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친구께……….
한파가 몰아치는 새해에 벗님은 평안하신지요?
저희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 새벽 5시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대로 두바이에서 1박을 하고 2일에 오만의 국경지역인 브레미에 왔지요. 오늘에야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 개설되어 바로 자리에 앉아 소식을 전합니다.
1. 걸프지역 스케치
오만(브레미;국경도시)에 도착하여 차로 5분 거리인 알아인(아부다비,UAE)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이 지역에 대한 아웃라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랍을 22개국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그리고 오만, 이렇게 6개국을 이들 스스로 G.C.C.(GULF COUNTRIES COUNCIL)라고 명명합니다. 아랍지역 22개국 중 이 6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잘 살고 있고 정통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차별화이지요. 그래서 이 6개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이 6개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아랍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하지요. 저희 같은 외국인에게는 거주 (레지던스) 비자만 있으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다른 5개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잇점도 있습니다. 이 G.C.C.국가들끼리는 서로 통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것처럼 어쩌면 G.C.C.국가 내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다고 어느 일꾼이 말했답니다.
이 6개국 중에 오만이 차지하는 입지는 특이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 국가들이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오만 왕의 위치입니다. 예를 들어 UAE는 미국처럼 여러 지방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국가인데, 각 지방의 왕들은 오만의 왕에 비하면 영주(쉐이크)의 위치라고 합니다. 반면 오만의 왕은 절대 왕(술탄)의 위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만에 대한 다른 국가들이 갖는 의식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것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오만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급성장을 하는 UAE에서 언제나 손을 벌릴 수 있는 자금 줄처럼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브레미는 오만 지역중에서도 UAE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특이한 지역입니다. 저희도 얼마 지내지 않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두 나라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피부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비자이슈입니다. 비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너무도 큽니다. 또한 UAE에 비하여 오만에 왜 이렇게 일꾼들이 적은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 또한 비자에 관련된 것입니다. 오만은 일단 비자를 받는 다는 것이 너무도 힘든 지역입니다.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굉장히 협소하지요. 반면 UAE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전 오만 지역의 일꾼을 다섯 손가락에 꼽는 반면 UAE에는 많이 있습니다.
도착하여 시내를 다니면서 한가지 크게 눈에 뜨인 것은 제3국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파키스탄, 인도, 네팔, 스리랑카,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아니면 다른 아랍지역(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오신 분들을 자주, 쉽게 접합니다. 본국인들을 만나기 전에 이들을 거쳐 지나가야 하는 거리는 상당한 것 같습니다.
2. 이끌림과 대가
지난 서신에도 언급했지만, 저희는 원래 작년 12월 29일에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이의 신종플루 예방접종 때문에 31일로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2차 예방접종을 하러 가야할 조이는 29일에 감기에 걸려 감기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2차접종은 하지 못하고 감기를 달은 채 비행기를 탔지요. 준이도 30일부터 열이 나고 콧물이 흐르기 시작한 상태로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31밤 11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동안 내내 건조한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조이와 준이가 아플 때 저는 속으로 비행기 타는 날짜를 변경하고 싶었습니다. 일주일만 늦추어도 두 아이의 감기도 떨어지고, 신종플루 예방접종도 마저 하고, 컨디션도 회복된 상태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렇게 하면 웬지 무엇인가에 지는 것만 같아 미련스러워 보여도 그냥 떠나야겠다는 쪽으로 결정을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비행기를 탔지요.
오만에 도착했을 때 준이는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했고, 가래와 콧물이 심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도록 보챘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 가족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때가 되면 그분이 만져주실 거라는 평강이 있었지만, 생면부지 땅에 아는 사람도 없고, 시스템도 모르고, 병원조차도 모르는 곳에서 아이가 아프니 보기만 해도 마음을 붙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악한 영들이 저희 마음을 빼앗기 위해 준이를 사용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그분 앞에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무엇인가의 공격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대적할 시간도 없이 상황은 악화되어 갔고, 급기야는 남편이 언어학교 원장님인 K에게 연락하여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국경을 넘어 온 가족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의 소견은 준이에게 ‘급성 기관지확장증”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당장 병원에 입원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저희에게 보험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방문 중이고, 여행비자이고, 물론 보험도 없다고요. 그랬더니 의사가 난색을 띄면서 그러면 상당히 비쌀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략 얼마 정도 되느냐고 했더니 하루에 최소 500불 이상은 될 것 이라고 합니다. 저희도 난색을 띄었지요. 그러면서 준이는 계속 처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준이가 얼마나 많이 울고, 생난리는 쳤는지 사람들이 일부러 와서 얼굴을 확인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아이를 낫게 해야 하겠기에 의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남편과 조이 그리고 K는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준이와 제가 병원에서 잠잘 준비를 해서 다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마음에 입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평강과 웬지 모르는 기쁨이 한 줄을 그으며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이끌림을 잡고 그분께 나아갔습니다. 그 한 줄기 빛이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제 입술에 찬양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며 퇴근하려는 의사에게 가서 다시 꼼꼼하게 진찰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정말 100%입원을 해야지만 나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요. 의사는 다시 재 진찰을 아주 꼼꼼하게 했습니다. 덕분에 준이는 얼마나 더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의사의 말은 “지금은 괜찮습니다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것을 대비해서 입원하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입원비가 걱정이라면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당신들을 응급실에서 진료한 것으로 하면 많이 삭감될 것입니다. 제가 다음 의사에게 그렇게 전달해 놓고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준이를 잠시 머무는 방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준이와 같이 밖에 나갔습니다. 밖에서 안고 살살 걷고 있는데 제 입술이 어느 순간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찬양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어느새 제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준이도 울음을 멈추고 찬양하는 저를 바라보며 입술을 오무렸다 폈다 하면서 ‘음음..’ 거리며 따라했지요. 저는 ‘이것이 바로 0적 싸움이구나. 그리고 승리는 이렇게 오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왔고, 다른 의사에게 가서 동일한 진찰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의사가 저희에게 먼저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다만 아이가 숨을 못 쉴 정도로 울며 기침을 하면 즉시 병원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정기적으로 2시간에 한번씩 와서 치료를 받고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차도 없는데 어떻게 2시간에 한번씩 국경을 넘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밤에 그렇게 울지 않으면 오지 않고 내일 오전에 한번 더 치료 받으러 오겠다고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돌아왔지요. 치료비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싸게 지불했습니다. 그 의사들 둘이 저희에 대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해 준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준이는 4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국경을 넘어가서 치료받고 돌아왔고,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감사하지요….
아프던 녀석이 다 나으니 남은 건 어리광입니다. 요즘은 아플 때 해 주었던 것처럼 안고 놀아달라고 얼마나 보채는지요. 또 아프면서 큰다고 많이 영리해져서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까붑니다.
조이는 준이에게 집중하는 사이 감기도 다 나아 있었고, 옆에서 지켜보며 무엇을 배웠는지 며칠 사이에 부쩍 자란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를 많이 배려하고, 준이에게도 더 다정다감하게 놀아주기도 하고… 갑자기 철이 든 것 같아 짠 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치른 0적 전쟁에 저희는 대가를 지불하고, 치른 대가에 응당한 은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이 땅 오만에 오지 않았다면 저희 4가족 평생에 경험하지 못했을 그분의 특별한 인도하심과 만나주심 이지요.
사도바울이 그분께 이끌리어 살면서 경험한 것은 계속 해서 치루어야 하는 대가였지요. 그러나 그 대가보다 더 크고 분명한 기쁨과 감사, 그리고 흔들 수 없는 그분을 향한 고상한 사랑을 그는 평생 소유했는데, 그것이 이끌림에 대한 그가 받은 상급이었습니다.
3. 정착하는 과정 중…
낯선 곳에 가면 많은 경험을 합니다. 그것들은 때때로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지요. 그러나 성장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선물을 받습니다.
저희도 같은 과정에 있습니다. 준이가 아픔으로 인해 저희는 무상으로 도움을 주는 낯선 형제들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K(A국 소속)가 그렇고, P(O회사 소속)가 그렇고, J(W회사 소속)가 그렇습니다. J는 준이 병원 가는 것을 마치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인 양 매일 저희 숙소 앞에 시간보다 앞서와서 차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집을 얻는 데도 수고해 주었고, 이 지역에 있는 일꾼들을 저희와 같이 자신의 집에서 식사하며 소개해 주기도 하셨지요. 또한 조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직접적인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A(저희 회사 지역 대표)가 있습니다. 두바이 에서부터 저희를 방문하기 위해 왔다 가면서 그가 타고 온 차를 열쇠와 같이 저희에게 급한 대로 당분간 사용하라고 맡기고 갔습니다. 이곳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택시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밖에 나갈 수 가 없습니다. 당장 조이 유치원을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는 형편인데, A가 선뜻 내어준 차 열쇠를 보며 저희 부부는 웃고, 울고를 몇 번 반복했는지요….
4.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저희를 누가 감히 13년차 되는 일꾼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곳에 오니까 아주 어린 풋내기에 불과한 것을요….
이곳은 이렇게 너무도 다르고 새롭습니다. 정말 겸손하게, 그리고 모든 것을 배우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라는 걸 아침에 눈을 뜰 때, 저녁에 눈을 감을 때마다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5년 전 저에게 주신 그 말씀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지는 것을 가슴 시리게 경험합니다. 그때는 왜 그 말씀을 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래, 이제 너희는 새로운 길을 간다. 너희를 완전히 새롭게 하여 그 길을 가게 하는 나를 경험하렴,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보아라.]
그분의 음성에 설레는 밤입니다. 새 부대에 저희를 붓기 위해 헹구는 작업하시는 그분의 치밀하심 속에 저희를 온전히 의뢰하는 밤이기도 합니다.
감사제목
1. 오만에서 행하실 그분을 기대하게 하심
2. 준이 병을 다 낫게 하심
3. 조이 감기가 다 낫고, 유치원을 다닐 수 있도록 인도하심.
4. 집을 얻게 하심
5. 저희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심.
간구제목
1. 그분의 임재 안에 살아가도록.
2. 가족의 건강.
3. 한 달 안(2월 6일)에 우리 가정에 가장 적합한 자동차를 허락해 주시도록.
4. 마음을 다해 간구하는 벗들을 더 붙여주시도록.
5.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도록.
6. 서두르거나 우리의 힘을 내지 말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흐름에 온전히 맡기도록.
7. 아랍어를 쉽고 재미있게 시작하도록.
8. 구령의 열정이 계속 뜨거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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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친구께……….
한파가 몰아치는 새해에 벗님은 평안하신지요?
저희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 새벽 5시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대로 두바이에서 1박을 하고 2일에 오만의 국경지역인 브레미에 왔지요. 오늘에야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 개설되어 바로 자리에 앉아 소식을 전합니다.
1. 걸프지역 스케치
오만(브레미;국경도시)에 도착하여 차로 5분 거리인 알아인(아부다비,UAE)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이 지역에 대한 아웃라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랍을 22개국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그리고 오만, 이렇게 6개국을 이들 스스로 G.C.C.(GULF COUNTRIES COUNCIL)라고 명명합니다. 아랍지역 22개국 중 이 6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잘 살고 있고 정통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차별화이지요. 그래서 이 6개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이 6개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아랍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하지요. 저희 같은 외국인에게는 거주 (레지던스) 비자만 있으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다른 5개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잇점도 있습니다. 이 G.C.C.국가들끼리는 서로 통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것처럼 어쩌면 G.C.C.국가 내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다고 어느 일꾼이 말했답니다.
이 6개국 중에 오만이 차지하는 입지는 특이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 국가들이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오만 왕의 위치입니다. 예를 들어 UAE는 미국처럼 여러 지방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국가인데, 각 지방의 왕들은 오만의 왕에 비하면 영주(쉐이크)의 위치라고 합니다. 반면 오만의 왕은 절대 왕(술탄)의 위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만에 대한 다른 국가들이 갖는 의식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것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오만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급성장을 하는 UAE에서 언제나 손을 벌릴 수 있는 자금 줄처럼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브레미는 오만 지역중에서도 UAE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특이한 지역입니다. 저희도 얼마 지내지 않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두 나라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피부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비자이슈입니다. 비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너무도 큽니다. 또한 UAE에 비하여 오만에 왜 이렇게 일꾼들이 적은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 또한 비자에 관련된 것입니다. 오만은 일단 비자를 받는 다는 것이 너무도 힘든 지역입니다.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굉장히 협소하지요. 반면 UAE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전 오만 지역의 일꾼을 다섯 손가락에 꼽는 반면 UAE에는 많이 있습니다.
도착하여 시내를 다니면서 한가지 크게 눈에 뜨인 것은 제3국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파키스탄, 인도, 네팔, 스리랑카,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아니면 다른 아랍지역(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오신 분들을 자주, 쉽게 접합니다. 본국인들을 만나기 전에 이들을 거쳐 지나가야 하는 거리는 상당한 것 같습니다.
2. 이끌림과 대가
지난 서신에도 언급했지만, 저희는 원래 작년 12월 29일에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이의 신종플루 예방접종 때문에 31일로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2차 예방접종을 하러 가야할 조이는 29일에 감기에 걸려 감기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2차접종은 하지 못하고 감기를 달은 채 비행기를 탔지요. 준이도 30일부터 열이 나고 콧물이 흐르기 시작한 상태로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31밤 11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동안 내내 건조한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조이와 준이가 아플 때 저는 속으로 비행기 타는 날짜를 변경하고 싶었습니다. 일주일만 늦추어도 두 아이의 감기도 떨어지고, 신종플루 예방접종도 마저 하고, 컨디션도 회복된 상태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렇게 하면 웬지 무엇인가에 지는 것만 같아 미련스러워 보여도 그냥 떠나야겠다는 쪽으로 결정을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비행기를 탔지요.
오만에 도착했을 때 준이는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했고, 가래와 콧물이 심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도록 보챘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 가족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때가 되면 그분이 만져주실 거라는 평강이 있었지만, 생면부지 땅에 아는 사람도 없고, 시스템도 모르고, 병원조차도 모르는 곳에서 아이가 아프니 보기만 해도 마음을 붙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악한 영들이 저희 마음을 빼앗기 위해 준이를 사용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그분 앞에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무엇인가의 공격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대적할 시간도 없이 상황은 악화되어 갔고, 급기야는 남편이 언어학교 원장님인 K에게 연락하여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국경을 넘어 온 가족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의 소견은 준이에게 ‘급성 기관지확장증”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당장 병원에 입원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저희에게 보험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방문 중이고, 여행비자이고, 물론 보험도 없다고요. 그랬더니 의사가 난색을 띄면서 그러면 상당히 비쌀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략 얼마 정도 되느냐고 했더니 하루에 최소 500불 이상은 될 것 이라고 합니다. 저희도 난색을 띄었지요. 그러면서 준이는 계속 처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준이가 얼마나 많이 울고, 생난리는 쳤는지 사람들이 일부러 와서 얼굴을 확인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아이를 낫게 해야 하겠기에 의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남편과 조이 그리고 K는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준이와 제가 병원에서 잠잘 준비를 해서 다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마음에 입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평강과 웬지 모르는 기쁨이 한 줄을 그으며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이끌림을 잡고 그분께 나아갔습니다. 그 한 줄기 빛이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제 입술에 찬양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며 퇴근하려는 의사에게 가서 다시 꼼꼼하게 진찰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정말 100%입원을 해야지만 나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요. 의사는 다시 재 진찰을 아주 꼼꼼하게 했습니다. 덕분에 준이는 얼마나 더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의사의 말은 “지금은 괜찮습니다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것을 대비해서 입원하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입원비가 걱정이라면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당신들을 응급실에서 진료한 것으로 하면 많이 삭감될 것입니다. 제가 다음 의사에게 그렇게 전달해 놓고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준이를 잠시 머무는 방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준이와 같이 밖에 나갔습니다. 밖에서 안고 살살 걷고 있는데 제 입술이 어느 순간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찬양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어느새 제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준이도 울음을 멈추고 찬양하는 저를 바라보며 입술을 오무렸다 폈다 하면서 ‘음음..’ 거리며 따라했지요. 저는 ‘이것이 바로 0적 싸움이구나. 그리고 승리는 이렇게 오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왔고, 다른 의사에게 가서 동일한 진찰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의사가 저희에게 먼저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다만 아이가 숨을 못 쉴 정도로 울며 기침을 하면 즉시 병원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정기적으로 2시간에 한번씩 와서 치료를 받고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차도 없는데 어떻게 2시간에 한번씩 국경을 넘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밤에 그렇게 울지 않으면 오지 않고 내일 오전에 한번 더 치료 받으러 오겠다고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돌아왔지요. 치료비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싸게 지불했습니다. 그 의사들 둘이 저희에 대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해 준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준이는 4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국경을 넘어가서 치료받고 돌아왔고,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감사하지요….
아프던 녀석이 다 나으니 남은 건 어리광입니다. 요즘은 아플 때 해 주었던 것처럼 안고 놀아달라고 얼마나 보채는지요. 또 아프면서 큰다고 많이 영리해져서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까붑니다.
조이는 준이에게 집중하는 사이 감기도 다 나아 있었고, 옆에서 지켜보며 무엇을 배웠는지 며칠 사이에 부쩍 자란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를 많이 배려하고, 준이에게도 더 다정다감하게 놀아주기도 하고… 갑자기 철이 든 것 같아 짠 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치른 0적 전쟁에 저희는 대가를 지불하고, 치른 대가에 응당한 은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이 땅 오만에 오지 않았다면 저희 4가족 평생에 경험하지 못했을 그분의 특별한 인도하심과 만나주심 이지요.
사도바울이 그분께 이끌리어 살면서 경험한 것은 계속 해서 치루어야 하는 대가였지요. 그러나 그 대가보다 더 크고 분명한 기쁨과 감사, 그리고 흔들 수 없는 그분을 향한 고상한 사랑을 그는 평생 소유했는데, 그것이 이끌림에 대한 그가 받은 상급이었습니다.
3. 정착하는 과정 중…
낯선 곳에 가면 많은 경험을 합니다. 그것들은 때때로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지요. 그러나 성장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선물을 받습니다.
저희도 같은 과정에 있습니다. 준이가 아픔으로 인해 저희는 무상으로 도움을 주는 낯선 형제들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K(A국 소속)가 그렇고, P(O회사 소속)가 그렇고, J(W회사 소속)가 그렇습니다. J는 준이 병원 가는 것을 마치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인 양 매일 저희 숙소 앞에 시간보다 앞서와서 차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집을 얻는 데도 수고해 주었고, 이 지역에 있는 일꾼들을 저희와 같이 자신의 집에서 식사하며 소개해 주기도 하셨지요. 또한 조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직접적인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A(저희 회사 지역 대표)가 있습니다. 두바이 에서부터 저희를 방문하기 위해 왔다 가면서 그가 타고 온 차를 열쇠와 같이 저희에게 급한 대로 당분간 사용하라고 맡기고 갔습니다. 이곳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택시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밖에 나갈 수 가 없습니다. 당장 조이 유치원을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는 형편인데, A가 선뜻 내어준 차 열쇠를 보며 저희 부부는 웃고, 울고를 몇 번 반복했는지요….
4.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저희를 누가 감히 13년차 되는 일꾼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곳에 오니까 아주 어린 풋내기에 불과한 것을요….
이곳은 이렇게 너무도 다르고 새롭습니다. 정말 겸손하게, 그리고 모든 것을 배우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라는 걸 아침에 눈을 뜰 때, 저녁에 눈을 감을 때마다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5년 전 저에게 주신 그 말씀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지는 것을 가슴 시리게 경험합니다. 그때는 왜 그 말씀을 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래, 이제 너희는 새로운 길을 간다. 너희를 완전히 새롭게 하여 그 길을 가게 하는 나를 경험하렴,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보아라.]
그분의 음성에 설레는 밤입니다. 새 부대에 저희를 붓기 위해 헹구는 작업하시는 그분의 치밀하심 속에 저희를 온전히 의뢰하는 밤이기도 합니다.
감사제목
1. 오만에서 행하실 그분을 기대하게 하심
2. 준이 병을 다 낫게 하심
3. 조이 감기가 다 낫고, 유치원을 다닐 수 있도록 인도하심.
4. 집을 얻게 하심
5. 저희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심.
간구제목
1. 그분의 임재 안에 살아가도록.
2. 가족의 건강.
3. 한 달 안(2월 6일)에 우리 가정에 가장 적합한 자동차를 허락해 주시도록.
4. 마음을 다해 간구하는 벗들을 더 붙여주시도록.
5.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도록.
6. 서두르거나 우리의 힘을 내지 말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흐름에 온전히 맡기도록.
7. 아랍어를 쉽고 재미있게 시작하도록.
8. 구령의 열정이 계속 뜨거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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