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5:1-11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일은 교회를 흔드는 외부의 반대와 핍박도 있지만 교회를 내적으로 흔드는 일도 있습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짓을 막으시고, 교회가 영적 권세를 가지고 든든히 서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1.성령을 속이는 삶은 성령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아 헌신하는 것(행4:33)을 보고, 그 헌신의 흉내를 냅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로 나아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자기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속이고 있습니다. 가인의 예배는 자기 착각일 뿐입니다.(창4:5)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그들의 헌신의 행동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삶의 특징이었습니다.(마6:5)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아직 그의 삶은 변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모르고 교회만 다니는 사람은 육신적 생각으로 신앙생활의 흉내만 낼 뿐입니다.
아나이아 삽비라 부부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가 직접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형식적인 헌신을 통하여 자기의 위치를 세우려는 마음으로 사도를 속였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권위를 무시하는 교만이며(롬11:20), 사도에게 있는 성령을 무시하는 반역입니다. 고라는 모세의 영적 권위에 도전했습니다.(민16:3)
2.성령은 거짓에 속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핍니다. 성령은 예배자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책망 받는 이스라엘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행7:51)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시인 몸의 할례만 중요시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마음을 다한 예배를 원하십니다.(신10:12)
성령은 교회 안에 거짓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습니다. 교회를 향한 대적은 외부에서 오는 반대와 핍박뿐만 아니라 내부의 혼란을 일으킵니다. 성령의 이끄심 속에 있는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성령은 교회가 거짓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즉 지식과 의와 거룩함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합니다.(엡4:23)
성령은 죄인을 심판 합니다. 베드로의 책망에 대해 성령은 아나니아에게서 혼이 떠나게 하셨습니다. 영이 떠나면 육의 삶을 지탱할 수는 있지만 혼이 떠나면 육체까지도 죽습니다. 성령은 성령을 거역해서는 안 됨을 강조합니다.(마12:32) 성령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시험 당하지 않습니다.(약1:13)
3.성령을 속이지 않는 진실한 헌신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없으면 신앙의 기본이 안 됩니다.(마10:28)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으면 롯의 사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은 백성들이 두렵고 떨림의 경외함으로 나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에게 있는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사와 교사를 주셔서 교회가 한 몸으로서 질서 있게 성장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잘 세워지는 일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삼상26:9)
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게 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리는 자기 행위의 결과를 깨닫지 못했습니다.(히12:16)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죄의 결과를 알면 쉽게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으로 나아가는 삶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일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알고, 죄의 결과를 아는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