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30:1-7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를 아는 자는 예수께 “호산나!” 찬양을 하고 영접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사야 당시의 유다는 세상에서 힘 있다고 생각되는 애굽을 의지했는데 결과는 수치일 뿐입니다.
1.유다의 계교는 죄를 더하는 것이 되고,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유다의 계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았습니다. 사신을 광야를 통해서 애굽으로 보내려는 것이 사람의 계교입니다.(6) 광야로 가는 모습은 출애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꾸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지 말라고 이미 경고 했었습니다.(신17:16)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계교가 죄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 애굽과 맹약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 죄에 죄를 더했습니다. 죄를 더하는 것은 그 죄가 계속 누적되는 모습입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 성령을 체험했지만 사람 중심으로 사역을 했습니다.(삼상14:52)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는 사람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입에 묻지 않고, 애굽을 그늘로 생각하고 의지합니다.(2)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입니다.(8) 라합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실 때 무찌르신 애굽입니다.(사51:9) ‘가만히 앉은 라합’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서 유다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2.유대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세속적 권력을 찾는 자는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 같은 모세의 제자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힘으로 자리를 얻은 대제사장에게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는 오히려 불편하지만, 예수는 나귀새끼를 타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마21:5) 세상의 왕은 강한 힘을 드러내지만 예수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예수와 상관없이 로마에 항거하는 열심당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에도 있었지만(눅6:15), 열심당은 로마에 대해서 폭력적 반정부 활동을 했습니다. 로마’라는 힘을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로마와 친한 대제사장과 같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합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그늘로 삼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했고, 그것으로 스스로 위로를 얻었습니다.(눅18:11-12) 이들에게는 종교적 열정과 인간의 행위를 그늘로 삼았습니다.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는 예수만이 진정한 그늘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그늘이 아닙니다.(시121:5)
3.우리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를 향한 “호산나”찬양과 믿음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무지개언약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힘으로 바벨탑을 세웠습니다.(창11:4)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사람의 범죄의 결과는 성령의 떠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성령을 구할 때 주시고(눅11:13), 인도합니다. 바울은 예수의 영의 이끄심을 따라 그의 사역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행16:7)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 세상의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그늘은 말씀입니다. 요나는 육체가 쉴 박넝쿨 그늘을 구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니느웨의 생명의 그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이 의지하는 그늘로 만듭니다. 말씀으로 사는 우리는 세상에게 그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주신, 평화의 왕 예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