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9:16-22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언약은 마치 유언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유언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됩니다. 즉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언은 효력이 있게 되었습니다.
1.첫 언약은 언약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할례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효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며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창17:14) 그 이후 이스라엘은 할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상태에서도 할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효력 없는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합니다.(렘4:4)
십계명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는 효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언약을 주시면서 은혜를 약속했습니다.(출20:6)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의 삶은 언약궤와 멀었습니다.(삼상7:2)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이기까지 적어도 70년 동안 돌비가 있는 언약궤를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성전과 제사 언약은 사람을 정결케 하는 효력이 없었습니다. 첫 언약에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물로 몸을 씻어 정결 의식을 행했습니다. 광야에서 전쟁을 치룬 후 진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도 정결의식을 행했습니다.(민31:24) 그러나 정결의식으로서는 사람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만족도 없습니다.(사1:11)
2.예수는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효력 있게 합니다.
예수는 죽음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만듭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세례 받는 것으로 말합니다.(눅12:50)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자가 됩니다.(롬6:4)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예수는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지만 사람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른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들에게 적용되게 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화목의 관계로 회복하게 합니다.(롬5:10)
예수는 죽음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이룹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력화 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골2:15)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승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더러움의 근원이 되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가 참된 정결함을 얻게 합니다.
3.예수께서 효력이 있게 하신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효력이 없는 것들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율례와 전통에 매여 있는 것이든지 또는 사람을 능히 구원하지 못하는 세상의 신들이나 우상에 매여 있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사45:20) 지금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효력 없는 것을 붙잡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효력 있는 언약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글자로 기록해 놓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렘31:33) 교회에서 예식으로서 물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언약이 없이 세례교인이란 이름으로 교회를 다니기만 하는 신자가 되면 안 됩니다.
효력 있는 언약을 가진 자로서 언약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13:34) 예수의 새 계명에는 예수의 사랑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 계명은 명령입니다. 죄인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이 예수의 사랑인데(요10:15), 이런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효력 있게 만든 것이 예수의 죽음입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효력 있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언약대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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