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3:27-31 십자가에 달릴 자기를 보고 슬피 우는 여자들을 보신 예수는 그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부르시면서 오히려 그들과 그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푸른 나무는 불을 이기지만 마지막 종말의 날에 마른 나무는 불을 이길 수 없습니다. 1.예수를 따르는 여자들은 울음으로 그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들이 우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우는 것은 죽음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에 다가오는 한 번의 죽음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분명한 일이 있습니다.(히9:27) 죽음을 마지막으로 생각하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십자가에서 당할 예수의 고통을 알고 연민의 정으로 울고 있습니다...
마27:19-26 빌라도는 예수가 죄 없음을 알았지만 정치적인 입장으로 무리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줍니다. 예수를 넘기는 책임은 그것을 결정한 그에게 있습니다. 바른 영성의 사람은 바른 판단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1.예수는 빌라도에 의해서 죽음의 자리에 넘겨졌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사람을 사랑함으로 죽음의 자리에 서 계십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여전히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요13:1)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이 사랑의 시각으로 끊임없이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자리를 피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재판정에서 ..
막15:6-13 대제사장들은 명절을 당하여 죄수 한 사람을 사면하는 일에서 예수를 버리고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1.대제사장은 무리를 충동하여 예수를 버리고 죄수 바라바를 택했습니다.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자를 시기하는 자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넘긴 것이 그들의 시기심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자기가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줄 알았는데 예수에게 모든 민심이 쏠리는 것을 보고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많은 죄의 근본이 시기심입니다. 가인, 요셉의 형들 모두 시기심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자기의 기득권에 대한 탐욕으로 새로운 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행2:22-32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키지만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을 살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줍니다.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부활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정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게 된 사람들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본래의 마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애3:33)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요6:39) 하나님은 미리 아시기 때문에 아들을 사망에 내어 주셨습니다. 사망이 사람을 두렵게 하기..
눅23:5-12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합니다. 예수를 재판하게 된 헤롯은 자기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예수를 업신여기며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예수는 멸시를 당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1.헤롯은 예수를 구경하는 자로서 재판합니다. 헤롯은 권력을 위하여 남을 죽이는 사람입니다. 헤롯은 다른 권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 헤롯은 예수의 탄생 시에 예루살렘의 어린 아이를 학살하고, 그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요한을 죽였고, 헤롯 아그립바1세는 야고보를 죽였으며(행12:),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사도 바울을 심문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행26:) 헤롯은 진리에 대한 구경꾼이었습니다. 헤롯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가 행하신 이적을 구경하고자..
요18:33-37 대제사장 안나스는 자기의 경험으로 예수를 심문했고, 가야바는 종교적 관점에서 예수를 심문했으며, 빌라도는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예수를 심문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빌라도에게 그가 왕이란 사실과 그의 나라는 하늘에 속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1.세상의 권세 잡은 자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합니다. 정치적인 권력에 매인 빌라도의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 “네가 왕이 아니냐?”(37)라고 묻습니다. 빌라도는 정치와 권력에 관심을 둔 사람으로서 예수를 바라봅니다. “네가 왕이냐?”라고 묻는 것은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왕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 묻는 것입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미움은 이런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빌라도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빌라도는 사람..
눅22:54-62 다른 사람과 제일 잘 통하는 사람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그 뜰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있는 베드로를 쳐다보셨으며, 예수의 눈빛을 본 베드로는 즉시 나가서 통곡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1.사람들의 시선은 파괴적 목적의 시선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허물을 보는 시선이 발달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재판정의 뜰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있을 때에 그들은 베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이 베드로를 알아본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재판을 받고 정죄를 당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허물을 보는 일에 익숙합니다(막2:18).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삽니다. 자기를 들어내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막14:55-65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를 심문할 때 예수의 대답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당당하게 증거하고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앞에 누가 있든지 확신이 있거나 또 실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 거칠 것이 없이 말하고 행동합니다. 1.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예수를 칠 증거를 찾습니다. 그 증언이 거짓이라고 해도 증거가 있어야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사는 마귀의 자녀는 그 삶의 내용은 거짓이지만 그래도 형식은 합당성을 추구합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는 일처럼 자기는 잘못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욕심을 채우는 일입니다. 효력 없는 증언으로 예수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고 ..
요18:19-23 안나스가 예수를 심문하지만 예수는 그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으시고, 예수께서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십니다. 안나스는 세상 시스템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하지만 예수는 하늘의 시스템으로 접근하시고 말씀합니다. 1.세상 시스템으로 예수를 심문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힘입니다. 안나스는 세상의 경험으로 예수를 심문합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는 모든 면에서 경험이 많은 원로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제일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온 것은 안나스의 경험과 권위로 예수를 정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은 연륜과 경험 많은 지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권위를 둡니다. 안나스는 조직의 힘으로 힘없는 자를 억누르며 심문합니다. 안나스가 예수의 제자에 대해 묻는 것은..
요18:12-14 예수는 세상에서 사회적인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둠의 권세 앞에 피고로 섰지만 빛으로 서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는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세상에서 어둠의 권세 앞에 바르게 서야 합니다. 1.어둠의 권세는 예수를 재판하려고 합니다. 어둠의 권세는 세속화 된 종교적 기득권자들입니다. 예수 당시의 대제사장은 안나스와 사위 가야바였는데 이들은 대제사장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어둠의 권세이지만 겉으로는 신앙적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고후11:14) 예수는 이미 세속화 된 어둠의 권세 앞에 재판을 받기 위해 서셨습니다. 어둠의 권세는 세속정치의 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서 대제사장들은 세상의 힘과 정치에 의해서 대..