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공직자들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은 여자의 헌신은 주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1.하나님께 헌신하지만 온전하지 않은 헌신도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드리는 헌신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 결과로 주어질 복을 기대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분명한 대가도 있습니다.(말3:10) 아예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없는 사람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그의 헌신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형식일 뿐입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헌신이 있습니다. 헌신의 결과로 더 주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자기의 드림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결국 외식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마6:2)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나 헌물을 잘 드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헌신으로 자기를 과시합니다.
자기만족의 헌신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남에게 과시는 하지 않지만 자기 스스로 칭찬하고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헌신의 대상을 위하여 일하기는 하지만 그 마음에 자기의 만족이 살아 있다면 아직 온전한 헌신이 아닙니다.
2.예수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를 드린 헌신은 주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여자의 헌신은 예수께 집중하는 헌신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모시고 다니지만 그 향유의 금액 즉 돈을 생각하며, 그런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을 들먹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에게 기름을 붓는 여인은 이것저것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죽으실 예수께 모든 것을 집중합니다.
여자의 헌신은 가진 것을 쏟아 붓는 헌신입니다. 여인이 드린 나드 향유는 그 가치가 300데나리온 즉 노동자 1년 치 연봉이나 되지만 여인은 예수를 위하여 그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헌금을 드릴 때 인색함, 억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고후9:7)
여자는 헌신의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를 위하여 그 머리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것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의 기회였습니다. 사역적 헌신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3.오직 예수를 위한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집중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한 마음으로 우리의 헌신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약4:8) “헌신하는 나”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향한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헌신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나누어지면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헌신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습관적이거나, 형식적이거나, 대충 하는 것으로 주를 섬기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주를 향한 삶에는 우리의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하는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헌신에는 힘과 정성을 다하는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신6:5)
헌신의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사역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할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그 때에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에게 집중, 열정, 타이밍의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주님께 인정을 받는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