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5:6-13
대제사장들은 명절을 당하여 죄수 한 사람을 사면하는 일에서 예수를 버리고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1.대제사장은 무리를 충동하여 예수를 버리고 죄수 바라바를 택했습니다.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자를 시기하는 자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넘긴 것이 그들의 시기심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자기가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줄 알았는데 예수에게 모든 민심이 쏠리는 것을 보고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많은 죄의 근본이 시기심입니다. 가인, 요셉의 형들 모두 시기심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자기의 기득권에 대한 탐욕으로 새로운 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을 놓아줄 것인가를 물었는데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탐심의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행합니다. 나봇을 죽이는 아합 왕처럼 탐심의 사람은 자기의 것만 챙기려고 하여 가장 귀중한 것을 버립니다.
대제사장이란 직분을 가진 그들은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유대인 사회에서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온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습니다.(요1:11-12) 대제사장이란 직분과 그 이름의 명예심에 매여 있는 그들은 강도 바라바는 자기들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에 그를 살려주라고 말합니다.
2.예수는 건축자들에게서 버림받은 돌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일합니다.
예수는 생명의 돌이 되었습니다.(벧전2:4) 예수는 보배로운 산 돌입니다. 자기기준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예수를 버립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자기중심으로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명의 떡, 하늘로서 내려 온 떡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요6:41)
예수는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벧전2:6) 모든 건물은 이 모퉁이 돌을 기준으로 건물의 방향과 크기와 규모가 정해집니다. 모퉁이 돌을 벗어난 기둥들은 건물과 상관이 없습니다. 인생의 기초가 되는 예수가 아닌 다른 것으로 기초를 삼을 때 실패하게 됩니다. 다른 것으로 인생의 기로로 삼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머릿돌이 되었습니다.(벧전2:7) 머릿돌은 그 건물이 어떠한 건물인지를 드러내는 건물의 명패입니다. 사명을 회피하는 요나는 풍랑으로 할 수 없이 자기를 들어내었지만(욘1:9) 나면서 일어서 본 적이 없는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고치고 재판 받는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드러내었습니다.(행4:10-12)
3.우리는 바른 선택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림받은 돌은 외형적으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무시하고 내버려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입니다.(사53:2)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마8장의 백부장이나 막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를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시기와 탐심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눈이 밝다는 것은 그 눈에 아무 것도 끼이지 않은 것입니다.(마5:8)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청결함이란 그 마음에 시기와 질투 탐욕 같은 것들을 다 씻어버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주를 보는 사람입니다.(히12:14)
설계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건축자가 건물 주인의 의도가 아니라 자기의 뜻에 따라 건물을 지으면 주인이 가진 설계도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에 정확한 설계도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건축자들은 인간들의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질 줄 알고 있기에 예수를 버린 것입니다.
세상 것을 택하려고 생명의 돌이 되는 예수를 버리면 안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버린 것에 실망하지 말고, 우리는 예수를 선택하고 예수와 함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