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23:1-7
세상의 것은 일시적으로 누구에겐가 기쁨을 주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하나님은 두로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주시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1.하나님의 경고를 듣는 두로의 황무함은 주변에게 큰 슬픔을 줍니다.
다시스의 배들에게 슬픔을 줍니다.(1) 항구도시국가인 ‘두로’의 어원적 의미는 ‘돌, 반석’입니다. 반석같이 든든한 두로는 바다의 배들에게 평안을 주던 항구였지만 황무하게 됩니다. 두로는 레바논 백향목을 솔로몬에게 공급할 정도로 부유했기에 스스로 하나님처럼 생각했었습니다.(겔28:2) 하나님은 이 반석을 깨뜨립니다.
시돈 상인에게 부끄러움을 줍니다.(4) 바다의 요새 같은 두로는 시돈 상인들에게 부요함을 주었습니다.(2) 그러나 그들은 어머니같이 모든 것을 공급했던 두로에게서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욥에게 부끄러움을 줍니다.(욥6:15, 20) 진정한 요새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애굽에게 고통을 줍니다.(5) 애굽은 두로의 황무한 소식을 듣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동안 애굽은 두로를 통해서 물질적 유익을 얻었는데 이제 그 소망이 없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잠13:12) 그보다 아예 소망이 끊어진다는 것은 더욱 큰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2.이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에게는 황무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사람들에게 쉼을 줍니다. 항구가 배들에게 쉼터요 기쁨을 주는 곳인 것처럼 예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쉼을 주십니다.(마11:28) 예수는 자신의 죽음의 상황 앞에서도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으셨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요15:11) 예수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든든한 반석이 됩니다.
스스로 낮아져서 사람이 되신 예수는 사람을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셨으며 스스로 연약해지셔서 사람을 부요하게 하셨습니다.(고후8:9)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요함은 물질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의 부요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약2:5) 이것이 참 된 부요함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는 평강을 줍니다. 외적에게 져서 무너지는 두로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만, 예수는 세상을 이기는 분으로서 평강을 줍니다.(요16:33) 고통 없는 평안은 오직 예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할 그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약속까지 하셨습니다.(요14:13-14)
3.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교회로서 세상에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든든한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두로를 의지했던 다시스의 배들처럼 그들이 의지할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석 같이 든든히 서 있어야 하는데 그 견고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벧전5:10)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고, 은혜를 힘입어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요새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시돈의 상인들처럼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교회는 그것을 공급하여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는 영이 죽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에게 생명이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애굽은 두로의 소식 때문에 고통당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전할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과(눅2:10) 또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소식입니다.(요일1:5)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정한 기쁨을 얻는 일을 세상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통해서 얻고 누려야 하고, 또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나누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