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3:12-22
같은 비전으로 동업할 때 나의 이익만 생각하면 동업은 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혼자가 아니라 동역해야 합니다.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한 사람들은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기까지 앞장서서 그 사역을 형제들과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지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사역에 선봉이 되라고 하셨습니다.(18절) 선봉에 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에서의 선봉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 복음의 씨를 뿌리고 심는 사도 바울과 같습니다.(고전3:6) 이런 사람에게는 기쁨의 수확이 약속되어 있습니다.(시126:6)
처자와 가축은 동편 땅에 머무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19절) 식구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무엇보다 공동체 전체사역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전체사역을 위하여 버릴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막10:29-30)
정복사역을 끝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20절) 요단 동편 땅을 얻은 사람들은 형제들이 기업을 얻고 안식한 후에 각자의 기업으로 돌아갑니다. 사역을 끝까지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구원사역을 담당하신 예수는 사역에 대한 책임을 완수하셨습니다.(요19:30) 전체 사역을 끝까지 완수한 사람이 누릴 것을 누리게 됩니다.
2.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단 동편 기업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자기 평안에 머무르지 말고 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지만 구원의 일인 예수의 십자가를 부정할 때 책망을 받습니다.(마16:23) 육신적 평안만 추구하며,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형제를 강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함께 움직일 때와는 달리 가나안에 흩어져서 정착한 후에는 다른 형제와 거리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몸에는 각 지체가 있습니다.(고전12:25-27) 이스라엘은 형제들을 기억하고, 힘을 함께 하고, 서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얻을 기업과 누릴 안식을 기대하게 합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기업과 안식이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는 안식이 최종적인 복입니다. 문자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와 함께해야 합니다.(마12:8)
3.형제와 함께 동역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형제들보다 앞서 대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선봉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선봉에 서는 것은 대적 앞에 제일 먼저 나서는 것입니다. 담대함과 희생의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 앞에 숨어 있지만, 요나단은 단 두 사람으로 선봉에 섰습니다.(삼상14:6) 형제들을 위하는 마음, 대적에 대한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사역이나 공동체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노력으로 이룬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말고, 해야 할 크고 온전한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리고성의 정복에서 아간은 자기 욕심만 가지고, 이스라엘 전체의 사역을 보지 못했습니다.(수7:21) 개인의 욕심만 생각하면 전체가 함께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사역을 끝까지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과 함께 사역을 시작한 요한은 도중에 돌아갔으며(행13:13),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맡은 사역을 책임지려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결혼했던 엘리멜렉의 집을 책임졌습니다.(룻3:13) 사랑, 헌신, 희생으로 책임감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완성이 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사역에서의 동역입니다. 같은 비전으로 서로 희생하며, 사역의 결과를 같이 나눌 때 사역의 동역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