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5:42-45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그 일을 감당할 사람들이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새로운 예수의 제자가 드러나며, 그는 예수의 장례라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나를 통하여 하실 주의 일을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1.예수의 죽음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숨어 있던 아리마대 요셉을 들어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의원으로서 함께하는 공회의원들과 행동했지만 예수를 따르고,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려는 제자였습니다. 단지 자기를 들어낼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장례라는 문제 즉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그 기회를 잃지 않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일을 못하는 아리마대 요셉이 사역을 하도록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장례를..
요19:31-37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함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 종교적 삶을 위하여 죽은 시체를 처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증거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사람들은 죽은 예수의 시신의 처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시신을 안식일 준수에 걸림돌로 여겼습니다. 십자가에 시체가 달려 있는 상황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신21:22-23) 유대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예수의 시신이 땅을 더럽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아들을 내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은 단지 자기사역에 충성할 뿐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시신은 ..
눅 23:47-49 사탄은 사람들이 원하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를 보는 시각은 각각 달랐습니다. 백부장은 예수의 죽음을 깊이 있게 보는 시각이었습니다. “호라오”(όράω)라는 단어는 직시했다는 의미입니다. 깨달음이 있는 시각입니다.(롬15:21) 처음에는 단순한 사형수로만 보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를 가지고 보았으며,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일어난 지진과 바위의 터짐을 보고 예수가 누군지 깨닫게 되었습니다.(막15:39) 구경하던 자들은 단지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이들이 본 것은 구경했다는 것입니다. “데오레오..
마27:50-53 사람들은 사망의 법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망의 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의 죽음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생명의 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1.예수의 죽음은 철저하게 자기를 내려놓은 사역입니다. 예수는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기에게 죽음이 선포되었을 때 죽음을 피하려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고, 순종하셨습니다.(갈1:4)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의 체포, 재판, 처형의 모든 과정은 사람들이 똑똑하게 보는..
눅23:44-46 예수는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손에 자기의 영혼을 부탁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는 예수의 부탁은 사역을 다 이루신 예수의 부탁이며, 이 부탁으로 인하여 우리도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 됩니다. 1.예수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 예수의 부탁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의 손입니다. 예수는 아버지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의 손입니다.(눅11:20)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손은 곧 성령님입니다.(마12:28) 예수는 자신의 영혼을 잘 보존해 주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자기 영혼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의 육체가 아니라 그의 영혼을 부탁합니다. 예수는 다윗의 고백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