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을 존귀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속(救贖)하여 그들이 두려움 없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알고, 풍성하게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구속함의 시작은 용서와 용납입니다. “지금”이란 단어는 문법적으로 “그러나 지금”이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귀하게 하심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42:18-25) 하나님은 ‘그러나 지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속하십니다. 용서와 용납으로 구속합니다.(시106:43-44)
구속의 방법은 일방적 사랑이 있는 대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속하려고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습니다.(3)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까지 내어주는 구원의 원리가 됩니다. 속량물이란 속죄금, 몸값입니다. 속죄금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출21:30) 대속은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결과는 구속받은 자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1,5) 하나님은 구속하신 자를 물과 불에서 건지시고(2), 그 백성을 사로잡은 자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5-6) 하나님의 구속을 입는 사람은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수1:9) 하나님은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늘 동행하며 보호하십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용서로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군병들이 용서받기를 구했습니다.(눅23:34) 구속이란 용서에서 시작됩니다. 예수의 사역은 죄인들을 향한 끝없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죄를 덮어주고, 채무를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구속은 누군가 대신 속량을 하고 값을 치러주는 일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마20:28) 남을 위한 대속은 완전한 자기희생입니다. 나오미의 집안을 대속하는 보아스에게는 인간적 유익은 없습니다. 예수의 대속의 효력은 온 세상에 미칩니다.(요일2:2)
예수는 제자들이 두려움이 없도록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의 보냄을 받는 제자들은 많은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으로 선포하셨고(요16:33),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3.우리는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자로서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 받은 자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요일4:17)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는 힘입니다. (요일4:18)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이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긴 삶을 살게 됩니다.
대속의 제물과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속물이 되신 예수의 그 대속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듯이(레1:4) 제물 되신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삽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고 강조했습니다.(롬6:11)
하나님이 오게 하신 곳에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동서남북, 땅 끝에서 불러 모읍니다.(5-6)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슥2:6-7)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예배합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초청을 거절하면 안 됩니다.(눅14:18)
하나님의 구속을 입은 자는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는 두려움이 없이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