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7-19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죽음과 상실의 문제는 사람이 당하는 일 중에 가장 고통스런 일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를 믿는 신앙으로 그런 슬픔과 고통의 문제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즉 부활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1.아브라함에게 닥친 시험은 힘들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실성의 대한 확신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주셨다가 다시 그 아들을 내어 놓으라고 말씀하시는지 신실성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자들에게 흔히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혼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이란 문제가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고 또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문제..
히11:13-16 예수를 믿는 신앙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신앙이란 결코 현실을 도피하거나 또는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1.천국신앙은 더 나은 본향 찾는 일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사람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현재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천국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약속의 실현이 빠르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설명했습니다.(요8:56) 이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했습니다. 본향 찾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습니다..
히11:11-12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구원신앙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한 언약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능력이 있는 능력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와 같은 사라에게 잉태하는 능력을 주어 그를 통하여 많은 후손이 생육하게 하셨습니다. 1.능력신앙을 가지기 이전의 사라의 삶은 잉태할 힘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사라는 두려움에 빠진 남편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기의지의 무능함이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서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을 위하여 자신을 애굽의 왕에게 보낼 때에도 사라는 어찌하지 못했습니다.(창12:12-23) 아브라함과 사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무능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라는 신체적으로도 아이를 배는 힘이 없는 무기력함이 있었습니다. 사라는..
히11:8-10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노아의 구원신앙 이후에 나타난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 하셨으며,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신앙입니다. 1.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를 부르는 주권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 동등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란 티끌임을 고백했습니다.(시90:3-4)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 뜻대로 사람을 부르시고 약속을 주시기도 하고, 사명을 주시기도 합니다. 선택과 예정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는 늘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부르십니..
히11:7 예수를 향한 신앙은 창조신앙, 예배신앙, 심판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중에서 누려야 할 구원을 알고 가지는 구원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홍수전에 방주를 만드는 노아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구원신앙이었습니다. 1.노아의 신앙은 구원을 이루는 신앙이었습니다. 노아의 신앙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데서 시작합니다.(창6:7-8)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 깨달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녹이 강조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관심도 없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오는 심판을 알고 또한 구원의 길까지 알게 된 것입니다. 노아의 신앙은 구원의 길을 알고 그 길을 준비하는 행동이 있는 믿음입니다. 속으로 말씀을 믿지만 믿음대로 실천하지 ..
히11:5-6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께서 세상을 창조하심을 믿는 창조신앙과 하나님 앞에 예수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예배신앙, 그리고 이 세상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 것을 믿는 심판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1.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뜻을 보여주었을 때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에녹이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 즉 ‘창의 사람’이란 의미로 짓는 것은 다가 올 심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아들이 태어나고도 약 천년이 지나서 이루어지는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의 삶의 특징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수명에 비하면 아주 짧지..
히11:4 사람이 창조주를 알면, 그에게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을 알고 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입니다. 아벨은 믿음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1.하나님이 주신 길을 모르는 사람들의 예배는 헛된 예배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예배의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하던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신을 향하여 온전한 열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신에게 하는 기도와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신념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물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
히11:1-3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진화론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존재가 우연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창조신앙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심이 많아 많은 신들을 섬기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도 만들었습니다.(행17:23-24) 사도 바울은 이런 아덴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창조주를 모르고, 세상이 우연히 생겨난 세상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그냥 제멋대로 살다가 망할 뿐입니다. 창조주를 잊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지으신 이를 아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히11:1-2 잠시 후에 오실 예수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뒤로 물러가서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실상이 되고, 증거가 되어야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말합니다. 1.선진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실상과 증거를 얻었습니다. 선진들은 믿음으로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선진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믿음의 사람”으로 증거 됩니다. 이들의 믿음은 사변적, 철학적이지 않고, 실제적, 행동적 믿음입니다. 그 바라는 것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불신의 사람은 기대감을 버리지만 믿음의 사람은 약속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습니다.(민14:8) 선진들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듭니다. 믿음의 능력은 그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
히10:32-39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잠시 후에 오실 예수가 소망이 되지만, 나태하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오실 예수가 별로 반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1.예수는 잠시 후에 오실 자입니다.(37절) 예수는 “잠시 잠깐 후” 곧 오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의 때는 잠깐 후 지나 갈 것을 예언했습니다.(사26:20)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시간이 잠깐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아주 ‘잠시 잠깐’입니다. 예수의 재림의 때는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는 잠시 잠깐입니다. “오실 이가 오시리니” 예수는 ‘오실 이’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