 없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만나고 그의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육신적 눈도 멀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몰라보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잘 했지만 자기를 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오신 예수를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요6:35-36) 눈이 감겨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예수는 핍박자 사울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는 핍박하는 사울을 만나 주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믿는 자를 죽이려고 활동하는 상황에서 예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듣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고 그가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요6:28-29)
예수는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주셨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무리를 죽이려고 갔지만 예수는 오히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게 하셨습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는 그들을 서로 하나로 묶는 것이며, 영적 흐름이 있게 하는 일입니다. 내 속의 미움을 버리고, 오히려 타인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로 사울은 성령이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울은 영과 육의 눈이 열려지고, 세례를 받고 또 음식을 먹으므로 강건해졌습니다. 이전까지는 육신적 열정이었지만 성령 충만한 사울은 그를 부르신 분이 주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강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강건함은 그가 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3.성령으로 강건케 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예수를 만날 때 나의 감정과 나의 계획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울에게 있었던 위협과 살기는 자기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가 된 사울은 예수를 만나므로 그동안 자기가 신뢰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3:8)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알게 되면 지금까지 내가 신뢰하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형제를 만날 때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은 일방적이 아니라‘ 피차사랑’입니다. 서로 하나가 된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음이 분명해야 합니다.(요13:34-35) 사랑하고 서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대로부터 오는 것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나의 것을 그에게 흘려보내는 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임하신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자기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태입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함께하심이 없으면 지난 회개 상태가 다시 무효가 되어버립니다.(마12:44-45) 성령의 함께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생각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변화, 회복으로 강건케 되는 마지막 결론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완전한 성령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강건하게 되어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