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보다는 오히려 이런 제자의 배반이 더욱 아픈 일입니다.
1.가룟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눅22:3). 마귀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요13:2) 가룟 유다는 그의 속에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타락과 배반의 시작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제자로서 귀신을 쫓아본 경험도 있지만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 예수를 배반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의논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가진 가룟 유다의 행동은 악인의 꾀를 좇으며,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행동입니다. 가룟 유다는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의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에게서 돈을 받은 후 예수를 넘길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에 피동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이제는 그 악한 일을 하는 주동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고, 죄를 지어도 감각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2.가룟유다는 악한 일을 하는 사역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 속에서 악역을 담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과정에서 그는 예수를 배반하고 팔아버리는 악역을 담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악한 날에 적당하게 허락하셨습니다.(잠16:4) 그러나 이들이 악역을 담당한 것은 자기 스스로 팔린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메시아를 방해하는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이 땅에 임하실 메시야가 태어나지 않도록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러한 사탄의 전략 속에서 사탄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자신을 사탄의 도구가 되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를 배반하고 망하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를 배반하는 사람의 결과에 대한 본이 되었습니다. 말세에는 분명히 신앙에서 타락하는 자들이 있게 됩니다.(히6:5-6) 그러므로 이와 같이 신앙에서 타락한 사람은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우리는 주를 배반하지 않는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적 기대감으로 쉽게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가룟 유다의 실패의 출발은 예수에게서 이제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실망이었습니다. 나의 기대감만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실망치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망하는 자들의 특징 속에는 탐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탐심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강조합니다.(골3:5) 탐심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고 방탕에 방임하면 안 됩니다. 자기의 영을 관리하지 않으면 악하고 더러운 영이 들어오고, 마음에는 두려움과 의심이 자리 잡고, 육체에는 질병이 들어옵니다. 스스로를 완전히 지킬 수는 없지만 스스로 포기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악한 일에 쓰임을 받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선한 일에 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