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2:18-24
우리가 바라는 소망에서도 문법적인 시제가 중요합니다. 소망이 과거, 미래, 현재에서 어떤 시제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이미 이른 곳은 시내 산이 아니라 시온 산입니다. ‘이른 곳’이란 말의 시제는 완료형입니다.
1.성도들이 이른 곳은 과거의 시내 산이 아닙니다.
시내 산은 지상의 특정한 장소입니다. 시내산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고, 기억할 만한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와 위대한 조상의 흔적이 있고, 율법이 선포 된 곳입니다. 과거에 매인 유대인들은 예배에서 특정한 장소를 고집합니다.(요4:20) 과거의 중요한 흔적에만 매여 있으면 참 된 소망에 이르지 못합니다.
시내 산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셨지만 사람의 눈에 뜨이게 하지 않았습니다. 구름, 연기, 불, 번개, 우레, 나팔소리, 진동 같은 표징만 주셨습니다. 시내 산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그 현상만 볼 뿐입니다. 특별한 은혜를 입은 모세도 하나님의 등만 보았습니다.(출33:22-23)
시내 산에는 백성들이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백성들은 사람과 짐승이 그곳에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출20:18-19)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어떤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때 생깁니다. 육체를 입은 사람은 시내 산에 강림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2.우리가 현재에 이미 이른 곳은 시온 산입니다.
‘우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장차 시온 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시온 산에 구원의 기촛돌을 두셨습니다.(사28:16) 즉 시온 산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설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미 하늘의 예루살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른 모임’은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 된 장자들의 모임, 교회,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천사, 이름들이 기록 된 장자, 온전한 의인의 영과 함께합니다. 많은 잡족이 이스라엘과 함께 애굽에서 나왔지만 이스라엘 지파에 속한 자만 계수됩니다.(민1:2-3)” 우리는 하늘의 모임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가 이른 특권’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의 뿌린 피로 이루어진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대상이 아니며,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로 말미암아 언약백성이 되었으며, 뿌린 피로 이미 정결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용서받았으며, 죄책감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8:2)
3.우리는 소망의 미래를 현재에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은 수고와 슬픔, 고통과 환난이 계속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하늘의 예루살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늘에 속한 자임을 믿습니다.(빌3:20) 하늘의 사람은 보물을 하늘에 쌓습니다.(마6:19-21) 우리는 항상 하늘의 것에 관심과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현재에 매여 살지만 미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천군천사, 의인들의 영과 더불어 사는 것이 미래의 일이지만 현재에 누리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소망의 사람은 하늘의 본향을 찾는 사람입니다.(히11:13-14)
죄인의 모습이 있지만 의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육체를 입은 사람은 세상에서 여전히 실수하며, 죄를 짓습니다.(롬7:24-25)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소망을 현실로 삼는 사람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해졌음을 확신합니다.(롬8:1) 예수의 피의 효력은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소망은 과거의 기억,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을 현재의 시제로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 소망을 이루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