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4 사람이 창조주를 알면, 그에게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을 알고 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입니다. 아벨은 믿음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1.하나님이 주신 길을 모르는 사람들의 예배는 헛된 예배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예배의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하던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신을 향하여 온전한 열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신에게 하는 기도와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신념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물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
히11:1-3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진화론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존재가 우연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창조신앙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심이 많아 많은 신들을 섬기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도 만들었습니다.(행17:23-24) 사도 바울은 이런 아덴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창조주를 모르고, 세상이 우연히 생겨난 세상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그냥 제멋대로 살다가 망할 뿐입니다. 창조주를 잊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지으신 이를 아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히11:1-2 잠시 후에 오실 예수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뒤로 물러가서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실상이 되고, 증거가 되어야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말합니다. 1.선진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실상과 증거를 얻었습니다. 선진들은 믿음으로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선진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믿음의 사람”으로 증거 됩니다. 이들의 믿음은 사변적, 철학적이지 않고, 실제적, 행동적 믿음입니다. 그 바라는 것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불신의 사람은 기대감을 버리지만 믿음의 사람은 약속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습니다.(민14:8) 선진들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듭니다. 믿음의 능력은 그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
히10:32-39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잠시 후에 오실 예수가 소망이 되지만, 나태하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오실 예수가 별로 반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1.예수는 잠시 후에 오실 자입니다.(37절) 예수는 “잠시 잠깐 후” 곧 오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의 때는 잠깐 후 지나 갈 것을 예언했습니다.(사26:20)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시간이 잠깐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아주 ‘잠시 잠깐’입니다. 예수의 재림의 때는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는 잠시 잠깐입니다. “오실 이가 오시리니” 예수는 ‘오실 이’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할..
히10:26-31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오직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사람의 구원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사람을 심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1.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합니다.(신32:35)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대적에 대해서 보복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심판하셨으며, 그 심판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심판하실 때까지 계속 됩니다.(계16:7)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그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그의 아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요3:18) 율법을 어겨도 심판을 받았지만 하..
히 10:19-25 예수는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다스리는 제사장입니다. 세상의 많은 왕들은 백성을 이용하여 자기의 권력과 영광만을 추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제사장으로서 교회를 다스려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합니다. 1.예수는 큰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립니다. 예수의 다스림은 몸에 대한 머리로서의 다스림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설명할 때 사람의 몸으로 설명합니다.(엡1:21-22) 즉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고, 교회는 예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 되신 예수는 몸 위에 있으며 하나님의 집을 다스려 그 집에 생명을 주고, 몸이 바르게 행동하도록 말씀과 능력을 공급합니다. 예수의 다스림은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의 다스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이끌어주..
히 10:1-18 죄와 사망의 고통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뜻을 이루는 일에 예수는 자기를 헌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구원이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 같이 하나님의 뜻은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었습니다.(시40:6-8) 하나님의 뜻의 근본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10절)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거룩함을 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엡4:23-24) 그렇지만 사람은 죄를 짓고 그 형상을 잃어버렸으며, 하나님은 그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레11:45) 하나님은 참 것에 대해 그림자인 율법을 미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것이..
히9:23-28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나심”이라는 단어로 정리합니다. 예수의 나타나심, 예수의 행동의 목적과 의미와 그 결과를 알면 우리는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이루어진 모든 은혜를 제대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1.예수의 나타나심은 목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나타남은 세상 끝에 나타남입니다.(26절) “화네로오”라는 단어는 ‘명백히 나타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명백히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는 세상 끝, 말세에 나타나셨습니다.(벧전1:20)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림자처럼 나타내지만 예수는 하나님을 명백하게 나타내셨습니다. 두 번째 나타남은 하나님 앞에 더 좋은 제물로 나타남입니다.(24절) "엠프하니조"라는 단어는 ‘발표하다, 선언하다’..
히9:16-22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언약은 마치 유언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유언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됩니다. 즉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언은 효력이 있게 되었습니다. 1.첫 언약은 언약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할례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효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며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창17:14) 그 이후 이스라엘은 할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상태에서도 할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효력 없는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합니다.(렘4:4) 십계명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는 효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언약을 주시면서 은혜..
히9:11-15 예수는 우리에게 ‘장래 좋은 일’을 이루시는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는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장막에서 일하셨으며, 우리에게 온전하고 영원한 기업이 있게 하셨습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1.사람들은 이 창조에 속한 것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창1:31) 하나님이 좋아하셨다는 것은 선하게 여기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선한 것 중에서 하나님은 만물의 중심이 되는 사람을 지으셨는데,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사43:7)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하게 만든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범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들을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