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4:22-29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십일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기복신앙으로 복을 받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드림과 나눔과 세움을 이루는 과정이고 방법이 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십일조에 대해 명령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23) 하나님 경외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경외를 배우지 못했습니다.(삼상2:12) 하나님 경외를 배우는 길은 말씀과(신17:19)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 같은 믿음의 행동을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권속들이 십일조를 함께 먹는 즐거움이 있게 하셨습니다.(26) 이스라엘 은 하나의 권속입니다. 권속이란 한 집안의 식구들 종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십일조를 드림은 하나님을 향하지만 실제로는 성도 즉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고전16:1) 교회에는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나누는 즐거움이 있습니다.(행2:44-47)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7) 이스라엘을 위하여 섬기는 사역을 하는 레위인들도 육체적인 사람이기에 물질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드린 십일조로 레위인의 필요를 잘 채울 때 사역은 중단 없이 잘 이루어집니다.(느10:37) 레위인을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잘 되게 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역을 잘 하도록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토지와 소산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땅을 얻고, 결실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 없으면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창13:17)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게 하며, 또 결실이 있게 합니다.(레26:4)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함께 나눌 권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혼자 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함께하는 권속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엡2:19) 권속이란 성격과 기질이 다르고, 삶의 능력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함께 은혜를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역을 하는 레위인들을 주셨습니다. 레위인들은 가나안 정복 후에는 여러 지파들 속에 들어가서 살며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레위인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그들을 통한 사역이 지속되게 하는 것입니다.(민18:21) 땅의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의 물질적인 필요가 공급되지 않으면 그 사역도 중지 됩니다.(느13:10)
3.사역자는 십일조를 통하여 드림과 나눔과 세움의 사역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를 배워야 합니다. 드릴 때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분명해야 합니다. 문자적, 율법적으로만 드리면 안 됩니다. 바리새인은 십일조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었습니다.(눅18:12) 사역자들이 말씀과 삶의 실천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는 완전한 십일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마23:23)
권속들과 성령으로 함께 나눔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형제들과의 나눔은 단순한 구제사역이 아닙니다. 권속들은 서로 함께 식탁을 같이 하려면 상대를 이해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누는 상대를 향하여 성령으로 서로 용납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어야 합니다.(롬14:17)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세워주어 사역을 완전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사역을 이룰 때 그를 잘 세워주어야 합니다. 엘리야에게 양식을 공급한 사르밧 과부, 엘리사를 도운 수넴 여인, 사도 바울의 후원자 뵈뵈 같은 여자들은 사역자를 잘 세웠습니다.(롬16:1) 사람을 잘 세워줄 때 사역도 잘 세워집니다.
십일조를 통한 드림과 나눔과 세움을 영적이고, 온전한 의미가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 이웃을 향한 사랑, 사역자를 세우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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