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35-48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셨으나 그 사역의 마지막은 예루살렘에서 완성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종려주일은 어린 나귀를 타고 찬송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를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1.예수께서 찾아오신 예루살렘 성은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은 호산나 찬송을 가로막았습니다.(39절)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주면서 그 이름을 두실 곳을 구별하셨는데(신12:1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고, 성전과 예배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예수를 향한 호산나 찬송을 막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46절) 예레미야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은 도둑의 소굴이 되었습니다.(렘7:11)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란 것은 종교적 기득권을 가진 제사장들의 타락을 말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타락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이 자기 배만 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자기들의 죄를 숨기려고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47절) 예루살렘은 자기 앞에 다가오는 멸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죽음은 알지 못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예수만 죽이면 평안할 줄 착각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고(42절), ‘하나님의 보살핌’을 몰랐습니다.(44절)
2.예수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슥9:9) 예수의 모든 사역은 오직 말씀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아버지의 뜻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신 것입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과 함께한 행동입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바로 그 죄인들을 구하려고 그들 중으로 들어왔습니다.(빌2:6-7) 예수는 사람과 함께하려고 땅으로 내려 오셨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자기포기의 행동입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로 들어온다는 것은 자기의 평강을 포기한 것입니다. 자기희생입니다. 예수는 이미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과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마16:21) 목숨을 내어 놓고 자기에게 닥칠 위험을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3.예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시는 예수의 걸음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았습니다.(43-44절) 그러나 예루살렘은 ‘평화에 관한 일’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권고하심 즉 보살핌을 알았습니다.(창50:25) 하나님의 통치를 아는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알고, 가야 할 길을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게 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묵묵히 그의 길을 가셨습니다.(사53:7) 예수의 제자들도 주님께서 가게 하신 길을 묵묵히 가야 합니다. 나의 살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게 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린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딤후4:7)
하나님이 사랑하게 하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 된 우리가 다가가야 할 대상이 예루살렘처럼 나를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고 할지라도 그들을 품어야 하고,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욘4:11)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알고도 가신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와 같은 마음으로 가야 할 길을 충성스럽게 가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