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영화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아내가 어느날 크로싱 영화를 보자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관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며칠을 그대로 보냈다.
그런데 우리교회 청년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간다는 말을 듣고는 또 같이 가자고 하길래 같이 나섰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같이 감상을 하는 사람과 어떤 계기가 있든지 낭만이 있든지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사명감을 가지고 감상을 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실상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화면으로 본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남쪽에서는 보건소에 가면 공짜로도 주는 기본적인 결핵약이 없어서 병든 아내를 어린 아들에게 맡겨 두고 국경을 넘는 것은 진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북한의 처참한 실상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리고 남쪽으로 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약을 구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한 하는 주인공의 마음과는 달리, 일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독일대사관의 담을 넘으면서 탈북을 하는 무리들과 그들을 이끌면서 돈을 받는 브로커나 아니면 탈북을 돕는 기관단체이든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도울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아내와 아들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삶은 내가 원하는데로 진행되지 않으며, 또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땅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를 위한 노력도 쉽게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살고 싶은 욕구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주인공은 예수를 의지하기를 권면하는 전도자에게 "왜 하나님은 북한에서는 계시지 않고 남쪽에만 있는가?"라고 하소연을 한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그렇지만 북한 사람들의 암울한 삶의 주소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한반도에서 민족간의 전쟁이 있게 하고 또 남과 북이 분리 되었던 사실은 과거 일제하에서 신사참배의 죄악의 결과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영화를 통하여 그 하나님이 심판하심으로 동족간의 전쟁의 분리, 그리고 또 한 쪽의 땅에서는 하나님이 떠나버리신 결과로 나타난 어두움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북쪽 어둠의 땅에서 고통당하는 민족을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득하지만, 한 편으로는 물질의 풍부함으로 타락하고 삶을 그르치는 남쪽 사람들의 모습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몽골의 공항에서 비를 맞으며 벌판 한 가운데 서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허무함과 슬픔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그 슬픔을 이기는 어떤 소망에 대해서나 그 삶과 생각의 변화에 대해 그려지지 않고 그 모든 것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 버리고 영화를 끝내 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약간은 실망감을 가졌다.
여전히 슬픔의 어두움에 갇혀 있는 주인공은 굶주림의 땅에서는 나왔지만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삶이어서 아직도 누군가에 의해서 확실한 복음을 듣고 구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를 본 후에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이웃이 누구이며, 그 이웃을 향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일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중심으로 사는 사람들, 물질의 풍요속에서 배고픔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은 보라고 권면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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