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평안을 구하지만 진정한 평안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주는 평안은 진통제와 같습니다. 예수는 그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나십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예수의 평안을 물려받는 것이 가장 복 된 사람입니다.
1.이 세상이 주는 평안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외치는 평안은 늘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평안을 말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가진 것이 풍족하므로 염려가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이런 평안은 하나님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로만 하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입니다. 속에 상처가 있지만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척 하는 것입니다.(렘8:11) 사람의 질병과 장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치유는 없이 말로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 평안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 같은 것들이 신앙적인 것 같지만 자기를 믿는 것이 많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불신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은 범죄자에게 저주의 말씀을 주셨지만 사람은 그 저주의 말씀을 불신하며 스스로 축복하는 자가 있습니다.(신29:19) 그러나 스스로 아무리 평안을 외쳐도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상관없이 스스로 축복하는 일은 헛된 일일 뿐입니다.
2.예수는 제자들에게 그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예수의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지만 늘 하늘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평안입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외형적인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의 평안은 사랑의 행동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원수를 사랑하며,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죽는 사역을 하는데서 오는 평안입니다.(골3:13-15) 많은 것을 소유하고 받아 누리는 평안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나눔을 통해서 오는 평안이 예수의 평안이고, 참된 평안입니다. 이 평안이야말로 영원한 평안입니다.
예수의 평안은 사역자의 담대한 평안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예수는 그 고통을 피하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은 있지만 그 십자가 때문에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는 그가 이룰 사역의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역자의 평안입니다.
3.우리는 예수의 평안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평안은 말을 통하여 옵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온다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28) 예수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의 평안을 받아 누리는 방법은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아멘”으로 받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예수의 평안을 받는 길입니다.
예수의 평안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립니다. “나를 사랑하였더라면”(28) 예수의 말을 듣고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들이 예수를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하시는 것은 사랑하는가의 질문이었습니다.
예수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기쁨의 삶을 삽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28) 예수께서 주신 평안이 있는 사람은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께로 가신 사실에도 기뻐하게 됩니다. 고난을 기뻐하고, 당장에 눈앞에 성취되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기뻐하는 사람이 예수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입니다.(살전5:16-18)
주님이 주신 평안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담대함으로 사역하며, 항상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