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 예수는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숫자상의 몇 번의 용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의 용서가 필요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의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1.베드로의 생각은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버려지지 않는 자기생각의 찌끼가 그대로 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을 들을 때 있는 그대로 아멘으로 받고 끝내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기의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주의 말씀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숫자에 매여 있는 생각입니다. 베드로는 숫자를 말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말합니다.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라는 질문은 당시 유대인들의 너그러움의 기준인 3번 정도의 용서에 비하면 상당히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영의 지배를 받지 않는 혼의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에는 무감각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에 대해 민감하지만 혼의 생각은 자기의 의지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2.예수는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베드로 속에 있는 자기 생각의 찌끼를 제거하셨습니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는 이야기는 베드로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빚진 자를 향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천국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형제를 용서하는 숫자에 매여 있는 베드로에게 천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곧 천국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그 빚진 자를 탕감하듯이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졌음을 보게 합니다. 천국의 기초는 “용서”입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영의 생각을 집어넣으셨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영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귀가 사람에게 생각을 집어넣는 것은 죽이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요13:2)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이 이루어지고, 살리는 일입니다. 내가 받은 용서를 기억하고 중심으로 남을 용서하는 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3.우리는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들려지는 말씀 즉 영의 생각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내 생각의 찌기가 아직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영의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어린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비록 멸망의 소식이라고 해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생각의 기준을 영적인 것으로 세워야 합니다. 내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받을 것 기준으로 생각하면 늘 다른 사람에게 분노가 나오지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용서와 사랑이 나옵니다. 모든 생각의 기준을 영적인 것으로 세워야 합니다.
일곱 번 정도 용서하는 삶이 아니라 내 마음 중심으로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삶이 천국의 삶입니다. 이와 같은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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