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7-30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몰랐습니다.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 사건을 통하여 그의 부활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바른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1.마르다는 부활을 믿는 것 같았지만 부활신앙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집에 늦게 오신 예수께 서운함을 표현했습니다.(21) 믿음의 사람이라도 응답의 기준을 내가 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집니다. 자기 생각으로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섭섭함이나 서운함을 가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결정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미6:9)
마르다의 기대감은 불확실했습니다.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22) 마르다는 나사로의 죽음 이후에 무엇을 구할지를 몰랐습니다. 질병에서는 치유를 구했지만 죽음 앞에서는 기도가 없어진 것입니다. 부활신앙이 온전하지 않으면 기대감도 불확실합니다.
마르다는 잘못된 고백을 합니다.(24) 마지막 날 부활에 다시 살게 될 줄 믿는 것은 예수께서 보여주시려는 부활과는 다른 신앙입니다. 유대인들은 욥과 같이 마지막 날에 다시 살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욥19:26) 하나님께서 부활을 어떻게 이루시는지를 몰랐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부활신앙에서는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2.예수는 부활을 미리 선포하시고, 사람들이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나사로의 부활을 선포하셨습니다. 죽은 자가 지금 다시 살게 될 것을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활과 영생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미래에 다시 살게 될 것을 기대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겔37:5-6)
예수는 자신을 부활과 생명이라고 소개합니다. 장례식을 치룬 마르다에게 자신이 부활과 생명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생명의 창조주이시고, 마귀의 유혹으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는 부활의 주님입니다. 마르다는 질병을 치유하실 예수를 기대했었지만, 예수는 부활과 생명의 주님으로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부활신앙을 가진 자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부활신앙을 가지고, 그들에 있는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히11:35) 부활과 생명의 예수를 분명하게 믿을 때 예수의 부활과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3.우리는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를 믿고 그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생명의 소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는 장례식을 치루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마르다를 만나셨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자리에 있으면 생명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생명의 예수께 나아가면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조롱에 대해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왕하19:1-2)
예수께서 부활과 생명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를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인가를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그분이 부활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부활과 생명의 주인공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손을 잘 알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민11:21-23)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27)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은 세상에 대해 증언이 됩니다. 믿음의 고백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바르게 고백되어야 합니다.(롬10:9) 환난과 핍박의 순간에도 바른 고백이 필요합니다.(단3:17)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부활을 말씀하신 예수는 곧 이루어질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의 부활을 예고하시고, 또 이루신 예수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 오늘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께 이끌리는 삶 (0) | 2018.04.20 |
---|---|
사랑으로 이루는 정의 (0) | 2018.04.13 |
하나님의 기대와 실망 (0) | 2018.03.30 |
심판하는 영, 소멸하는 영 (0) | 2018.03.23 |
심판을 피하는 삶 (0) | 2018.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