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5-12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합니다. 예수를 재판하게 된 헤롯은 자기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예수를 업신여기며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예수는 멸시를 당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1.헤롯은 예수를 구경하는 자로서 재판합니다.
헤롯은 권력을 위하여 남을 죽이는 사람입니다. 헤롯은 다른 권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 헤롯은 예수의 탄생 시에 예루살렘의 어린 아이를 학살하고, 그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요한을 죽였고, 헤롯 아그립바1세는 야고보를 죽였으며(행12:),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사도 바울을 심문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행26:)
헤롯은 진리에 대한 구경꾼이었습니다. 헤롯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가 행하신 이적을 구경하고자 했습니다. 예수의 진리, 생명, 복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헤롯은 세속적 힘은 있지만 삶의 가치관은 전혀 바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헤롯은 예수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며 되돌려 보냅니다. 헤롯이 예수에게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되 돌려보낸 것은 예수를 아무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예수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요17:3) 세상에서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십자가의 희생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깁니다.(고전1:23)
2.예수는 헤롯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헤롯의 기대하는 바를 채워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헤롯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위하여 변명하지 않았으며, 자기를 재판하는 자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예수는 오히려 재판장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는 실망한 헤롯에게 업신여김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는 그를 업신여기고 희롱하는 사람들의 멸시를 그대로 다 받으셨습니다.(사53:3) 업신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땅에 있는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업신여김을 당하셨습니다.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히10:33)
죄 없는 예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넘겨졌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위한 어떤 주도적인 일도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앞에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으셨습니다. 예수는 사람의 법으로 정죄 당하지 않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죽음의 자리로 자기를 내려 놓으셨고 사람들이 하는 일에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맡겼습니다.
3.우리는 예수 안에서 세상의 멸시를 이긴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구경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헤롯처럼 구경만 하려다가 소득 없이 망하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본 많은 무리들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 이야기를 할 때 다 물러 가버렸습니다. 생명과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대상입니다.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어도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은 보여주지 않는 예수의 태도처럼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었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고전4:9)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끄트머리에 존재해도 진리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사역은 하늘의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벧전1:12) 비록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할지라도 복음을 위하는 삶, 사랑으로 희생하는 십자가의 삶은 천사들도 흠모하며 살펴보기를 원하는 일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흠모할만한 일들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멸시를 당하신 예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천사들도 보기를 원하는 사역에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