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4
요한은 예수의 성육신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일로 표현합니다. ‘거하시는’은 ‘장막을 치다. 성막을 짓다’는 의미입니다. 성탄절은 한 아기의 출생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성전이 되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1.하나님은 사람 가운데 거하시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주신 에덴동산도 성전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시고, 하나님도 그 동산에서 거니셨습니다(창3:8). 그러나 아담은 에덴동산을 지키고 경작해야 할 제사장 역할에 실패하고,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으나 사람은 그들의 죄로 인해 그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 성소의 모형을 땅에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의 성전을 설계도를 보여주셨고, 그것이 사람이 볼 수 있는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출25:8-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성막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또 범죄 함으로 그 성전은 파괴되고 맙니다.
유대인은 마카비혁명으로 성전을 재봉헌하며 수전절 절기를 만들고, 지켰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물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전의 의미는 잃어버렸습니다. 제자들도 성전 건물에 관심을 둘 정도였습니다(마24:1), 그러나 예수는 성전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예수는 육신이 되어 사람 가운데 거하시는 성전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 중에 거하려고 원래 육신이 아니지만,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헬레니즘 철학에서 인간 이성과 같은 것을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며 참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됨을 강조하며, 영지주의자(요이1:7)의 교훈에 대해 교회를 수호했습니다.
성전이 되신 예수는 우리를 성전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육신이 되신 예수가 우리 가운데 거함(스케노오)을 기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육신이 되신 예수가 참 성전이란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성전으로 선포했습니다(요2:19). 예수가 보내신 성령으로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고전3:16).
예수는 하늘에 장막을 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떠나며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14:3).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하늘의 장막을 치며 우리 거할 곳을 마련합니다(계7:15).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 사건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일은 영원토록 이루어지는 은혜입니다.
3.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모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히9:11). 그러므로 이 예수를 아는 성도들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히10:22). 예수께서 세우신 성막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하늘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살아도 하늘에 거하는(스케노오) 자로 살아야 합니다(계12:12). 하늘에 사는 자는 이 땅에서 비방을 받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늘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계13:6). 우리는 땅에 살아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하늘 성전에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예수의 성전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누리고, 나눠야 합니다. 예수께 있는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다윗은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으로 축복했습니다(삼하2:6).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은 흘러 넘치는 모습입니다. 예수로부터 넘쳐서 흘러온 은혜와 진리를 받은 성도는 이웃에게 나눔으로 그들 중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는 그의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며, 우리도 은혜와 진리를 이웃에게 보내어 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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