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62:1-5
이 땅에 세워진 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기쁨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뻐하는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빛을 비추려고 합니다. 횃불, 왕관, 신부의 이미지로 표현이 되는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잘 드러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회복하여 그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의를 빛같이, 예루살렘을 횃불 같게 합니다(1).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빛으로 세워서 어둠을 밝힙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의 빛을 만드신 것입니다. 다윗도 자신이 하나님이 만드신 빛임을 고백했습니다(삼하23:4).
하나님은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왕관을 그 손에 들고 계십니다(3). 모세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했습니다(신33:3). 머리에 쓰는 관이 손에 있다는 것은 그들을 주의 손으로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랑거리이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삼상7:13).
하나님은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예루살렘을 기뻐하십니다(5). 회복된 이스라엘, 교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기쁨과 같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습3:17).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기뻐하는 마음은 스스로 그 마음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할 정도입니다.
2.예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세우는 일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는 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까지 그 일을 쉬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삼상12:23). 예수는 지금도 이 땅에 있는 교회를 돌보시며 중보 하는 일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히7:25).
예수는 복음을 위하여 사역하는 교회의 사자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교회의 사역자는 예수의 손에 붙들려 있어야 주의 힘과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 오른손에 일곱별, 즉 교회의 사역자들을 붙들고 계십니다(계2:1). 또한 예수는 복음을 위한 사역자들을 그의 영광으로 삼으셨습니다(고후8:23).
예수는 교회의 신랑 되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예수는 구원의 성취를 기뻐하면서 십자가를 참았습니다(히12:2). 예수는 교회에 ‘헵시바, 쁄라’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교회와 한 몸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하와를 보는 아담처럼 교회를 자기의 몸으로 선포하셨습니다(창2:23). 자기의 뼈와 살로 여겼습니다.
3.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횃불의 삶으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야 합니다. 횃불은 들고 가는 자의 길을 비추는 빛이지만, 어둠에 숨은 자들에게는 큰 두려움을 줍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 임재의 표상인 횃불이 나타났습니다(창15:17). 횃불은 대적에게 두려움을 줍니다(삿7:20). 빛의 자녀로서 어둠을 이기며 살아야 합니다.
주의 손의 왕관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사도 바울의 면류관입니다(빌4:1).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면류관이 된다는 표현이 많습니다(잠12:4, 17:6). 교회가 영광의 면류관으로 사는 삶은 형제들이 서로 하나 된 것입니다(빌4:2). 하나님의 면류관이 되려면 나를 가르치고 나에게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야 합니다. 신랑을 맞는 신부는 신랑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고라 자손은 사랑의 노래에서 결혼하는 신부는 자기 집을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시45:10-11). 신부와 신랑은 서로에게 속했습니다(아6:3). ‘아니 레도디 웨도디 리’ 나는 주님께 속했고, 주님은 내게 속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이 세상 속의 횃불이며, 그 손의 관이며, 그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